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바람 노풍(老風)에 미친(美親)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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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바람 노풍(老風)에 미친(美親) 행복

0 개 1,360 오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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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서 떠밀려난 소외감. 자식들 떠난 겨울나무로 나목되어 쓸쓸히 홀로선 외로움.


우리만의 정서로 교감이 아쉬운 사람들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할 수 있는 기회이니 가슴 떨리게 기다려지는 오늘은 소풍날.


거의 뜬눈으로 밝아오는 아침을 맞았다. 비가올까 걱정을 했는데 구름한점 보이지 않는 파란 하늘이 반가웠다.


따갑게 내리비치는 햇볕이 눈부셨다. 질세라 매서운 바람이 문을 흔들었다. 계절을 재촉하는 찬바람에 몸이 웅크려졌다. 때맞춰 우리 단장님 익숙지않은 찬바람에 감기라도 걸릴세라 따뜻하게 입고 나오라고 단체톡에 메시지를 띄우셨다. 역시나....


작은 보온병에 더운물을 담아 가방에 넣고 현관문을 나섰다. 부딪혀오는 매운 바람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간 줄은 몰랐다. 다시 들어가 정신없이 옷을 바꿔입어야만 했다. 잠을 놓쳐가며 챙겨놓았던 어젯밤 일들이 억울해서 실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쉴틈없이 괴롭히는 허리님?은 오늘 하루를 잘 견뎌줄는지? 가장 중요한 일을 맨 나중에 깨닫다니 스스로 어리석음을 질책했다. 뒤늦게 바짝 긴장을 하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평일임에도 버스가 신호등에 걸리지 않고 잘 내달렸다. 바꿔타는 지점에서도 기다림없이 연결이 수월했다. 처음 내리는 도착지에서도 어리버리없이 잘 찾아내렸다. 재수좋은 날 의 암시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많이 힘들던 허리 통증도 거짓말처럼 잊고있었다. 왠일이래? 오랫만에 성큼성큼 발걸음도 가벼워 날 것 같았다.


예상보다 빨리 공원 입구가 시야에 들어왔다. 몇사람 산책하는 사람들이 근처에 보일뿐 너무도 조용했다. 얼굴에 와닿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막힌데없이 불어오는 정면의 호수 바람이었다. 그 바람에 실려오는 초록빛 들풀향기가 도심을 벗어난 코끝에 감미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무도 없는 빈 풀밭에 혼자서 우뚝 서 본다. 내가 일등으로 왔구나 하고 시간을 보니 약속시간을 40분이나 남기고 있었다.


나 혼자서 차지한 이 넓은 잔디마당이 부티나게 황홀했다. 두 팔을 활짝펴고 큰 숨을 내쉬며 넓게 원을 그리며 마구 걸었다. 세상을 혼자 가진 것 같은 이 묘한 기분을 뭐라 설명해야할지... 켜켜히 쌓인 가슴속 검은먼지가 말끔히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정신없이 두바퀴쯤 돌고 있을 때 였다. 입구쪽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기에 시선을 돌려보니 낯익은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본인이 당연하게 일등인줄 알았다며 놀란듯 나를 반겨주는 부지런하고 인품좋은 총무님. 작은몸집 어디에서 흘러나오는지 80대 닯지않은 고음으로 노래실력이 대단한 분이다. 차 트렁크를 여니 큼직한 케이크 상자며 과일들 준비물들이 한가득이었다. 오늘의 분위기를 일깨워주는 물건들을 양지바른 야외테이블에 날라다 놓았다.


거친 비바람 속에서 비틀려 말라버린 나무 테이블 의자가 왠지 나를 닮은것 같았다. 윤끼없이 앙상한 꼭 지금의 내모습같아 가벼운 연민이 느껴졌다.


누구의 기분따위 관심없다는 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주인이고 오늘은 우리들이 손님이다.


커피고픈 내 눈에 제일먼저 들어온게 믹스커피였다. 서둘러 더운물을 꺼내 잔에 따르며 이건 누구보다 먼저 왔다는 특권이구나 싶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따가운 햇볕을 등에 받으며 코끝을 자극하는 찐한 커피향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 기분이 바로 이런걸까? 아 이 향, 이 맛 이야!. 커피는 역시 분위기따라 맛이 다르다는걸 음미했다.


자연의 마술사가 다듬어놓은 푸른풀밭의 테이블에 앉아 마시는 모닝커피의 색다른 맛. 처음 느끼는  이 짜릿한 기분을 누구에게 전할까? 나른한 행복감을 오래오래 나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어 지긋이 눈을 감았다.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서서히 꿈길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매주 한번씩 어김없이 만나는 사람들답잖게 그 호들갑이라니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이런 특별함이 있기에 우리들 소풍은 늦바람 노풍이라고 이름붙였다.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공허해져 가는 마음들. 그 가슴에 불어닥친 야외바람은 온기를 잃고 버석해진 심성에 한줄기 빛이었다. 녹은 가슴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는 모처럼의 시간. 동심으로 돌아가 허물없는 수다로 마냥 호호하하...


어느새 푸르기만 했던 풀밭에 알록달록 아름다운 꽃밭이 되어갔다.


갑자기 야구모자의 남자가 꽃밭속으로 끼어들었다. 누가 청일점 아니랄까봐 역시 차별화된 멋쟁이. 선명하게 흰줄이 늘어진 새까만 후드티가 눈에 확 띠었다. 세련미 넘치는 우리 단장님의 등장이었다. 동시에 시작을 알리는 빵빠레처럼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야유회는 매월 있는 생일파티가 곁드려져 더 뜻있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큼직한 케이크가 테이블을 차지했다. 초를 꽂자마자 기다렸다는듯 꼬깔모자를 쓴 두 분 K님들이 손을 흔들며 나섰다. 환하게 웃는 모습들이 아이들 같았다. 우리는 둘러서서 축하노래를 불러주고 아낌없이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새빨간 상의에 꼬깔모자가 잘 어울리는 두 분은 귀엽게도 손가락 하트를 날려 답을 전했다.


그 자리에 누구누구의 할머니는 존재하지 않았다. 동심 가득한 여인들의 환한 얼굴 얼굴들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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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점심은 이례적인 야외 생일파티답게 그 두분이 자진해 만들어온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막내라는 젊음과 특별한 답례의 솜씨로, 거기 남편분 외조의 배달까지...


오늘의 식사 분위기는 그 어느때보다 여유롭고 다채로웠다. 정성으로 준비한 김밥이며 반찬을 곁드린 밥까지 일찍부터 수고해준 고마움을 마음으로 전했다. 행사 때마다 손수 음식을 들고 나오시는 요리 고수 y님은 영양밥에 꼬리곰탕을 옆에서 조용히 나누고 있었다.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었다.


언제나 나홀로 밥상에 음식맛도 모르고 살던 내 입이 맘껏 호강을 하는 날이었다.


나름대로 선물꾸러미를 만들어와 나눠주기도 하고. 끈끈한 우정으로 다져진 우리들 모임은 늘 이렇게 가족들같아 그지없이 편했다.


교민사회에서 제일 윗 어른들로 구성된 무지개 합창단은 품위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존경받는 위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있기에 조심스럽기도 하다.


식사가 끝나자 숲길을 걷기로 했다. 엉성하게 마른 나뭇잎들 사이사이로 비껴드는 햇살이 고기비늘처럼 반짝였다.

누가 오더라도 낯가림없이 반갑게 맞아주는 나무 나무들과 숲속. 언제 만나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오랜 친구같다. 무성한잎 다 떨구고 사뭇 쓸쓸한 모습이지만 푸근하게 감싸주는 데는 변함이 없다.


자연속에 안길때의 정화된 순수함을 초심처럼 잃지않고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나비처럼 화사하게 투명한 날개를 달고 호수에 떠있는 사람들. 그림이 참으로 아름답다. 저토록 활력있는 젊음이 우리에게도 있었던가. 살짝 부러운 욕심이 생겼다. 


돌아보니 이미 산책을 마친 일행들이 나무 그늘밑에 옹기종기 모여 쉬고 있었다. 찬바람에 해바라기는 멀리 사라지고 바알갛게 상기된 얼굴들로 한층 젊어진듯 보였다.


벌써 먹은게 소화가 됐는지 이번에는 케익이 돌려졌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케익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단 맛으로 재충전한 에너지 때문이었을까? 누군가가 일어서서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뒤질세라 너도나도 일어나 라인댄스 스텝을 밟았다. 쎈스 백단인 단장님 벌써 핸드폰 열어 음악을 틀어줬다. 찔레꽃 간드러진 노래가 신나게 흘러나왔다.


저마다 익숙한 스텝으로 동작이 날렵했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칠 팔십대 노인들이라고 믿겠는가. 이런게 바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소확행이다.


노풍이면 어떻고 헛바람이면 어쩌랴 이렇게 즐길수만 있다면 마냥 행복한 것을...


어디서나 행복의 엔돌핀을 만들고 선사하는 단체로 변함없는 우리 무지개합창단 화이팅!!


모두 건강하시고 항상 소확행을 만들어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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