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5월이 간다.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가족’의 의미를 되새겼다. 경제위기로 붕괴되어 가는 가정, 그속에서 무한경쟁의 불안감으로 흔들리는 아버지의 대목에서 나는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겨울비가 내리는 저녁이면 우산을 들고 아버지가 탄 버스를 기다렸다. 달려들듯이 우산 속으로 들어온 아버지는 끝내 한 개의 우산으로 집까지 왔다. 작업복에서 나는 인쇄소의 기름냄새와 피로가 묻어나는 땀냄새. 수퍼맨이 지쳤다.
어머니가 준비한 저녁상엔 굵은 파와 매운 고추를 잔뜩 넣은 얼큰한 동태찌게 그리고 과일주가 한잔 담겨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선 과일주를 따라주시며 건배를 하자셨다. 목을 타고 넘어가며 알싸하게 속이 화끈거리는 느낌. 어머니가 제철에 난 포도에 검은 설탕과 소주를 부어 숙성시켜 둔 포도주다. 그 때의 기억으로 나는 아직도 포도주는 달고 은근히 취하는 술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난했지만 똘똘뭉쳐 살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런 존경스러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살고있나 돌아보게된다.
와인 중에도 포도가 술로 발효되어 갈 때나 발효 후에 알코올 함량이 75%정도되는 중성브랜디를 넣어 도수를 높인 포트와 쉐리가 있다. 강화와인(Fortified Wine)이라고 하고 16-20도로 도수가 소주만큼 높다. 이 방법으로 만들어진 와인은 단맛을 내기위해 인위적으로 설탕을 가미할 필요가 없다.
청포도로 만들어지는 쉐리(Sherry)는 식사전에 식욕을 돋구기 위해 마시는 아페르티프(Apertif)용 와인으로 스페인의 남서부 안달루시아의 헤레스 프론테라가 고향이다. 그런데 수입을 해 가던 영국인들이 헤레스라는 지역명을 엉뚱하게 쉐리로 발음하면서 이 술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95%가 팔로미노(Palomino)라는 포도품종으로 만든 화이트와인으로 만들어지는데, 크게 옅은 노란색의 가볍고 부드러운 피노(Fino)와 짙은 호박색으로 농도가 짙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 올로로소(Oloroso)로 나누어진다.
붉은 포도로 만들어지는 포트(Porto)는 남성적인 와인으로 식사가 끝난 후에 치즈나 케이크를 곁들이면서 마시는 디저트와인이다. 포루투칼의 지명으로 큰 항구도시 오포루투(Oporto)에서 유래되었지만 원산지는 중북부에 위치한 도우루(douro)지역이다. 18세기, 프랑스와인의 전면수입금지를 선언한 영국에 수출되던 와인들이 뜨거운 날씨 때문에 식초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브랜디를 섞어서 운반했던 것이 포트와인의 시초였다.
가격이 싸고 대중적인 포트는 루비(Ruby)포트로 2-3년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뒤 병입해 출고된다. 타우니(Tawny)포트는 루비보다는 품질이 좋은 포도를 원료로 제조되며 오크통에서 4-5년간 숙성시킨 뒤 병입해 출고된다. 호박색 또는 엶은 갈색을 띤다. 오크통에서 6년 이상 저장한 것은 Aged Tawny, Old Tawny로 분류되는데 병의 라벨에 숙성시킨 기간(10년, 20년)과 병입날짜가 표기된다. 루비와 타우니 스타일의 포트는 병입 후 바로 마셔야 좋다.
이에 비해 빈티지(Vintage)포트는 병 속에서 오래 숙성시켜 특유의 복합적인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는 고급포트다. 빈티지포트는 기상 조건등이 좋고 풍작이었던 해에 수확한 포도만으로 만들기 때문에 해당연도(Vintage)가 표기된다. 보통 2-3년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뒤 병입하고 그 이후 15년, 20년, 30년 또는 그 이상의 세월을 병 속에서 숙성시킨 후 출고한다. 그래서 침전물이 많이 형성되기 때문에 마실 때는 이를 조심스럽게 분리하는 디캔팅(Decanting)과정을 거쳐야한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중략)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한 시인의 글에 코끝이 찡해진다. 우리는 마신다 그리고 추억한다. 가을비의 축축함과 그리움의 눅눅함에 잘 칵테일된 아버지의 삶의 열정과 말없이 무한한 사랑을 마신다. 음식은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