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영어는 문장을 다 들어야 한국어로 통역을 할 수 있다. 문장구조가 한국어와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하는 동안에는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너무나 빠르게 말하기 때문에 들어도 해석이 잘 되지 않는데 그것을 동시통역 한다는 것은 내 실력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 대화내용에 대한 기본지식도 필요하다.
9·11 사건이 터진 2001년 나는 ‘브리감 영(Brigham Young) 대학교’의 e-비즈니스 센터에 연구차 와 있었다. 센터의 책임자인 체링턴 교수는 나보고 선교사 훈련기관인 MTC에서 일주일에 한번 집체교육을 하는 시간에 영-한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영어실력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내용을 잘 몰라 곤란하다고 했더니 틈틈이 몰몬경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다. 그런다고 내 배경지식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딱 부러지게 거절을 못하고는 등 떠밀려 맡게 되었다. 서점에서 관련 서적 몇 권을 사서 공부를 했다. 부끄럽지만 그때 성경을 영어로 책이라는 Book을 쓴다는 것을 알았다. 처참하게도, 첫날에는 한 문장도 못하고 말았다.
지금은 몰몬교라 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 후기성도교(LDS)라 한다. 캐톨릭과는 달리, 개신교에서 공인하고 있는 성경의 권수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합쳐서 모두 66권인데 LDS교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아메리카 대륙에 오셨고 ‘니파이’인들에게 친히 성역을 베푸셨으며 그 기록의 일부를 적은 몰몬경이 더 있다는 것으로 들었다. 나는 기독교에 배경지식이 없다. 열 살 무렵에 10리 밖에 있는 예배당에 한번 갔는데 마룻바닥에 앉아서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세리(稅吏)가 무언지 잘 몰랐지만 키가 작은 세리 ‘사깨오’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꼭 뵙고자 길가의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의 간절함을 아시고 불러서 그의 집에 유하시고 가셨다는 이야기 같다. 당시에 세리는 탐관오리(貪官汚吏)의 대명사였던 것 같은데 ‘사깨오’는 청둥오리(淸둥오리)처럼 살았기에 예수님을 친견했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파파고’나 구글의 번역 프로그램을 이용했는데 내가 써 보니 상당히 도움이 된다. 그래도 여러 가지 오류와 문제점이 있었다. 즉 오역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쓴다. 번역 결과가 우리말로 문맥이 안 맞고 말이 안 되는 데도 말이다. 나는 초벌 번역을 도움받긴 하지만 원본과 대조해서 잘못되었거나 틀린 부분을 찾아내어 고쳐 쓴다,
번역할 때 애를 먹는 부분은 긴 문장을 어디까지 끊어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of가 있는 문장은 어디까지가 그 of에 걸리는가 하는 것이다. 즉, 문장을 수식으로 표현한다면 괄호나 쉼표를 어디에 쳐야 하는가 말이다. 사칙연산에서 더하기와 빼기보다 곱하기와 나누기가 우선하는데 곱하기와 나누기는 그 자체로 한 값이기 때문이다. 문장을 잘 보면 끊어서 읽어야 할 부분이 보인다. 그게 맥을 잘 짚는 것이다.
긴 문장일지라도 뼈와 살을 추려서 수식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결국에 주어와 술어가 있다. 주어, 술어, 목적어, 보어에 해당하는 부분을 추려내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점이다. 영어를 배우면서 Medley의 ‘3위일체’라는 학습서로 공부했다. 문법, 어휘, 읽기의 3가지가 다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래도 문법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구문론을 뜯어보았다. 뼈만 추려야 한다. 먹을 건 없을지라도,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수식이나 보충하는 부분에 괄호를 치고 보면 구문은 X-선 사진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인생사도 그럴 것이다. 버리고 비우고 단순하게 사는 것.
스마트폰의 ‘빅스비’를 이용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알람 세팅. 라이트 켜고 끄기, 검색, 일기 예보, 내비 켜기 등의 잔 일을 시킨다. 말로하면 되니 빠르고 간편해서 좋다. 그런데 이보다 더 어려운 일을 손쉽게 해결해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나온 모양이다. 정말로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은 것이다. 인공 지능을 이용한다는 만능 프로그램인 ‘챗GPT’가 각광을 받자 ‘구글도 이에 질세라 ‘bard’라는 프로그램을 내놨다.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 과제를 대신해 줄 정도로 보고서를 잘 써주는 모양이다. 쓰기에 약한 사람들은 살판이 났다. ‘글을 쓴다’는 기자(記者)나 작가는 초벌 일을 맡기면 쉬울 것이다. 사람들은 손으로 적은 글은 마구 수정하지만 활자로 찍힌 글에는 첨삭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어떤 글에 참고문헌이 있고 저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것이라 하면 더 믿게 된다. 평생을 법조문만 파고 산 사람들도 법리 해석이 상반되는 경우가 많으니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제시하는 글을 어찌 다 믿을까? 넘쳐나는 진짜 같은 가짜를 어찌 가려낼 수 있을까 걱정이다. 벌써 진짜 같은 가짜뉴스가 SNS를 타고 돈다. 자기 말고 누구를 믿겠는가?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하였다. 책 한권을 많이 읽다보면 저절로 깨치게 되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달인(達人)은 반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간 영문기사 번역을 한 것이 5천 건은 되는 것 같다. 아는 내용도 우리말로 딱 떨어지게 적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오늘 또, 더듬더듬, 번역을 하고 단물 빠진 껌을 씹듯이 문장을 곱씹어 본다. 출제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하고.....
■ 조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