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이들 틈에서 함께 신나게 운동하던 아들이 문득 넋을 놓고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저 어린 것이 프로그램에 같이 오던 단짝 친구가 없어져서 빈자리를 느끼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한동안을 멍하니 있던 아들이 갑자기 나에게로 달려와 와락 안긴다. 아… 어쩌지… 뭐라고 위로해야 하나… 아들이 말한다. ‘엄마.. 방구 나왔다.’
헐… 괜히 또 나 혼자 소설 쓰고 있었다. 28개월. 아직은 이별이라는 게 뭔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인가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니며 어디든 함께 가던 단짝 친구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함께 시티에 산 덕분에 별다른 약속을 하지 않아도 거의 매일 만나다시피 한 친구였다. 거의 매일 만나다 보니 둘이 자연스레 단짝이 되어서 같이 노는걸 보면 무슨 사귀는 사이라도 되는 양 토닥토닥 싸우다가도 금방 돌아서서는 손을 꼭 잡고 먹을 것도 먹여주며 나름 로맨틱 풍경을 연출하곤 했다. 덕분에 요즘은 어딜 가나 ‘여자친구는 어쩌고 오늘은 왜 혼자 왔어?’라는 질문이 항상 쏟아진다.
어딜 가자고 하면 아들은 습관처럼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도 같이 가냐고 묻는다. 그럴때마다 ‘친구는 한국 가서 한참 있어야 볼 수 있어.’라고 대답하지만 아들은 한국이 뭐 옆에 있는 마트쯤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한동안 같은 대답을 듣더니 이제는 ‘아.. 아직 안 왔어?’라고 한다. 좀 더 지나면 ‘한참’의 한참이 어떤 건지 설명해줘야 할 것 같다.
28개월 아들은 이별에 의연하니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37살 엄마는 왠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7년을 꽉 채워 살아오는 동안 정말이지 한 해도 빠짐없이 친분을 유지하던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 가는 이들은 왜들 그렇게들 겨울에 많이 가는지. 안 그래도 혹독한 뉴질랜드의 겨울이 더욱 우울하더라. 단짝 친구를 보냈던 첫 해 겨울은 정말이지 우울하다 못해 너무 많은 생각들로 한 달이 넘게 마냥 넋을 놓고 있었더랬다. 아들을 놓고 백일도 안되 오진으로 멀쩡한 맹장 떼내는 수술을 받은 후 애를 안기 힘들어 도움을 청한 것이 인연이 되어 왕래하고 지냈던 이모님도 결국 한국으로 떠나셨다. 의지할 어른들이 없는 곳에서 이모님으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던 분이 떠나신다니 참도 먹먹했더랬다.
이곳은 기대보다 살기 힘든 나라, 생각보다 천국 같지 않은 나라이다. 늘 누군가가 새로이 오고 그 만큼들 또 떠나간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적응하고 친해지느라 일년의 절반이 가고, 친해진 사람을 보내고 마음을 정리하느라 일년의 절반이 간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이별이라는 게 익숙해지는 감정은 아닌가 보다.
그나마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는 발전하고 있어 다행이다. 안 그래도 매일 나다녔는데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더 바쁘게 돌아다닌다. 집에라도 있는 시간엔 이곳 저곳 대청소가 이어진다. 샤워부스에 묵어있던 물때를 어찌나 박박 벗겨댔는지 뒷 골이 땡겨 일어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덕분에 아들은 신이 났다. 하루 한번 콧구멍에 바깥 바람 넣는 것으로도 신나 했건만 틈만 나면 차에 유모차에 타고 나돌아 다니니 지루할 틈이 없다. 집에서도 엄마가 안 하던 청소한답시고 물장난을 연신 해대니 구경만 해도 재미날 지경이다.
아들아. 너도 언젠가는 이별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겠지? 남겨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이 곳에서 널 낳아 미안하구나. 이별은 힘들겠지만 그만큼 새로운 만남도 많으니 그것에 위안을 삼아보자꾸나. 이 다음에 커서 이별에 힘들어 하는 그날 엄마가 옆에서 큰 위로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설레었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이별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줄게. 약소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