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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012. 16:49 피터 황 (202.♡.85.222)
신의 선물 와인의 초대
차가워진 바람에 젖은 낙엽이 뒹구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다 집어던지고 달그락거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춘천으로 향한다. 기다려주는 이도 특별한 목적도 없지만 공지천에서 에티오피아 쓴 커피한잔으로 호사를 누리며 지친 영혼을 달래보겠다고 먼거리를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다. 밤이 되어서야 연거푸마신 커피에 속이 쓰려오고 호기를 부려봤지만 역시 허기진 육신을 채우는덴 닭갈비가 최고라는 걸 깨닫게 된다. 매운걸 헉헉거리며 눈물이 날 때까지 먹고 나서야 번잡한 도시로 돌아올 결심이 생겼다.
몸으로 느끼는 불경기지수가 더욱 높아졌다는 요즘, 지갑은 꽁꽁얼어 붙었지만 건강을 잃어버린다면 큰일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건강과 관련되는 먹거리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다. 마이너스를 뜻하는 빨간 색이 가슴속 울화를 쌓이게 하는 이 때 화끈하고 얼얼한 매운 요리로 식탁을 온통 빨간색으로 가득 채워보면 어떨까.
불경기에 매운 요리가 통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불경기일수록 지나간 옛날의 영화를 그리워하듯 복고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고추와 고추장을 이용하는 우리의 전통 요리들은 그야말로 불경기에 딱 어울리는 맞춤 아이템이다. 또한 요즘은 보양식 개념보다는 건강하게 살을 뺄 수 있는 다이어트 요리가 일반적이다. 이런 점에서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은 훌륭한 다이어트 성분으로 날씬하고 건강한 몸으로 가꿔주는 역할을 한다.
비싼 돈을 들여 웰빙을 할 필요가 없다. 매운 요리에는 주 양념으로 들어가는 고추와 고추장 자체에 어떤 식재료보다도 풍부한 영양이 들어있어 별다르고 비싼 재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영양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양파 마늘 고추를 듬뿍 넣은 닭갈비처럼 매운 재료가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일단 우리 몸에서 땀이 나면서 기운이 발산되고 확산된다. 이런 확산 작용은 위액분비를 촉진하고 식욕부진을 해소시켜 밥맛을 돌아오게 한다.
매운 요리에 잘 어울리는 레드와인이 쉬라즈(Shiraz)다. 때론 쉬라(Syrah)라고 표기되기도 하고 같은 종류의 포도다. 이 품종의 고향은 프랑스의 론(Rhone)지역이며 강건하고 묵직한 스타일로 때론 탄닌성분이 거칠게 느껴져 그 남성다움에 입안이 얼얼할 정도다. 하지만 호주의 쉬라즈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데 오랜 숙성을 거치지 않고도 강렬하고 진한 맛을 가지면서 거친 탄닌이 잘 연마된 듯 부드럽고 매끄럽다.
18세기말경 영국인에 의해 처음 포도가 심어진 호주는 지역상 7개의 주로 나뉘지만 4개의 주에서만 주로 와인이 생산된다. 서부호주, 남부호주, 뉴사우스웨일즈 그리고 빅토리아다. 나머지 퀸스랜드와 타즈마니아에서도 와인이 나지만 작은 규모다. 일반적으로 호주와인의 특징 중 하나가 서로 다른 지역의 우수한 포도로 블렌딩하는 방식으로 알려져있다. 더우기 호주 쉬라즈는 빅토리아지역처럼 매운 후추향이 풍부하고 뜨거우면서 거친 프랑스 론 스타일을 추구하는 와인과 최고의 거목 펜폴드(Penfolds)처럼 호주만의 캐릭터를 보여주려는 와인어리가 있다. 이들은 GSM(그라나슈, 쉬라, 무르베드르)블렌딩을 주로하며 절제와 균형감이 뛰어나다. 어린 빈티지의 경우에도 풍만하고 단단한 허리의 힘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부드러움 역시 잃지 않는다.
뜨겁고 매운 맛으로 불경기가 주는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을 발산시켜 풀어보자. 그렇게 입 안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얼얼해지도록 화끈하게 땀을 흘리고나야 다시 일어설 힘이 나게 마련이다. 배가 든든하게 잘 먹어야 험한 세상 헤쳐나갈 용기가 생긴다. 아랫배에 힘을 넣고 가슴을 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