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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1/2012. 12:21 피터 황 (202.♡.85.222)
신의 선물 와인의 초대
‘비쌀수록 잘팔린다’는 귀족배짱마케팅이 시장에 적용된지는 오래다. 심지어 수십만원하는 네모난 수박이 없어서 못팔정도이고 천문학적 숫자의 금띠 두른 속옷코너를 싹쓸이한 이들의 이야기가 ‘란제리백화점습격사건’이라고 기사가 되는 걸 보면 요지경세상이다 싶다. ‘제임스 딘’이라는 브랜드의 칼라팬티가 나왔을 때 비로소 속옷도 패션임을 깨달았던 우리가 언제부터 싼 것은 저급하고 값 나가는 것만을 높은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신봉하는 맹목적인 명품추종자가 된 것일까.
어쩌면 너무 가난했고 지식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르면 돈을 더주라’며 물건사는 지혜를 객관식으로 가르쳤고 싼 것을 폄하하는 편견을 키웠다. 더욱 기가막힐 노릇은 ‘부모는 못했지만 너만은 나이키운동화를 사주리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스타들만 신을 수 있다는 나이키의 스타광고 전략 때문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노련한 마케팅 심리학자에게 농락당한 부모의 눈물겨운 자식사랑에 힘입어 국민운동화로 한 시절을 풍미하게 한 셈이다. 아무튼 흉내를 낸 상품들이 많았던 그 시절, 나는 아버지가 노점에서 사오신 ‘나이스’를 신었다. 바람을 가를 듯한 빨간 화살표가 선명한 그 신을 신고, 나는 학교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아이로 제트기 같은 청소년기를 보냈다.
100% 과실발효주인 와인에는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그래서 생산지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짝퉁이 있을 수 없다. 와인을 구입할 때 유의해야할 것 또한 비싼 것이 무조건 최고의 맛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적절한 가격과 내 입맛에 맞는 와인을 찾아 마실 때, 즐거움과 건강을 함께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와인을 마셔보자고 두꺼운 와인 서적부터 읽기 시작할 필요는 없다. 술의 한 종류일 뿐인 와인이 테이블에만 오르면 ‘문화를 마신다’는 둥 고상한 학습 분위기가 된다. 품종, 산지, 몇년 산을 따지며 마시다 보면 맛도 안난다.
와인에 대해서 사회적인 강박관념을 가지고 접근해서는 안된다. 와인이 깊은 사고와 함께 즐기는 고급한 기호품이라는 편견은 버리길 바란다. 어렵고 발음하기도 힘든 용어들을 나열해가며 너스레를 떠는 것은 와인평가관이나 와인제조자들의 몫이다. 우린 맛을 음미하며 마시면 그만이다. 와인의 탄생이 그렇듯이 정해진 방식이나 규칙은 없다. 부드럽고 달달한 것부터 시작해서 드라이한 와인으로 옮겨가며 맛의 경험을 넓혀가면 된다. 물론 아는 만큼 더 느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아카데믹한 지식을 쌓고 와인을 너무 진지하게 대하는 것 보다는 혀가 감지할 수 있는 맛에 대한 호기심이나 재미로 가볍고 행복하게 대하는 것이 맞다. 최고의 와인이란 그저 자신의 입맛과 취향에 맞고 함께 하는 음식이나 쓰임새에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와인매장엔 7불짜리부터 600불짜리의 와인이 진열되어 있지만 절반이 넘는 손님은 10불내외의 와인을 고른다.
세상은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균형을 잃어서는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 명품은 거품이고 인간이 만든 허영의 탑이다. 그럼에도 열광하는 이유는 고독한 가슴에 욕망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상위 1%로 살기 위해서 희귀성이 높을수록 소비를 자극한다는 스놉효과(Snob Effect)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가 철학을 대체하는 시대에는 과시적 소비가 득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보여지는 것이 모든 것은 아니다. 너무도 빠른 세상 유행에 대해서 면역력을 가지고 휩쓸리지 않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회가 건강하다. 보이지 않는 부분도 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가져야 한다. 안과 밖의 균형을 잃어서는 안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