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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四旬節, Lent)이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절제하는 생활, 기도, 금식에 초점을 두는 교회력(敎會曆)의 한 절기이다. 올해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인 지난 2월 22일 시작되어 부활주일인 오는 4월 9일 하루 전날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의 기간이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사건이 많이 등장하며, ‘40’이란 고난과 시련과 인내를 상징하는 숫자임을 알 수 있다.
로마 가톨릭이나 영국 국교회에서는 ‘사순절’을 ‘대제절(大祭節)’이라고도 한다. 3세기 초까지는 절기의 기간을 정하지 않고 이틀이나 사흘 정도 지켰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 때부터 40일간의 기간이 정해졌다. 로마 가톨릭이나 영국 국교회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회개와 기도, 절제와 금식, 깊은 명상과 경건의 생활을 통해 수난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순절의 기간은 동방교회(東方敎會, 정교회)와 서방교회(西方敎會, 가톨릭교회)가 서로 달리했다. 동방교회는 600년경부터 7주간으로 했고(토요일과 주일을 제외하고 부활주일만 포함하여 36일을 지킴), 서방교회는 6주간(주일을 제외하고 36일을 지킴)으로 했다. 예루살렘교회만 4세기 때처럼 40일을 지켰는데 그중 5일만 금식했다. 그러던 것이 교황 그레고리(Pope Gregory, 590-604) 때부터 40일을 지키게 되어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재의 수요일 예배에서 목사는 참회의 상징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태운 뒤 남은 잿가루(ash)로 교인들의 이마에 점이나 십자가를 그리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의식을 갖는다. 세계 각국의 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을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절제와 성경 읽기 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는 ‘사순절이란 무엇이며 사람들이 무언가를 포기하는 이유는 뭘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국 기독교인의 사순절을 조명했다. BBC는 “예수 그리스도가 40일 동안 금식한 뒤 사탄(Satan, 惡魔)의 유혹을 이긴 것처럼 사순절 기간 기독교인은 경건한 마음으로 절제하라”로 조언했다.
그러면서 “보통 영국의 기독교인은 사순절이 되면 사소하게는 초콜릿과 같은 디저트나 SNS 등 본인이 평소 좋아하던 것을 멀리하며 절제하는 삶을 산다”면서 “집안일을 돕거나 가족과 친구에게 더 따뜻하게 대하는 등 행동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사순절 기간 동안 사순절 식사(Lent Fare)라고 하는 고기를 제외한 채소 중심의 단순한 음식을 먹었다. 하루에 한 끼 저녁만 먹되 채소와 생선과 달걀만 허용되었다. 9세기에 와서 이 제도가 약간 완화되었고, 13세기부터는 간단한 식사를 허용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금식은 완화되었고, 교회에 따라서 구제와 경건의 훈련으로 대치하여 지키고 있다.
기독교 환경운동 단체들과 교회들이 해마다 사순절이 다가오면 탄소 금식 캠페인을 진행한다. 즉, 사순절 기간에 지구 온난화(溫暖化) 주범인 탄소(炭素, Carbon, 원소기호 C) 배출을 줄이면서 환경 선교를 실천해 보자는 취지다. 인간의 활동에는 탄소가 배출되므로 지구 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졌고. 기후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탄소 중립(炭素中立, Carbon Neutrality)은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탄소 포집으로 제거하여 순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드는 것이다. 엄밀히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온실가스(Greenhouse Gases. GHGs)의 제거가 목적이지만,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와 메테인(메탄, methane) 등 탄소 관련 물질이 대부분의 온실 효과를 차지하기 때문에 탄소 중립이라는 표현이 널리 사용되었다.
온실가스(GHGs)란 지구 대기를 오염시켜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가스들의 총칭이다. 산업혁명(1860년대) 이전의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비교적 일정했으나,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의 농도는 인간 활동으로 인하여 직•간접적으로 증가했으며 매해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1992년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온실가스의 인위적 방출을 규제하기 위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채택됐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 제3차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는 지구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 이행 방안으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하였다.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京都議定書)에 삭감 대상으로 꼽힌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수화불화탄소(HFCs), 과불화탄소(PFCs), 육불화유황(SF6) 등 6가지이다.
연세대학교회(Yonsei University Church) 교인들은 탄소금식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탄소 금식’은 종교적으로 절제를 강조하는 시기에 지구 생태(生態)를 지키는 실천에 동참하자고 촉구하는 운동이다. 탄소 금식은 지구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편의만 생각하는 일상이 환경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 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국제환경단체 ‘지구 생태발자국 네트워크(Global Footprint Network, GFN)’는 인간이 자원을 소비하고 폐기물(廢棄物)을 배출해 생태 재생에 끼치는 영향을 감당하려면 지구가 몇 개 필요할지를 환산해 경고하고 있다. 한국인의 소비 패턴은 1961년에는 지구 0.25개가 필요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산업 발전과 더불어 생태 부담은 점점 커져 1979년에는 지구 1.1개 수준이 되었고 2018년에는 3.99개에 달했다. 즉,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평균적인 한국인처럼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면 지구가 4개 있어야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2023년 사순절을 맞아 경견과 절제로 탄소금식을 실천하여, 기후위기 시대에 창조질서 보전에 힘쓰는 녹색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사순절 탄소금식 실천 지침은 다음과 같다.
<1주: 2월 22일(수)-25일(토)> TV•디지털 금식
▲TV를 끄고 내 삶의 방식을 회개하며 기도하기, ▲기후위기 관련 책 읽기, ▲기후위기 관련 온라인 강의 듣기, ▲필요 없는 이메일 및 앱 지우기.
<2주: 2월 26일(일)-3월 4일(토)> 플라스틱 금식
▲텀블러(tumbler) 가지고 다니기, ▲장바구니, 면 주머니 가지고 다니기, ▲비닐 포장이 없는 채소 가게 이용하기, ▲테이크아웃(takeout) 음식 주문할 때 용기 가져가기, ▲다 쓴 플라스틱 통(용기)에 리필하기(샴푸, 세제 등), ▲1회 용품 쓰지 않기(빨대, 수저, 포크, 접시 등), ▲물티슈 쓰지 않기.
<3주: 3월 5일(일)-3월 11일(토)> 식생활 금식
▲배달 음식 시키지 않기,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junk food) 사 먹지 않기, ▲하루 한 끼 이상 채식하기, ▲소고기 먹지 않기 또는 소고기 덜 먹기, ▲지역 제철(유기농) 농산물 사용해 음식 만들기, ▲음식 남기지 않기, ▲캔 음료 대신 병 음료 마시기.
<4주: 3월 12일(일)-18일(토)> 의생활 금식
▲옷장 정리해 안 보여서 못 입던 옷 찾기, ▲일단 산 옷은 오래 입기, ▲유행 지난 옷은 고쳐 입기, ▲안 입는 옷은 기증하기, ▲합성섬유가 아닌 천연섬유 옷 사 입기, ▲‘아나바다’ 장터에서 중고 옷 사 입기, ▲구두는 굽 갈아서 신고, 운동화는 고쳐서 신기.
<5주: 3월 19일(일)-3월 25일(토)> 에너지 금식
▲전기, 가스, 물 절약하기, ▲쓰지 않는 가전제품 플러그 뽑아두기, ▲짧은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 이용하기, ▲먼 거리는 대중교통 이용하기, ▲3층 이하는 걸어 다니기, ▲자가용 이용 시 1km마다 50원씩 탄소헌금하기, ▲가정용 태양광 설치하기.
<6주: 3월 26일(일)-4월 1일(토)> 탄소흡수원 만들기 금식
▲탄소흡수원에 대해 알아보기(숲, 습지, 농지 등), ▲텃밭(상자) 가꾸기, ▲정원 가꾸기, ▲반려 식물 키우기, ▲나무 심기 또는 은총의 숲에 헌금하기, ▲화분 식물 선물하기, ▲종이 사용을 최소화하기.
<7주: 4월 2일(일)-4월 8일(토)> 소비 금식
▲홈쇼핑 안하기, 온라인 주문 안 하기, ▲쇼핑몰 안 들르기, ▲냉장고 파먹기, ▲집 정리하여 안 쓰는 물건 나누기, ▲아나바다 장터나 중고 마켓 이용하기, ▲성금요일(聖金曜日, Good Friday)엔 아무것도 안 사기, ▲커피 전문점 안 들르기.
지구와 마음을 잇는 탄소 금식에는 ‘플라스틱쓰레기 버리지 않기’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점점 더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되고 있다. 플라스틱(plastic)은 분해되지 않고 계속 남는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2050년에는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이 남을지도 모른다. 해양 플라스틱은 매년 1백만 마리 이상의 바닷새와 10만 마리의 해양 포유류를 죽이고 있다.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s)은 물고기 뱃속을 거쳐 인간에게 거슬러 올라와 섭취하게 되므로 건강을 해친다.
일회용(플라스틱) 금식은 비닐봉지와 일회용품(컵, 수저, 포크, 빨대, 접시 등)을 사양하고, 장바구니와 텀블러 사용을 생활화하여야 한다. 개별 포장된 제품, 일회용품 사용이 많은 배달음식을 삼가고, 일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가정에서 폐기물 1kg을 모아 버린다고 할 때, 그 물품을 만들고 포장하고 소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약 71kg의 폐기물이 생기므로 무분별한 소비가 환경에 해악을 끼친다.
식생활(食生活) 금식 실천지침에는 고기 덜 먹기, 하루 한 끼 이상 채식하기 등이 있다. 2022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56.7kg)보다 육류(肉類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소비량(58.4kg)이 더 많았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의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인 육류 소비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육류 과잉섭취는 성인병 위험도가 높아지므로 콩, 견과류 등 식물성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한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지역농산물을 구입하면 생산한 것을 바로 수확하기에 매우 신선하며 제철식품 구매도 늘일 수 있다. 로컬푸드(local food)를 구매하는 일은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 소비자가 농작물이 자라는 환경과 재배방법에 관심을 두면, 농민이 지속가능하고 친환경적인 농업을 하도록 지원할 수 있다. 또한 농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다. 로컬푸드를 더 많이 소비하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우리들의 삶의 터전인 지구가 기후위기로 병들어 가고 있다. 지구의 아픔을 덜어주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우리 모두 ‘지구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여야 한다. 지구가 건강해야 사람들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일 년 365일 ‘탄소중립’을 생활화하여야 한다. 매일매일의 탄소중립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