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원래 더할나위없이 변덕스럽다. 만물을 깨워 소생시키려는 봄의 기운 때문이다. 하루에 사계절이 모두 있다고 말하는 요즘같은 봄이 그래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에 비유되어 튀어오르는 느낌이 나는 스프링(Spring)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저기에서 수선을 떨며 꽃망울을 터뜨리는 햇살 좋은 날엔 꽃향기나는 리슬링 한잔과 한다발의 들꽃을 마주하고 한없이 낭만스러워진들, 수많은 인생의 날들 중에 마냥 철부지같은 하루의 게으름과 호사가, 무슨 대수겠나 싶다.
독일의 라인강일대와 프랑스의 알자스지방에서 주로 재배하던 리슬링(Riesling)은 짜릿한 꽃향기와 과일 향이 강한 와인으로 뉴질랜드에서도 점차 생산량이 늘어가는 추세다. 볕좋은 넬슨지역은 햇과일과 다양한 향신료의 특색이 나타나고 그에 비해 서늘한 와이파라와 센트럴 오타고 지역은 녹색사과와 감귤류의 향이 난다. 특히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말보로지역은 진한 색상과 풍부한 아로마, 깊은 맛의 뛰어난 리슬링이 탄생될 수 있는 청정한 자연을 유지하고 있는 지역으로 레몬, 라임, 향신료의 특색을 갖고 있다.
2000여년전 인체를 자연의 변화 원리와 함께 바라보는 관점에서 저술한 중국고서 ‘황제내경소문’에는 봄의 양생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봄에는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너른 걸음으로 걷고 옷을 편안하게 입고 생각을 자유롭게 해야한다. 소생하는 기운을 느끼고 돕되 죽이지 말고 주되 빼앗지 말고 상하되 벌하지 않는 것이 봄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이다.” 보약이 된다는 봄의 제철음식을 재료 본연의 향과 맛을 살리는 조리법으로 조리해 혈액순환촉진을 돕고 영양소가 풍부하면서도 낮은 칼로리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여기에 리슬링 한잔을 곁들인다면 봄의 파릇한 향과 기운찬 봄의 활력을 담은 상생의 식사가 될 것이다.
향내나는 아로마틱 와인 중에는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 ztraminer)가 있는데 장미꽃잎에서 나는 향기가 매력적이다. 그밖에 리슬링의 교배종으로 독일에서 처음 재배된 뮬러 트루가우(Muller Thurgau)가 있고 이태리가 원산지이면서 복숭아와 자두맛을 내는 피노 그리스(Pinot Gris)는 뉴질랜드에서도 급성장하고 있는 포도품종이다. 또한 프랑스가 원산지인 비오니에(Viognier)는 숙성될수록 복숭아와 자두 맛에 꽃향기가 더욱 더 진하게 더해진다. 대체로 아로마틱와인은 과일이 가미된 샐러드나 중국, 인도, 타이, 말레이시아등 향신료가 들어간 단맛의 음식에 잘 어울린다.
풍부한 향기 덕분에 디저트와인(스위트와인)을 만드는 데에도 리슬링이 사용되는데, 주로 수확시기를 늦춰 당도를 높인 레이트 하베스트(Late Harvest) 와인들이다. 또한 독일이나 캐나다 등 추운지방에서는 일부러 포도가 어는 추운시기에 수확해 디저트와인을 만들며 이를 아이스 와인(Ice Wine)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탈수를 일으키는 보트리티스 시네리아(Botrytis Cinerea)균에 감염시켜 당분을 농축시킨 포도로 디저트와인을 만들면 보다 깊고 진한 놀라운 향기를 갖게되며 장기숙성(5-10년)도 가능하다. 스위트와인은 진하고 농익은 달콤함 때문에 간단한 디저트와 함께해도 좋지만 와인 자체만으로도 그 감미로움에 매료된다.
젊은 혜민스님이 쓰신 책을 보다가 문득 ‘초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처음마음, 초심이라는 단어는 부지런히 생명활동을 하는 봄마냥 뜨거운 열정을 되살려 가슴을 설레게한다. 그는 ‘인생은 한방’ 이라며 헛되고 허망한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복권대신 꽃을 사라. 꽃 두 세송이라도 사서 모처럼 식탁에 놓아보면 당첨확률 백퍼센트인 잔잔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붉은 여왕과 달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숨차도록 뛰고 달리지만 인생은 가끔 속도에 대한 조절이 필요하다. 우울한 소식뿐이라고 침울해하지말고 봄의 꽃향기에 실려온 리슬링 한잔과 뉴질랜드의 청명한 하늘이 선사하는 슬로우라이프의 행복을 만끽해도 좋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