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최성길
Danielle Park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크리스틴 강
들 풀
김수동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정동희
EduExperts

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0 개 848 템플스테이

강진 무위사 ‘달빛 명상’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543_2619.png
 

달이 뜨는 산, 달 아래 마을

달의 아이들이 뛰놀고 

무위사 극락보전이 

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다

둥글게 달이 떠오르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충일하게 다정하게

빛나는 순간이다


부처님이 보았던 달이다. 그와 나 사이의 시공간을 삭제한다면 우리는 지금 저 달을 동시에 보고 있는 셈이다. 정수리부터 등줄기를 타고 찌르르 전율이 인다. 마침내 달을 사이에 두고 그와 내가 앉아 숨을 쉬며, 생생히 살아있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에 달빛이 촉촉이 스며든다. 


달에 관한 최초의 기억이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초저녁 무렵이었다. 차창 밖으로 엄지손톱에 가려질 만한 크기의 돌멩이 같기도 하고 찹쌀떡 같기도 한 희고 둥근 구멍이 자꾸 쫓아왔다. 낮고 창백한 건물에 가려 사라졌는가 하면 어느새 옆에 다시 나타나서는 뚫어지게 쳐다보며 따라오던 눈 하나. 


서울 변두리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버스 창가에 앉은 한 아이를 미행하던 그것은 어쩌면 그가 맞닥뜨린 최초의 자아였을 것이다. 아이는 어지러워 엄마 무릎에 귀를 대고 누웠고, 그때부터 세상의 멀미를 시작했던 것 같다. 삶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된 순간이다. 


달이 차면 나타나는 것들


월출산 월하리 무위사. 바다가 내륙으로 깊숙이 스며든 강진과 해남, 완도, 장흥, 영암 다섯 개 군의 관문인 성전면에 위치한 천년고찰. 절 이름과 지명을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명상적인 그곳에서는 한 달에 보름달이 차는 사흘만 허락되는 ‘달빛 따라 마음 여행’ 템플스테이가 펼쳐진다. 


그날의 월출 시각은 오후 6시 12분. 하루 종일 날이 흐려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저기 먼 하늘 중간 중간 퍼런 하늘이 언뜻언뜻 보이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월출 시간이 지나 천지사방이 초저녁의 푸른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거무스름한 구름에 가려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동쪽 어느 하늘에서 갑자기 얼굴을 내밀 것도 같았다. 절집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처럼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기대감이 고조되었을 때다. 침침해 가는 사위에서 극락보전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단단하게 나이든 소박하고 정갈한 오래된 목조 불전이 영롱하게 빛났다. 마치 청춘처럼 아미타여래삼존벽화를 배후로 아미타삼존불이 극락보전 가운데 열린 문으로 나투셨다. 오늘 당신들의 달을 기다리는 마음을 저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뜻밖의 연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황홀한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란 말에서 어려움과 고결함이 분절되기 전인 고대의 희랍어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686_734.png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달래다


세종 12년, 오래되어 퇴락했던 무위사를 중수하여 수륙사로 지정했다. 수륙사란 바다와 육지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천도의식을 지내기 위한 절이다. 그러한 뜻을 담아 정성스럽게 불전을 지었고, 이승의 존재들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셨다. 극락보전과 함께 국보로 지정된 후불 벽화와 그 뒤편의 신비로운 관음보살도를 바라보며 한이 많아 떠도는 중음신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또 빌었다. 


달빛 따라 마음 여행의 첫 수행은 무위사 총무 항덕 스님을 따라서 무위사를 배우는 시간이다. 절의 역사며 전각들의 미학과 불상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배우고자 함이 아니었다. 수륙재를 지내는 민중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 마음에 마음 하나를 보태는 간절함이 되어 보는 시간이다. 세상의 모든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마음…. 그 심정으로 극락보전을 다시 바라보자 그것은 불법(佛法)으로 하나하나 엮은 둥지 같았다. 


눈을 감고 다짐했다. “나는 나의 마음을 믿지 못해서 마음 가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지 않겠다. 끊임없이 선의와 다정 쪽으로 마음을 챙겨 돌려야겠다.” 아미타여래의 협시불인 지장 보살과 관음 보살은 자비와 결기로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세 그루의 높고 그윽한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있는 극락보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무위사 템플스테이 오인숙 팀장이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템플스테이의 다음 일정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671_6615.png
 

마음의 토끼를 찾는 시간


탁 탁 탁. 


허튼 생각 나부랭이 떨쳐버리고 정신 차리라고 어깨를 내리치는 주지스님의 죽비소리. 단일하게 숨만 쉬면서 눈, 코, 입, 귀, 몸, 뜻 여섯 개 번뇌의 구멍을 꽉 틀어막으면 막다른 곳으로 토끼가 뛰쳐나와 단박에 품에 안길 거라고 인도하는 무위사 주지 법오 스님을 따라 참선하는 시간이다. 숨이 들어왔다 잠시 머물렀다가 빠져나가는, 달빛을 받았다가 머금었다가 사그라트리는 무위의 존재를 일깨우려 하심일까. 


아, 그러나 실재는 숨 한 번에 오만가지 생각이 틈입하고 어디로인지 모르게 빠져나갔다. 놓쳤다, 아니 토끼는 처음부터 거기 없었던 것 같고 나는 토끼를 잡을 발심조차 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을까. 


큰 비가 지난 여름 쏟아졌다. 내륙으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으로 지도에 없는 거대한 물웅덩이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최악의 호우가 여기 있었고, 저기에는 최악의 가뭄이 있었다. 바닥을 드러낸 체코 북부의 엘베강에는 가뭄의 역사를 새겨놓은 기근석이 발견되었다. 중세시대 돌에 새긴 글귀는 ‘내가 보이면 통곡하라’였다라고.


탁 탁 탁. 


참선의 마침을 알리는 죽비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생각을 멈추고 그저 숨만 쉬는 것이, 생각을 멈추고 그저 숨만 쉬려고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일까. 법오 스님이 질문할 기회를 주셨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e08e75d3d4a087f3223587d1b4dbaed4_1678842653_3837.png
 

다정하게 달이 다가와서


이윽고 밤이 되었다. 해가 떠서 밝은 시간을 낮이라고 하는데, 달이 떠 비추는 시간을 칭하는 말은 왜 없는 것일까. 달낮이라고 하면 될까. 일 년에 단 한 번 지옥문이 열린다는 백중날이 가까운 때라 보름달이 떠 오를 것이었다. 


하루 종일 흐린 날이었으나 저녁 무렵이 되어서 점차 구름이 벗겨졌다. 그때다. 잠시 잠깐이었지만 높다란 팽나무 가지 사이로 달이 얼굴을 내비쳤다. 그 순간이 너무도 짧아서 갸륵했다. 


나무의 나이까지 더해 칠백 살이 넘은 무위사 극락보전이 달빛을 머금자 순간 청춘의 모습이 되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이렇게 나중에 완성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는 오래된 목조불전은 조만간 보수작업에 들어가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달의 아이들이 되어 극락보전 앞에 앉았다. 달은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갔지만 눈앞으로 환하게 둥근 달이 다가왔다. 욕망과 폭력과 그리고 허무에게 끝없이 시달리느라 지친 몸과 영혼을 비추는 달은 그 빛과 기운이 다정했다. 


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에서의 달빛 명상이 인생의 한 컷으로 기억되는 순간이었다. 달을 볼 때마다 언제라도 그 기억 속으로 달려갈 것 같다.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웨지 샷(Wedge Shot) 다운스윙의 이해

댓글 0 | 조회 969 | 2023.03.28
긴 클럽의 다운스윙은 전환(Transition)의 단계를 거쳐 축적된 파워를 손실없이 임팩트로 가져가는 역할이다. 여기에 파워와 스피드를 더 올려주기 때문에 다운… 더보기

고용법 개정 동향

댓글 0 | 조회 1,237 | 2023.03.27
2018년 고용관계법이 크게 개정된 이후 뉴질랜드 정부는 지난 몇 년간 고용 관련 법률을 점진적으로 개정해 왔습니다. 5일에서 10일로 늘어난 병가, 가정폭력의 … 더보기

100Reps 올인원 전신 다이어트에 도전하는 날!

댓글 0 | 조회 847 | 2023.03.27
제 수업을 꾸준히 듣는 줌라이브 수업 회원들과 유튜브 구독자들로부터 듣고 있는 긍정적인 피드백 중 하나가 체중과 눈에 보이는 신체의 변화인데요, 체중이 줄어든 것… 더보기

맑은 기운, 탁한 기운

댓글 0 | 조회 1,127 | 2023.03.27
기운은 맑고 탁함에 따라 정기(精氣)와 탁기(濁氣)로 나뉩니다. 정기는 맑고 밝고 온화해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기운이고, 탁기는 매연같이 탁한 기운입니다.탁기를… 더보기

췌장암(膵臟癌)

댓글 0 | 조회 1,108 | 2023.03.24
<73세에 시작한 마라톤 88할(세)때까지 달린다>란 제목의 책자를 발간한 필자의 고등학교 동창생 L박사(행정학)가 지난 2월에 췌장암(膵臟癌) 말기 … 더보기

자녀들의 문제로 고민하세요?

댓글 0 | 조회 1,580 | 2023.03.15
- 학부모 지원 그룹과 도박의 종류아시안 패밀리 서비스의 무료 상담의 대상은 도박자나 도박자의 가족들 그리고 도박자가 주변인으로 있는 분들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 … 더보기

신 노인시대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

댓글 0 | 조회 1,983 | 2023.03.15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공자의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한번뿐인 인생을… 더보기

신권위주의, 외로운 이들을 사로잡는 지배전략

댓글 0 | 조회 955 | 2023.03.15
▲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우크라이나 침공을 포함해 최근 러시아의 상황을 지켜보는 외부자들이 놀라는 한가지 사실이 있다.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힘든 푸틴의 높은 지지… 더보기
Now

현재 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산다는 것

댓글 0 | 조회 849 | 2023.03.15
강진 무위사 ‘달빛 명상’달이 뜨는 산, 달 아래 마을달의 아이들이 뛰놀고무위사 극락보전이아름답게 빛나는 순간이다둥글게 달이 떠오르고세상의 모든 존재들이충일하게 … 더보기

어서와, 파트너쉽 비자는 처음이지

댓글 0 | 조회 4,174 | 2023.03.15
한국적인 정서상, “파트너-partner”라고 하면 조금 생소할 수 있습니다만, 뉴질랜드 이민부가 이해하는 파트너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합법적으로 결혼할… 더보기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법

댓글 0 | 조회 1,319 | 2023.03.15
어떤 유형의 학습 패튼을 가진 학생이든, 혼자 공부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때때로 이 또한 어렵고 좌절할 수도… 더보기

웨지 샷(Wedge Shot) 백스윙의 이해

댓글 0 | 조회 1,172 | 2023.03.15
어드레스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일반적인 드라이버나 아이언샷은 자신의 어깨넓이 만큼 스탠스를 넓게 서는 것이 좋다. 큰 스윙을 위한 하체의 고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더보기

라누이 지역의 사람들의 하우오라(웰빙)을 향상한 “How are you Ranui…

댓글 0 | 조회 992 | 2023.03.14
이번 2월 25일, 리커넥트는 “How are you Ranui?” 이벤트를 라누이 도서관에서 개최하였다. 이번 이벤트는 라누이 지역에 있는 커뮤니티를 위해 웰빙… 더보기

‘하체 레전드’ 근력 강화를 위한 안벅지 운동

댓글 0 | 조회 1,163 | 2023.03.14
무릎 약한 분들, 하체 근력 약하신 분들, ‘하체 비만’으로 고민이신 분들을 위해 이번주는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안전한 하체운동을 소개해드립니… 더보기

이주 금지 명령(Orders Preventing Removal)

댓글 0 | 조회 2,737 | 2023.03.14
두 부모가 헤어질 경우, 가장 큰 갈등의 원인 중 하나는 한 부모가 자녀를 다른 나라로 데려가고 싶어할 때입니다. 특히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경우로, 부모중 한사람… 더보기

구름장(葬)

댓글 0 | 조회 828 | 2023.03.14
시인 송 재학낮달이 구름 속에서 머리 내밀 때마다 궁금한 배후, 씻긴 뼈같은, 해서체 삐침 같은, 벼린 낫의 날 같은, 탁본 흉터 같은것이 새털구름을 징검징검 뛰… 더보기

기(氣)는 본질

댓글 0 | 조회 782 | 2023.03.14
저는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사람도 물질도 분해해 가다 보면 산소 몇 퍼센트, 수소 몇 퍼센트로 나눠진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나누고 또 나누었을 때의 … 더보기

엄마, 전 유튜브로 공부하고 싶어요 - 2편

댓글 0 | 조회 874 | 2023.03.14
지난 1편에서는 온라인매체와 자료를 이용한 학습이 전통적인 학교, 학원 교육에 진배없는 학습기여도를 보일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여도는 과목의 … 더보기

미리 치매를 알 수 있을까?

댓글 0 | 조회 1,008 | 2023.03.14
치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진다. 첫째가 알츠하이머병으로 불리우는 치매로 대부분 여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원인은 노화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둘째는, 혈관성… 더보기

그대 어이가리

댓글 0 | 조회 922 | 2023.03.14
내가 안 할 걱정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 시사회를 한다기에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그냥 보았다. ‘그대 어이가리’라는 영화인데 사전 정보 없이 보다가 서서히… 더보기

지구의 아픔을 함께 나눈다

댓글 0 | 조회 1,007 | 2023.03.10
사순절(四旬節, Lent)이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절제하는 생활, 기도, 금식에 초점을 두는 교회력(敎會曆)의 한 절기이다. 올해 사순절은 … 더보기

우리는 깃발이 되어 간다

댓글 0 | 조회 873 | 2023.03.01
시인 안 도현처음에 우리는 한 올의 실이었다당기면 힘없이 뚝 끊어지고입으로 불면 금세 날아가버리던감출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나뉘어진 것들을 단단하게 엮지도 못하고… 더보기

엄마, 전 유튜브로 공부하고 싶어요 - 1편

댓글 0 | 조회 1,157 | 2023.03.01
정비소에서 거의 두 달동안 수리를 받은 자동차가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그 긴 시간동안 정비소에서 빌려준 자동차를 타고 다니다보니 제 차가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할 … 더보기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댓글 0 | 조회 955 | 2023.03.01
미얀마에서 온 두 청년의 봉정사 템플스테이와 안동 여행낯선 곳은 새로운 스승과 같은 것은 아닐까.익숙한 곳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지식과 지혜가 펼쳐지는낯선 곳… 더보기

로드와 릴리앙

댓글 0 | 조회 986 | 2023.03.01
어김없이 또 새 해가 밝아왔다.둘러보니 어제와 다른게 하나도 없는데 마음은 왜 이토록 다르게 느껴지는지... 여러가지 상념들이 어지럽게 머리속을 헤짚는다.맨 처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