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눈길을 운전하던 일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뒷자리의 어린 딸만 살아남았다. 하나뿐인 이모가 이 아이를 키우기로 자처하고 데려오지만 눈앞이 캄캄해 진다. 육아 경험이 없는 노처녀 이모는 대화가 어렵다. 직장일로 시간조차 부족하다. 이런 사정이니 조카에게 맞는 인형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마침 이모는 장난감 회사의 개발팀에 있어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려고 준비해 왔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직립형 로봇에 조카 딸 또래의 얼굴을 입힌다. 금발에 카키색 드레스를 입고 격자무늬 스커트를 한 인공지능 로봇 메간(Megan)은 키 120cm로 깜직하다. 나는 귀요미라고 부르고 싶다. 메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로봇이지만 똑똑하고 바르게 판단하면 야무지고 든든하지 않은가? 한마디 하면 두 마디 세 마디를 알아들으니 따로 시킬게 없다.
내가 인공지능이라는 단어를 처음 보게 된 것이 80년대 초 대학원생 때였다. AI라는 용어가 인공지능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그 개념도 모호했던 시절이라 ‘인위적 지성’이라고 번역했고 그 응용 분야의 하나인 전문가 시스템(Expert System)에 관심을 두었다. 전문가 시스템은 특정분야의 전문지식을 메모리에 입력시켜 그 인간 전문가처럼 언제든지 의사결정을 하게 하는 로봇 같은 컴퓨터시스템이다. 어렵게 자격증을 따고 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해서 척 보면 아는 전문가가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렇지만 곧 늙고 은퇴를 하게 되어 아깝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 전문가의 지식을 컴퓨터에 담아서 전문가처럼 활용하자는 것인데 그 이후로 한 40년이 흘렀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다가 최근에야 이렇게 놀라운 모습으로 발전한 것은 반도체의 성능이 향상된 때문이다.
로봇이 산업현장에서 힘든 일은 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용접을 하거나 무거운 것을 운반하고 시각인식을 해서 검사를 하거나 판단을 하는 일을 24시간 쉬지 않고 하고 있다. 불량도 없고 권태도 없으니 로봇화와 자동화는 늘어만 갈 것이다. 그러니 고도의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을 누가 감당할까? 일찌기 킷(KITT)이라는 인공지능 자동차를 보고 언제 저걸 한 번 타 보나 했는데 어쩌면 그런 자동차의 도움을 받고 살아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운전을 하는 것이 엄청 쉬워졌다. 자율주행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1998년에 나온 영화 솔져(soldier)를 보면 잘 훈련 받은 인간 병사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력한 변종인간이 나온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강한 신체를 갖게 된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자라지 않고 실험실에서 나온 이 병사들의 목숨은 아깝지 않을까? 전장에서 소모품으로 써도 되는가 말이다. 그런데 인간을 닮은 로봇에 인공지능을 장착시켰다면 6백만 불의 사나이가 되는 것이다. 지금 6백만 불은 8억 정도이지만 당시에는 엄청난 돈이었을 것이다. 영화에서 메간이 도를 넘은 판단으로 끔찍한 사고를 쳐서 폐기시키지만 믿을 만한 메간과 같은 정교한 인공지능 로봇은 20~30년이 더 지나면 가능할 것이다. 그게 먼 훗날이라고? 그리 먼 훗날이 아니다. 어느 날, 내가 메간의 재롱을 보며 메간의 도움으로 사는 날이 올 것 같다.
나이 먹고 외로우면 메간 같은 로봇 손주를 두고 싶다. 몸이 약해지면 부축을 받을 수도 있고 24시간 곁에서 함께 해주면서도 지치지 않는 든든한 로봇이 있다면 무얼 더 바랄까? 손주들은 학교를 다니느라 바쁠 것이고 또 직장에, 결혼에, 육아에 눈코 뜰 새가 없을 것이니 보고 싶어 목을 뺄 수도 없는 것이다. 나도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나 아버님, 어머님을 챙겨드리지 못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울 수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것들과는 이별하는 것이 어렵고 내가 쇠약해지면 챙겨주고 돌보는 일이 짐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앱 ‘챗GPT’가 나와서 세상을 흔들어 놓고 있다. 그러자 큰 IT 기업들이 서둘러 인공지능 앱을 내고 있다. 시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다. 앱의 번역이나 작문은 놀라운 수준이다. 창작을 하는 것은 경험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직접 체득한 것이나 독서를 통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서 느낀 것을 가슴속에 사려두었다가 상상해 내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메모리에 이 세상의 모든 시나 소설, 수필, 논문을 다 입력시키고 그 중에서 적절한 것들을 골라 재구성 시켜보라 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 아니겠는가? 사람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쉽고 빠르게 해 낼 것이다. 단순한 계산기만 해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니 말이다. 그래도 종합영영제인 알약 하나를 꿀꺽 삼키는 것 보다 질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거나 매콤달콤하고 고소한 비빔밥을 한 입 듬뿍 떠먹는 것이 더 재미 아닐까? 남 시키지 말고 반드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땀을 흘리고 애를 써야 하는데 그 과정이 즐겁고 중요한 것이다. 아! 참, 내일 바로 적금을 들어야 겠다. 메간이 나오면 사려고.
■ 조기조(曺基祚 Kijo Cho)
- 경남대학교 30여년 교수직, 현 명예교수
- Korean Times of Utah에서 오래도록 번역, 칼럼 기고
- 최근 ‘스마트폰 100배 활용하기’출간 (공저)
- 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비상근 이사장으로 봉사
- kjcho@u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