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밟듯 걷는 천년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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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밟듯 걷는 천년고찰

0 개 622 템플스테이

등운산 고운사 (騰雲山 孤雲寺)


경상북도 의성군에 위치한 고운사는 지방도 79호선을 따라가다 고운사길로 접어들어 끝까지 이르면 다다를 수 있다. 고르게 난 왕복 2차선의 고운사길은 3.3km 길이로 상점들이 부락을 이루는 여느 사찰과 달리 사하촌을 발견할 수 없다. 흔한 편의점조차 찾아볼 수 없어 도중에 최치원문학관과 고운사문화공원이라도 없었다면 한적했을 법하다. 외로이 혼자 떠 있는 구름[孤雲]의 절이란 이름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길의 풍경은 여행자에게 구도자의 심정을 체감케 할 만큼 차분하다. 절다운 길이다.


고속철도를 이용할 경우에는 안동역에서 시외버스로 환승해 종점인 고운사 버스정류소에 내리면 된다. 버스를 탈 요량이라면 의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내버스에 탑승해 고운사 버스정류소에 하차할 수 있다. 자차든 버스든, 차창 너머 펼쳐진 고즈넉한 고운사길의 풍경이 여행자를 포근하게 반긴다. “안녕!” 눈인사하자마자 도착한 길의 끝, 고운사 템플스테이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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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끝, 홀로 떠 있는 구름 같은 곳


버스 종점에 내리면 고운사 주변이 온통 솔숲이라 은은한 박하향이 배인 피톤치드가 한껏 폐에 스민다. 상쾌하게 호흡하며 잠시 걷자 화엄문화템플관이라 쓰인 표지석이 보이고, 깊게 판 글씨 밑에 오른쪽 방향의 화살표가 얕은 오르막길을 가리킨다. 쉬엄쉬엄 고개를 오르면 널따란 마당 겸 주차장과 템플스테이 전문시설인 화엄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단단하게 석축을 쌓아 올려 근엄한 외양의 화엄전은 템플스테이를 위해 지어진 복합공간이며, 2개 층으로 구획된다. 1층은 강당과 단체 참가자들을 위한 세면장, 화장실을 갖췄다. 1층 위로 곱게 단청을 입힌 처마가 살짝 보이는데, 이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진입할 수 있다. 1층이 누하진입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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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식 건축물인 1층과 달리 2층은 한옥 구조다. 석재를 깔아 말끔한 2층의 마당에 문수전, 비로전, 보현전 3동의 전각이 ‘ㄷ’자집 모양으로 들어앉았다. 3개의 전각에 3인 내외가 머물 수 있는 작은 방 12곳을 마련했고, 단체 참가자들이 묵을 수 있는 대방도 갖췄다. 작은 방마다 샤워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딸려 있지만, 대방에는 화장실만 마련돼 있어 이곳을 이용하는 참가자들은 1층의 공용 세면장을 이용해야 한다. 방마다 허리가 불편한 이들을 위해 두터운 매트리스를 준비해 놓았고, 침구류는 청결하게 관리되어 며칠 묶어 가기에 적당하다.


이곳의 템플스테이를 총괄하고 있는 템플스테이팀장 무학 거사는 “고운사는 여느 사찰과 달리 낯선 이들을 같은 방에 배치하지 않고, 1인 1실을 이용해도 추가로 체험비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가족, 친구, 지인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기 위해 시도한 누군가의 템플스테이가 낯선 이와의 동거로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는 무학 팀장의 고집 덕에 부득이하게 홀로 고운사를 찾은 참가자도 한결 가볍게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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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어느 전각에 머물든 완만하게 둥근 솔숲의 산세가 훌륭한 배경이 된다. 고운사는 구계리라는 행정단위에 속해 있는데, 구계(龜溪)라는 지명이 거북이 등 모양의 구릉성 산지 형세에서 비롯돼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터를 일컫는다고 한다. 마당 돌담에 기대 부드러운 산의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솔숲의 초록빛을 비집고 사찰의 전각들이 선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경치가 소담하게 담아낸 밥상처럼 호사로운데, 높은 고도 덕에 구름을 밟고 서 있다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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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장막을 거두고


오후 3시까지 고운사에 도착하면 30분 뒤인 3시 30분부터 5시까지 사찰안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전문적인 해설을 들을 수 있는데 전각마다 얽힌 사연에 지루할 틈이 없다. 유난히 불교와 유교, 도교에 모두 통달했다는 통일신라시대 최고의 학자 최치원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도중에 발견한 최치원문학관이 고운사길에 자리한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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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 대사가 창건한 고운사는 당초 ‘높게 뜬 구름의 절’을 뜻하는 고운사(高雲寺)였지만, 최치원이 이곳에 가허루(駕虛樓)와 우화루(羽化樓)를 세우며 그의 호를 따 현재의 고운사로 남았다. 절의 이름을 고치면서 가허루는 가운루(駕雲樓)가 되었는데, 계곡에 주춧돌을 놓아 세운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가운루는 ‘구름 위의 누각’이란 뜻으로 외로이 혼자 떠 있는 구름의 절 고운사에 어울리는 작명이다. ‘날개가 돋아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되는 누각’이란 뜻의 우화루는 또 어떠한가? 해인사 홍류동계곡에서 갓과 신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최치원의 전설을 떠올리면, 번데기에 지나지 않은 미성숙한 자아라도 이곳에서 날개를 펴고 구름 위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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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찰마다 깃든 사연이 많듯 고운사와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에도 1시간 반은 부족하기 십상이다. 살아있는 듯 이글거리는 눈빛을 지닌 호랑이 벽화, 사명 대사와 얽힌 승군 이야기, 약사전에 모셔진 약사여래 석상 등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듣는 이로 하여금 장막을 비집고 역사 속을 거닐게 한다. 특히 조선후기에 왕실의 계보를 기록한 어첩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졌다는 연수전은 조선시대에 고운사의 사세를 짐작할 수 있는 주요 문화재라 흥미롭다.


연수전은 왕실의 장수를 축원하기 위해 설치된 유교건축물로 당대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은 고운사가 유일하다. 연수전의 모태였던 영수각은 경복궁 인근에 건립되었으나 지금은 사라져 기록으로만 그 형태가 전해지고 있다. 고운사의 연수전이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문자로 영수각을 공상해야 할 판이었으니, 다시금 한국의 전통사찰이 포용하고 있는 1700여 년의 세월에 경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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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안내를 마치면 저녁공양이 이어진다. 오신채를 뺀 채식의 사찰음식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테지만, 고운사 공양간에서는 다른 얘기다. 내어놓는 소찬의 맛이 훌륭하거니와 가짓수도 많아 건강하게 한 끼 채울 수 있다. 잘 먹고 푹 쉬어야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할 수 있으니 과식은 말더라도 충분히 배는 채워두자. 상술했듯 고운사 반경 3km 이내엔 민가가 없고, 편의점을 찾으려면 차로 수십 분을 달려야 하니까.


구름 위를 걷다


날씨와 기온에 따라 진행 시간에 변동은 있지만, 고운사는 포행이 유명하다. 마사토를 깔아 부드러운 천년 숲길을 맨발로 걷는 프로그램으로 주지인 등운 스님에 따르면 맨발로 걷는 행위 자체가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더구나 천년 숲길은 솔숲이 방출하는 피톤치드의 양이 몇 배 많아 면역력 강화에 좋다. 길의 끝인 일주문 근처에 세족대가 있어 발을 가볍게 씻어낼 수 있어 유별나게 추운 날이 아니라면 꼭 도전해 볼 만하고, 굳이 맨발이 아니더라도 오가며 걷기에 좋은 길이니 짬을 내 걸어봄 직하다. 구름 위의 사찰이니 내 발아래가 곧 구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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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고운사 템플스테이의 핵심 프로그램은 스님과의 차담이다. 템플스테이 참가자에게 워낙 인기가 많은 보편적인 프로그램이지만 고운사의 차담은 더욱 특별하다. 교구의 작은 절인 말사를 관리하는 큰 절(교구 본사) 중 주지스님이 직접 차담을 주재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주지채인 고운대암에서 펼쳐지는 두 시간 남짓의 차담은 10명 미만으로 나눠 여러 차례 진행된다. 다탁 위로 차향이 코를 자극하고, 스님이 내려주신 차를 몇 모금 머금으면 이내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돌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라는 등운 스님의 말씀대로 차담 내내 소소한 질문과 대답이 평안하게 이어지다 “당신은 누구 십니까?”란 기습적인 질문이 각자에게 돌아온다. 평소에 대답할 일 없었던 그 짧은 질문에 누군가는 직업을, 누군가는 사회적 지위를 답으로 내어 놓지만 그것이 진정한 나일까 하는 의문에 싸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스님은 한 번쯤 돌아보라고 말씀하신다. 잠시 돌아보는 것도 수행이라고……. 나이와 성별, 사회적 지위와 직업에 무관하게 평등한 순간은 편안함과 동시에 작은 울림을 선사한다. 다선일미(茶禪一味)라 했듯 작은 찻잔에 스님의 가르침이 비치는 순간이다.


2023년 계묘년은 고운사에서


세밑이 다가오면 새해의 다짐을 돌아보곤 한다. 희망차게 밝혔던 촛불이 사그라들듯 1년 365일이 삽시간에 ‘1’로 수렴되는 이 순간만큼 아쉬움과 회한은 남의 몫이 아니다. 거듭 희망을 채워 새해를 열어젖힐 동력이 필요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騰雲] 산, 


등운산에 자리한 고운사에서 한 해를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해 보는 것은 어떨까!


■ 등운산 고운사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

 054-833-6934ㅣwww.gounsa.net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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