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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국제 체제는 균세 (均勢)를 중점적 개념으로 해서 작동돼 왔습니다. 슈메르에서 여러 도시 국가들이 상호 각축하면서 나름의 ‘세력 균형’을 이루었던 시대부터, 은나라라와 동이(東夷)·서융(戎狄)·남만(南蠻)·북적(北狄) 등 주변 세력들이 균형을 이루었던 시대부터 그래 왔습니다. 균세, 즉 세력 균형의 원칙이란 사실 간단합니다. 특정 국가가 지나치게 약해지면 주변 열강들이 그 영토를 분할 점령하는가 하면, 지나치게 강해지거나 어느 수준 이상의 야망을 보여 ‘균형’을 위협할 경우 열강들이 연대해서 그 나라의 기를 전쟁으로 꺾는 것입니다. 대체 유럽의 국제 질서는 1945년까지 ‘균형’의 문제를 중심으로 움직여 왔습니다.
혁명 이후 프랑스가 강해지고 주변을 점령하자 영국과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이 연합해서 결국 1815년에 나폴레옹을 완패시켜 프랑스를 ‘2등 열강’으로 강등시키고, 1870년 이후 통일된 독일이 강해지자 결국 영-불-러-이의 연합 세력과 부딪친 것입니다. 슈메르 시대나 19세기 유럽에서나 ‘균세’ 체제의 불가피한 동반자는 정기적인 열강 사이의 전쟁들이었습니다. 전쟁이 아니면 한 번 잘못 기울어졌다 싶은 균형을 다시 잡을 수 있는 수단은 없었습니다. 이와 약간 다르게 동아시아는 대개 패권 제국 중심의 조공 체제이었지만, 예컨대 송나라와 요나라, 그리고 그 다음에 금나라의 장기 대립만 해도 차라리 ‘균세’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체제에서의 획기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1945년 이후, 미-소의 제2차세계대전 승리와 핵무기 생산의 시작 이후이었습니다. 냉전 체제에서는 처음부터는 열강은 딱 두 군데, 미-소뿐이었습니다. ‘균형’이란 이제 이 두 초강대국 사이의 관계를 의미했습니다. 이런 양극 체제는 세계사에서 처음이었던 것입니다. 한데 양극 체제라 하지만, 처음부터 불완전한 양극 체제이었습니다. 소련은 군사를 포함한 모든 방면에서는 미국에 비해 열세이었습니다. 단, 소련은 아무리 가난하고 후진적이라 해도 ‘핵’을 가지고 있었던 이상 미국은 그 영향권 (동구)을 인정하여 그 안에서의 직접적 간섭을 자제했습니다. 이 양극 체제 속에서 주변부에서 계속적인 대리전들이 수행됐지만, 미-소는 직접 무력 갈등을 회피했는가 하면, 과거의 서구 열강들인 영-불-독-이 등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미 제국의 후국으로 재편됐습니다. 이 전례 없는 양극 체제는 유럽 열강 사이의 각축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든 것입니다.
유럽 바깥의 열강들은 - 중국과 인도의 1962년 국경 전쟁 등에서 보이듯 - 종종 전쟁을 수행했지만, 냉전 시대에는 초강대국과 주변부 열강 사이의 거리는 대단히 멀었습니다. 즉, 이 체제에서는 유럽은 미 제국의 후국이 되고, 중국, 인도, 이란, 터키 등의 위상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1991년 소련 몰락 이후 한 때에는 세계가 정말 동아시아 청나라 시대를 연상케 하는 ‘패권 제국 중심의 일극 체제’로 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었습니다. 한데 이라크에서의 패배와 2008년 공황으로 미 제국의 위세가 꺾이면서 일극 체제가 끝내 제대로 형성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트럼프 집권과 펜데믹 대응 실패, 아프간 철수 등으로 미국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세계 질서가 점점 다시 ‘균세’의 시대로, 즉 1945년 이전의 시절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미국은 여전히 군사와 금융, 과학 등 일부 부문에서 상대적 우위를 보유하지만, 앞으로 약 15-20년 사이에 그 우위가 중국에 의해 상대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은 분명히 유라시아의 최강의 국가로 이미 그 위치를 확정했지만, 동시에 그 주변에 인도와 러시아 등이 또 중국과 협력하면서 은근히 견제를 합니다. 이외에는 이 새로운 국제 질서의 작동 원리는, 솔직히 1914년 이전의 유럽의 열강 질서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요구 수준이 높은 특정 열강을 다른 열강들이 견제하면서, 서로 엇비슷한 전쟁 수행 능력을 보유한 여러 세력들이 상호 협력과 견제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점령을 시도하자 미국과 그 유럽 후국들, 그리고 일본과 한국 등이 연대해서 경제 제재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등으로 러시아를 견제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민중들의 저항과 함께 그 견제가 주효하여,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영토의 비율은 현재 아마도 15-20%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그것보다 훨씬 못미칠 가능성도 큽니다). 시리아에서는 러시아와 이란, 터키가 서로를 견제하는가 하면, 중국에 경제적으로 기대는 러시아는 동시에 인도, 베트남과의 관계를 강화해 또 은근한 대중국 견제를 합니다. 이렇게 전쟁과 상호 견제, 그리고 필요시의 협업은 바로 열강 사이의 ‘균세’ 시스템의 작동법입니다.
이런 균세 시스템의 재도래를, 민족주의적 경향의 국내 일부 지식인들이 “다극화”라고 하여 반기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반길 만한 게 뭐가 있는가, 싶습니다. 1914년 이전 체제로의 회귀는, 여러 가지 의미들을 지니지만, 하나의 큰 변화는 열강 사이의 직접 충돌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재까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현장에서 200명 이상의 외국인 전사들이 우크라이나 군대에 자원 입대했다가 전사했는데, 그들 중의 수십명은 미국과 폴란드, 영국, 독일 등 나토 국가들의 출신들입니다. 전장에서 나토 국가 출신의 전사들과 러시아 병사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은 확전의 불씨가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또한, 대만을 중심으로 충돌이 발생될 경우 중-미 직접 무장 충돌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예상됩니다. 영-불-독-러의 전쟁이 예사이었던 19세기 정도는 아니지만, 사실 균세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늘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균형이 약간이라도 깨질 것 같으면 바로 군사적 대응이 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균세’ 원리로 돌아가는 세계에서는 현재에 비해 전쟁들은 훨씬 대규모화되고 일상화될 것입니다. 유럽 및 동아시아에서의 장기 평화가 지금 끝나가고 있는데, “다극 체제’라고 하여 좋아할 일이 뭐가 있나, 싶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국형 열강 사이의 영구적인 경쟁을 의미하는 ‘다극’이 아니고 평화입니다. 미 제국 패권 체제도 그랬지만, 균세 시스템도 평화를 절대 보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민초 차원의 평화 운동이 그 힘을 키우고, 영구 전쟁 체제의 경제적 배경, 즉 전시 무기 판매 등으로 군수 복합체가 얻는 초과 이윤 등에 대한 ‘불편한 질문’들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경쟁 열강에서 거주하지만 똑같이 영구 전쟁 체제에 반대하는 민초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연대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한데 아직까지 세계의 좌파적 반전 운동은 아쉽게도 그 단계까지 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 출처 : 박노자님의 블로그
■ 박 노자
오슬로대학교수, 한국학자, 칼럼니스트
소련의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데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본명은‘블라디미르 티호노프’다. 2001년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다. 레닌그라드 대학 극동사학과에서 조선사를 전공했고, 모스크바 대학에서 고대 가야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칼럼들을 묶은 『당신들의 대한민국』 으로 주목받았으며, 『주식회사 대한민국』 『비굴의 시대』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전환의 시대』 등은 이 연장선상의 저작이다. 『거꾸로 보는 고대사』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우승열패의 신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등을 통해 역사 연구자로서의 작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