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다 말고 불현듯 치밀어 오르는 화를 못 이기고는 고무장갑을 벗어 던져버렸다.
며칠 전 놀러왔던 아들 친구네 엄마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라 찬찬히 곱씹다보니 결국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우리 아들한테 장난감을 한번 뺏기고 나더니 그때부터 장난감을 뺏더라나… 흠… 들을땐 그러려니하고 넘겼는데 문득 생각나서 이래저래 생각하다보니 이거 무슨 내가 아들내미 크게 잘못 키운 것 같은 것이 급기야 우리 아들이 불화의 씨앗인가 싶은 생각이 들더니 결국 화살이 그 집 엄마에게로 돌아가서는 ‘아니, 우리 아들만 그러나? 나쁜 건 다 남한테 배우나? 지 딸도 우리 아들 밀어 넘어지게 하드만 우리 아들이 지 딸한테 배워서 밀친다 그럼 좋나?’
이것 참… 나름 배웠다 교양있는 지식인이라 자부했건만 애 문제 앞에서는 단순 무식한 단무지 여사가 되나보다. 상대 엄마가 별뜻 없이 던진 말에 나 혼자, 그것도 며칠이나 지나서 급 흥분을 해서는 한껏 진도를 나가서 허공에 대고 말대꾸를 퍼붓고 있으니..
내 자식이 욕먹으면 흥분되는 건 어쩌면 내가 잘못 키웠기 때문이란 죄책감에 찔린 반발심에 그렇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주변에 아들 또래 아이들을 워낙 다양하게 많이 보면서 ‘남의 애 뭐라 할 것 없구나..’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쟨 왜 저러나 싶던 것이 나중에 보면 다 발달 시기상 그런거라 그 시기가 되니 우리애도 그러고 어제까지 안 하던 짓도 어디가서 보거나 배우지 않아도 뜬금없이 시작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디까지가 발달 시기적으로 겪는 행동이고, 얼마만큼이 허용되는 민폐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엄마인 내가 생각해서 민폐다 싶으면 아들은 혼이 나는 것이고, 이 정도면 민폐가 아니다 싶으면 혼을 낼 일이 없으니 평화로운 상태가 지속된다. 그런데 그 민폐의 허용 범위가 엄마들 마다 사뭇 다르고, 또 아들의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똑 같은 상황도 사뭇 달라지더라.
어떤 친구랑 다니면 우리 아들은 욕먹을 일이 다반사다. 싫다는데 자꾸 들이대고 뭘 해도 같이 하자 그러고 안되면 징징거리고. 주로 또래 여자친구나 좀더 큰 누나를 만나면 그렇다.
그런데 어떤 친구랑 다니면 늘 칭찬만 잔뜩 받고 해피한 모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은 지보다 약간 어리다 싶은 남자친구들 앞에서는 늘 점잖고 의젓한데다가 모범적이기까지 하다.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자애들하고 있을 때는 그들이 뭘 가지고 놀건 어디가서 뭘 하건 전혀 관심 밖이다. 그러니 충돌 자체가 발생할 건덕지가 없다.
자신보다 더 커 보이는 형들은 만나면 아들은 심하게 순종적인 자세를 취한다. 형들이 가는 데로 졸졸졸 따라다니고, 하자는 대로 군말없이 하고, 형들끼리 하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아들을 키우면서 보니 아이들끼리도 궁합이 있어 잘 맞는 아이들의 엄마들끼리 자연스레 더 자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궁합이 잘 맞는 엄마들끼리는 육아 기준도 대체로 통하는 편이더라.
정말이지 애 키우는데 있어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엄마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아니다 싶은 것이 다른 엄마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상황마다 다 다르고 애들마다 다 틀린 것을.. 육아는 아무리 생각해도 누가 맞다 누가 그르다라고 할 수 없는 심히 어려운 작업인 것 같다.
아들. 엄마가 정답을 찾을 순 없겠지만 항상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최대한 바르게 보이는 길로 이끌어주도록 노력할께. 마냥 내 새끼는 예뻐 보이는 고슴도치 엄마는 되지 않을께. 부디 다른 사람한테 욕먹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바른 사람으로 자라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