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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쓴 맛을 닮았기에 삶의 애환이 녹아있다는 술, 소주는 고된 하루를 털어 내기 위해 찾은 목로주점에서 조강지처처럼 옆자리를 함께했다. 포장마차나 대폿집이라고 불리던 목로주점엔 긴 탁자가 있고 안주값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곤 무조건 술국이 한 그릇 따라 나왔는데 빨리 한 사발 쭉 들이키고 가라는 의미였는지 의자가 달리 없었다.
술은 그 나라의 문화적인 배경에 바탕하고 사회적인 환경에 따라서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유럽의 와인처럼 소주(燒酒)는 한국 술문화의 대명사다. 유래는 몽골이다. 그 당시 청주와 탁주(막걸리)가 주종을 이루던 고려가 몽골의 침략기를 거치면서 유목민의 육식문화와 함께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주로 마시는 ‘서민의 친구’ 그 소주가 아니었다. 곡물을 천연누룩으로 발효시켜 얻어낸 알코올을 증류해서 만드는 증류식 소주였다. 워낙 귀했던 탓에 작은 잔에 마셨고 그것이 현재 소주잔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고 곡물사용이 법으로 금지되면서 등장한 것이 에틸알코올에 물을 넣고 인공감미료를 첨가한 오늘날의 희석식 소주다. 그리고 이 희석식 소주에 사용되는 에틸알코올은 1919년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세운 화학공장에서 처음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아픈 역사도 가지고 있다.
이래저래 씁씁한 맛을 지닌 소주가 화학주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절대 화학반응을 통해 술을 만들 수는 없다. 오로지 효모를 통해 발효시켜 술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화학주라는 오해는 ‘희석식’이란 단어의 어감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다. 희석식 소주에는 열대에서 자라는 ‘카사바’라는 작물의 뿌리를 짓이겨 그 전분을 물에 녹여 건조시킨 타피오카(Tapioca)가 에탄올의 주재료로 사용된다. 이 에탄올을 물에 20% 안팎의 농도로 섞고 인공첨가물을 넣은 것이 현재의 희석식 소주다. 반면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는 어떠한 인공첨가물도 넣지 않는다. 인공감미료나 착향제를 첨가하지 않아도 어지러울 정도의 향긋한 과일향을 낸다. 쌀과 누룩 그리고 좋은 물, 이 세가지 만으로도 놀랍도록 맛있는 술을 빚어낼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규합총서에는 ‘밥먹기는 봄같이 하고 국먹기는 여름같이 하며 장먹기는 가을같이 하고 술먹기는 겨울같이 하라.’고 적혀있다. 따뜻한 밥, 뜨거운 국, 서늘한 장이 좋고, 술은 찬 것이 좋다는 뜻이다. 실제로 막걸리, 소주도 찬 것이 맛이 좋다. 으슬으슬한 뉴질랜드의 늦가을 날씨엔 얼큰한 찌개, 구수한 순대국이나 곱창에 차가운 소주 한 잔이 최고다. 술이란 그 사회를 반영하는 문화의 소산물이다. 술을 다스릴 줄 아는 성숙한 음주문화를 가진 나라가 자국의 술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듯이 우리의 소주(燒酒)가 전통문화의 높은 수준을 담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명주(名酒)가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