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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2012. 17:03 안진희 (202.♡.85.222)
시티새댁의 육아일기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엄마 곰은… 날씬하다네… 어디서 관리라도 받는 건가..
엄마 곰도 날씬한데… 난.. 흠…
애기 엄마치고 날씬하단 소릴 듣는 편이기는 하지만.. 나도 ‘그냥’ 날씬하고 싶다. 흑.
옷을 10년쯤은 너끈히 입는 스타일이라 처녀적 입던 옷들을 여태 입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예전 느낌이 살질 않는다.
한층 우람해진 팔뚝에 떡 벌어진 어깨, 울퉁불퉁 살이 붙어버린 등짝. 몸이 어떻게든 애 놓기 전 입던 옷에 끼어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해야 하는 건가.
거울을 볼 때마다 우울하다. 아… 날씨 탓인가..
뭔 날씨가 자꾸만 한국을 닮아가는지 요즘은 햇볕 쨍 맑은 하늘에 상쾌한 찬 바람이 부는 것이 영락없는 한국 가을 날씨 같다. 그 덕에 마음도 싱숭생숭 한 것이 찬 바람에 허파에 구멍이라도 뚫렸나 보다.
바람이 많이 불고 비도 종종 와 대기 시작하니 아들을 데리고 외출할 기회가 줄어들어 아들도 힘이 남아 돌아 주체를 못하시고. 내일 모레 40을 바라보는 엄마의 체력으로는 당최 그 에너지를 따라 잡기 힘들 지경이다.
그덕에 거울을 보면 언제나 팔뚝 굵고 초췌한 아줌마 하나가 서있다.
우울증인가.. 아니 조울증인가..
아들과 재미나게 오바해서 놀다가도 뭐 하나가 잘못되면 급 뚜껑이 열려서 버럭 소리를 질러 분위기를 반전시켜 버리니… 도대체 ‘안돼!’ 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하면 듣는 애들이 있기는 한 걸까. 허긴 우리 아들도 ‘안돼!’ 하고 단호하게 말하면 눈치를 보기는 한다. 엄마가 화내기 시작하면 얼마나 무서운지 종종 봤으니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기는 하겠지. 일관성 있게 애를 대해야 한다는데 내가 아무리 일관성 있게 대해도 아들넘이 일관성이 없으니 이 일을 어쩌란 말인가.
요즘 부쩍 말도 많이 늘어서 못 알아 듣겠는 말을 많이 해대는데 어떻게 꼭 자기가 하는 말을 엄마가 정확한 발음으로 반복해줘야 만족하지, 뭔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어서 그냥 대충 ‘아.. 그거?’라고 얼버무리기라도 하면 바로 짜증이 폭발하고야 만다.
‘짜증내지 말고 다시 얘기해줘봐.’ ‘뭔지 직접 가서 찍어줘봐.’ 등등 좋은 말로 타이르다가도 아들의 짜증이 계속되면 나도 열이 슬슬 올라오다 결국에는 뚜껑이 확 열려버리고 만다.
아기 곰은 귀엽다는데. 우리 집 아기는 마냥 귀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귀여운 아기 곰도 날씬한 엄마 곰을 짜증나게 할 때가 있을까?
뚜껑이 열려버리면 열이 받아서 기분이 안 좋기도 하지만, 그걸 참지 못하고 애한테 심하게 한 게 아닌가 하는 자책감에 기분은 더 우울해진다. 아이들에게도 바로 사과하면 깊은 상처로 남지 않는다는 교육법을 들은 적이 있어 화를 내고도 바로 사과를 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놈의 자책감은 어쩔 수 없어서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남고, 그 스트레스는 먹는 걸로 이어져서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우격우격 먹어대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니 몸매가 퍼질 수 밖에.
곰네 가족은 아빠 곰이 아기 곰을 보고 엄마 곰이 나가서 일을 하나…
그래서 아빠 곰은 육아 스트레스에 시달려 뚱뚱해진 건가…
하루에 세, 네 시간 정도만 애를 보는 거라면 나도 화내지 않고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그 시간만 참으면 지나가는 거니까.
그런데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건… 아무리 몸이 피곤하고, 짜증이 나도 눈을 뜨면 내내 아들이랑 붙어있어야 하고, 눈을 감고 잠자는 동안마저도 신경 쓰느라 푹 잘 수 없다는 사실이다. 24시간 주 7일, 365일. 그 생활이 벌써 2년을 꽉 채웠으니 스트레스도 받을 법 한 건가.
아들아. 엄마도 날씬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짬짬이 운동이라도 하도록 노력할 테니 아들도 짜증내지 않는 마냥 귀여운 아들이 되도록 노력해주겠니? 그나저나 아빠는.. 뚱뚱해지면 안되는데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