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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종찰 순천 송광사 (僧寶宗刹 順天 松廣寺)
송광사는 고려시대 보조지눌 국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16분의 국사를 배출해 불법승(佛法僧) 세 가지의 보물 중 스님이 보물인 승보사찰(僧寶寺刹)이 되었다. 의당 한국불교의 승맥이 전승돼 승보종찰(僧寶宗刹)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송광사는 승보 외에도 국보 4종을 비롯해 총 2만여 점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의 승려 장인’ 전시회의 백미를 꼽으라면 실감 영상 콘텐츠 ‘화엄의 바다’라 할 수 있는데, 송광사가 보유한 국보 제42호 ‘송광사 화엄경변상도’를 현대 기술로 재구성한 것이 었다. 더구나 우리 사회의 큰 스승인 법정 스님과 불일암 또한 송광사가 품고 있으니, 절에서의 뜻깊은 찰나를 꿈꾸는 이에게 송광사는 실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다녀오겠습니다
송광사에 이르는 방법은 다양하다. 자차, 고속열차, 버스 중 이용이 편리한 수단을 선택하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 기차역인 순천역이나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서 내려 111번 시내버스로 갈아타면 송광사 버스 정류소에 하차할 수 있다. 시내버스 111번은 자주 배차되고, 송광사 버스 정류소를 기준으로 막차가 20시 20분에 도착하고 첫차가 아침 6시 40분에 출발하니, 굳이 왕복요금을 주고 택시를 탈 이유가 없다. 광주에서 출발할 때엔 시외버스에 탑승해 송광사 버스 정류소에 바로 내릴 수 있다. 일요일이나 음력 초하루에 송광사에 간다면 순천 시내에서 출발하는 살굿빛의 송광사 법회 버스를 타보자. 송광사 찬스! 버스가 경내까지 진입하는 데다 무료이기까지 하다.
송광사는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매우 훌륭한 편이라 굳이 자차로 몇 시간씩 운전하며 템플스테이의 감흥을 노동으로 치환할 필요가 없다. 매우 큰 장점이다.
다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나 송광사로 향하기 위해선 반드시 18번 국도의 송광사길을 거쳐야 한다. 송광사길은 주암호 둘레를 휘감은 형국으로 그 폭은 협소하지만, 전라남도 서부권에 생활용수를 보급하는 주암호 덕에 너르고 푸른 물길이 송광사행을 허하는 눈도장처럼 오가는 행인을 반긴다. 기어이 이곳을 지나 마주하게 될 송광사와의 만남을 고대하게 되는 근사한 길이다.
송광사 정류소에서 절 입구인 매표소까지 400m 남짓인데, 사하촌을 둘러보며 걸어도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템플스테이 참가자라면 이곳 매표소부터 1km 거리에 위치한 템플스테이 사무국까지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자차 운행자라면 차량 전용 입구로 경내에 진입해 성보박물관 부근의 공터에 주차하면 된다.
템플스테이 할 결심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사무국에 들러 방사를 배정받고 수련복을 수령해야 한다. 사무국은 성보박물관을 기준으로 왼편에 위치해 찾기 수월하다. 오후 4시부터 사찰 안내가 시작되니 조금 일찍 도착해 짐을 풀고 주변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미리 성보박물관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너끈히 2시간을 할애해야 ‘성보 좀 봤다’ 할 만큼 송광사에서만 볼 수 있는 보물들이 그득하니 짬이 날 때마다 마실가듯 드나들면 더욱 특별한 템플스테이를 체험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니까 걱정하지 말자.
송광사의 템플스테이 전용 시설은 정갈하고 쾌적하기로 소문나 있다.
본관과 신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템플스테이 사무국이 자리한 곳이 본관이다. 본관은 ‘ㄷ’형 구조의 한옥으로 중정에 잔디로 미로를 꾸며놓아 상념 없이 거닐기에 딱이다. 본관은 지층 밑으로 108배나 차담 등의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 있는 큰방과 공동 샤워실 등을 갖추고 있어 단체활동이나 청소년들의 체험학습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
신관은 본관 맞은편 계곡 옆에 근래 지은 전각으로 계곡의 물길을 따라 자리를 틀어 마치 부메랑처럼 굽이진 외관을 지녔다. 이는 국내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한옥의 건축 사례로 자연에 순응하며 조화로운 삶을 지향해 온 승가 공동체의 미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본관과 신관 구분 없이 모든 방사가 냉난방 시설을 구비하고 있고, 개별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춰 손색없다. 방마다 생수와 다구를 준비해 놓아 차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감하기에 더할 나위도 없다. 특히 신관은 탁 트인 유리창 너머로 계곡의 정취마저 느낄 수 있어 호사롭기까지 하다. 으레 ‘절’하면 떠오르는 막연한 불편함 따윈 송광사에서 템플스테이 할 결심을 꺾기에 어렵다.
템플스테이관은 공양간, 대웅보전 등 주요 전각들과 가깝고 동선이 간결해 접근성이 뛰어나고, 불일암, 감로암, 광원암 등 주요 암자와도 가까워 느릿느릿 걷다 보면 금방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배경으로 등장한 대웅보전과 침계루, 종고루 등을 둘러보는 재미도 있으니 때때로 경내를 거닐 것을 추천한다. 순천 송광사를 대표하는 우화각 역시 템플스테이관에서 편하게 오갈 수 있는데 ‘#인생한컷’이 필요한 이라면 방문객이 뜸한 틈을 노려보자.
스님 계십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구호의 송광사 템플스테이는 입퇴실 시간과 공양 시간만 정해져 있고, 나머지 시간은 참가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따라 선택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예불과 공양을 제외하고 모든 활동을 실외에서 진행하는데, 1박 2일 일정 중 첫째 날 오후에 진행되는 ‘사찰 안내’와 둘째 날 오전에 진행되는 ‘무소유길 산책’은 놓치면 아쉬운 보물 같은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들은 포교국장인 무인 스님이 주로 진행하지만, 일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학인스님들이 도맡기도 한다. 학인은 전문의가 되기 위해 수습 과정을 거치는 의대생처럼 스님이 되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 신분의 스님이다. 학인스님이 진행한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송광사의 역사부터 시작해 건축, 미술 등 다방면에 걸쳐 재미난 해설을 곁들이니까. 송광사는 1시간 30분에서 2시간 가량을 사찰 안내에 할애하고 있다. 대체로 30분에서 1시간 남짓 진행하는 게 보편적인 상황에 비춰보면 정말 ‘공들인다’ 할 수 있다.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8월의 어느 날, 혜월 스님은 1시간 반 동안 열성적으로 사찰 안내를 이어갔다. 학인이라는 신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심한 설명은 승보종찰의 명성에 걸맞게 품위 넘치고 당당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불교문화를 친절하게 설명해줘 고맙다는 참가자들의 인사에 혜월 스님은 “다 무인 스님께 배운 겁니다. 무인 스님에 비하면 전 한참 모자라요.”라며 겸손하게 답했다. 유명 갤러리의 도슨트 같았던 사찰 안내 프로그램을 마친 후 무인 스님과 함께하게 될 ‘무소유길 산책’을 갈망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무소유길 산책은 불일암 주변의 무소유길을 걷는 프로그램이다. 기상 상황과 무관하게 비가 내리고 눈이 와도 어김없이 진행된다는 이 프로그램의 길잡이는 무인 스님이다. 대뜸 산길의 나무를 가리키며 수종을 묻거나, 알쏭달쏭 선문답을 이어가는 스님은 불교를 위시해 물리학까지 깊이와 너비를 가늠할 수 없는 식견으로 참가자들과 이런저런 주제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부도암과 감로암, 광원암과 불일암을 거쳐 템플스테이관으로 돌아오는 무소유길 산책은 짧은 암자 순례 같았지만, 국사 순례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길에서 마주친 보조국사비, 원감국사비, 진각국사탑, 자정국사탑은 세월을 초월해 당대의 정신적 지도자와 참가자를 이어주는 매개였기 때문이다. 특히 부도암에서의 명상 체험은 영험했다.
김샐까 봐 차마 글로 옮겨적을 순 없지만, 무인 스님은 참가자들이 스스로 큰 스님들과의 인연을 찾게끔 도와주셨다.
순례가 되어버린 산책이 끝을 향해갈 즈음 법정 스님의 불일암에 당도해 약수로 목을 축였다. 2시간이 넘도록 길을 걸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가뿐했다. 명색이 무소유길 산책인데 마음속에 보물을 품고 가게 되는 신묘한 시간이었다.
송광사다운 템플스테이
승보종찰의 위엄 때문일까. 송광사 템플스테이를 설명하자면 스님에서 시작해 스님으로 마치게 된다. 잦은 화재와 한국전쟁으로 전각이 소실되는 큰 위기를 겪었음에도 송광사가 사격을 잃지 않고 지금껏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중심엔 ‘스님’이 있었을 테니, “송광사다운 템플스테이는 스님다운 템플스테이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님을 통해 역사와 불교문화를 배우고, 인연과 보물을 찾게 되는 템플스테이니까.
■ 순천 송광사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061-755-5350 l www.songgwangsa.org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