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는 아직 이른 봄이다. 하지만 서늘한 바람에도 검은 새 한쌍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날아갔고 겨우내 움추리던 미나리와 쑥이 밤새 내린 봄비에 쑥쑥 자라고 있다. 봄 향내나는 냉이 된장국과 텁텁한 쑥국냄새가 코끝을 맴돌더니 나른한 날씨에 꿈이라도 꾸는듯 유년시절 추억 속의 아카시아 향기가 날아온다. 줄기를 주욱 긁어 한움큼 털어넣고 씹으면 입안에 꽉차는 꿀과 꽃향기로 몽롱하던 그 시절. 무엇이 그리 재미있던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처럼 봄바람에 흩날리던 흰꽃들이 하얀 도화지마냥 담백한 샤도네이를 떠올리게 하는 봄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도품종은 대략 1만여가지로 알려져있다. 이중에서 양조용포도(쎄빠쥬, Cepages)는 200여종이고 현재 양조용으로 활용되는 인기품종은 30여가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포도라고 모두 포도주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품종에 따라 독특한 케릭터가 있고 같은 품종이라 하더라도 기후와 토양의 조건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신세대 와인의 선두주자 뉴질랜드에서 샤도네이의 수도는 기스본(Gisborne)이다. 전통적으로 잘익은 복숭아와 멜론, 파인애플 맛이나며 부드럽고 싱그럽다. 두번째로 많은 양의 샤도네이를 생산하는 혹스베이(Hawkes Bay)는 Grapefruit향이 강하게 나는 것이 특징이다. 웰링턴지역은 시트러스(감귤류)향이 가미되며 넬슨지역은 우아하게 헤이즐넛과 시트러스 향이 어우러져있다. 샤도네이의 최대생산지 말보로(Marlborough)지역은 적당한 신맛과 함께 배, 시트러스, Grapefruit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뉴질랜드의 샤도네이(Chardonnay) 또한 생산되는 지역의 테루아와 와인메이커의 노력에 따라 확연하게 구분되는 맛과 향을 가진다.
샤도네이는 어디서든 잘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하며 토양과 기후, 양조와 숙성방법에 따라 완벽한 변신을 해 내는 백색도화지 같은 품종이다. 현재는 화이트와인의 대명사로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지만 프랑스 부르고뉴지방이 원산지이고 샤블리와 마꽁, 샤도네이로 샴페인을 만드는 상파뉴지역에서 주로 재배했다. 만드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만들어 주는 포도품종이지만, 개성이 불분명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 이유는 튀지 않는 담백함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이의 붓에 따라 각양각색의 개성있는 맛과 다채로운 향기로 다시 태어난다. 아카시아 향과 갓 구운 빵 냄새가 나기도 하며 오크 통에서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 크리미한 맛을 내고 바닐라, 버터, 커피, 코코넛, 오크 향을 담기도 한다.
샤도네이의 인기가 꾸준한 이유는 다양한 음식들과 어울리는 완벽한 조화때문일 것이다. 조개류, 생선류등 거의 모든 해산물과 훌륭한 궁합을 만들어내고 잘 숙성된 샤도네이는 담백한 맛의 음식과 감동적인 조화가 이루어진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저온에서 서서히 발효시킬 수 있는 스테인리스 발효조를 개발함으로써 그동안 밋밋하고 개성없던 샤도네이에 신선함과 섬세함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양조기술 덕분에 추운 지역의 샤도네이는 풋사과, 레몬, 감귤 향에 신맛이 강하고 구조가 탄탄하며 따뜻한 지역은 파인애플, 망고같은 열대과일 향과 복숭아, 사과 향기가 더해진다. 이제 더 이상 샤도네이가 개성이 없다거나 단조롭지 않다.
겨울을 이기고 고개를 내민 쑥으로 쑥개떡에 샤도네이면 어떠랴. 육미가 어울어진 봄나물을 양푼에 넣고 고추장으로 석석 비빈다면 오죽 좋으랴. 그리곤 온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수저 부딪쳐가며 오달지게 퍼먹는 광경이 떠올려지는 볕 좋은 봄이다. 시인 김종해님의 글귀처럼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한 두번 아니겠지만 이제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우리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