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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2012. 16:58 안진희 (202.♡.85.222)
시티새댁의 육아일기
드디어 오늘이다.
애들 없이 엄마들끼리만 만나서 송년회를 하기로 약속한 바로 그날이다.
한 엄마가 하루 저녁만이라도 아이들 떼놓고 만나서 우아하게 칵테일도 마시고 수다도 떨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한 이벤트인데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발벗고 동참하고 나섰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혼자 몸으로 예쁜 옷 입고 나가서 논다는 생각에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는지 마냥 기분이 들뜬다.
착한 신랑은 본인 스케줄까지 조정해가며 애 걱정은 말고 가서 신나게 놀고 오라고 적극 후원해 주신다. 내가 역시 신랑 하나는 잘 만났으. 캬아~
나홀로 송년회에 동참하겠다 선언한 엄마들은 무슨 대단한 동지들이라도 된 양 수시로 서로의 근황을 체크해가며 들뜬 마음으로 함께 날짜를 카운트 해 갔다.
요령 있게 어르고 달래면 한 숟갈이라도 더 먹는데 아빠가 잘 먹일 수 있을까. 아빠가 TV 보는 새 혼자서 위험한 일을 벌이지는 않을까. 졸리기 시작하면 아빠고 누구고 다 필요 없이 엄마만 찾는데 잠이나 재울 수 있을까.
흠.. 정신을 차리고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걱정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아.. 계획을 짜야 해 계획을.
아빠가 쉽게 먹일 수 있는 걸로 애 밥을 준비하고.. 아빠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걸로 준비하고.. 간식도 주기 쉽게 챙겨놓고..
막상 당일이 되니 아침부터 분주하고 정신이 없다. 장도 좀 봐둬야겠고. 볼일도 얼른 봐야겠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뛰어 다녔더니 하루가 너무 길다. 엄마들 만나기로 한 시간은 8시인데 흑. 모임은 가기도 전인데 벌써 지쳐버렸다.
아빠들 퇴근해서 저녁 챙겨주고 애들 맡기고 나와야 하니 약속시간이 그렇게 늦게 잡힌 것이다. 그나마 우리 신랑은 8시에 퇴근하는 날이라 허겁지겁 바통 터치해서 8시 반까지 합류하겠다고 약속 해 두었다.
아.. 이제는 드디어 꽃단장을 해야 할 시간인데… 나름 곱게 화장을 해보려 하는데 아들 녀석이 말도 안되게 짜증을 부리기 시작한다. 달래도 봤다가 소리도 질러봤다가. 이미 눈썹은 좌우 비대칭에 모양도 제멋대로. 파격적인 스모키 눈화장으로 분위기를 확 전환시키고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겠다 생각하며 야심차게 찍어 발랐건만. 거울 속엔 어디서 한대 맞기라도 한 것 같이 눈이 시푸르 딩딩하기만한 아줌마 하나가 앉아있을 뿐이다.
미장원 갈 타이밍을 놓쳐서 한껏 자라버린 앞머리도 참 처지가 곤란이고.
애 놓기 전에 입던 원피스를 애써 끼워 넣는 데는 성공했는데.. 튀어나온 배는 어쩔거고 우락부락해진 어깨 근육과 팔뚝살은 어쩔거야.
엄마가 지 떼놓고 나간다는 걸 아는지 아들 넘은 아까부터 옆에서 넘어가라 울어대며 매달리고 있다. 기껏 꺼내 입은 옷이 눈물 콧물에 범벅되고 애랑 씨름해 가면서 화장을 하느라 이미 화장도 번져있고.
아빠를 데리러 가야 바통 터치해서 제 시간에 모임에 갈 수 있는데 카시트도 안타겠다고 울고불고 버팅긴다.
이미 진은 다 빠지고 괜히 내 한 몸 놀겠다고 애한테 소릴 지른 것 같아 마음도 아프고. 신랑은 또 퇴근하자 마자 무슨 고생인가 싶은 생각에 모임에 갈 마음이 싹 달아나 안 가겠다고 돌아서는 것을 그럴수록 더 나가서 기분 풀고 와야 한다며 애써 신랑이 등을 떠민다.
두 배 가격인 칵테일은 본전 생각나 아무도 선뜻 못 시키고 한 병씩 시킨 맥주도 오랜만에들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반도 못 마시고. 떼놓고 나온 애랑 신랑 생각을 하다보니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는 애들 이야기가 다인 세 시간 가량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세 시간 만에 집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지. 돌아와 개판이 되어 버린 집을 봐도 어서 치워야겠다는 에너지가 샘솟는다.
아들. 매정하게 떼놓고 가서 정말 미안했어. 그치만 엄마가 즐거운 에너지를 한껏 충전하고 왔으니 우리 힘내서 더 많은 날들을 재미나게 보내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