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별일이네… 며칠 전 해먹은 쌈밥에서 신랑이 먹다 남긴 실파 한 줄기가 유난히 먹어보고 싶길래 한번 먹었었는데 그 맛이 자꾸만 생각난다. 뭔가 알싸~한 것이 입 안에 찝찝함이 계속 남는데 거참. 신기하게도 이게 자꾸 또 먹고 싶어진다.
애를 놓기 전까지만 해도 초딩 입맛의 극치를 달렸는데 요즘 보면 어째 점점 자연주의 입맛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어려서부터 햄과 고기 반찬을 달고 살며 초록색이라고는 오이 정도 먹는 게 전부이던 내가 요즘은 풋고추에 쌈장만 찍어서도 밥 한 그릇이 뚝딱이고, 나물은 땅에 널린 풀떼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던 내가 점점 마트 야채 코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예전엔 아줌마들이 나물 좋아하고 채소가 상큼하다는 둥 건강에 좋다는 둥 하면서 즐겨 드시는 걸 보면 원래부터들 입맛이 그러셨나부다 했는데.. 입맛이 바뀌는 게 진정 아줌마로 입문하는 과정인 건가…
마음으로는 아직도 싸이의 ‘훨씬 THE 흠뻑 쇼’에 가서 물 대포를 맞으며 몇 시간이고 말춤을 추고 소리질러 떼창에 동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의 나는 주름 늘고 체력 딸리는 아줌마인 것을.. 오빤 강남스타일의 패러디에 패러디가 거듭되면서 아줌마들이 애 데리고 나오는 ‘한땐 강남스타일’도 나왔던데 참. 마냥 웃으며 보기엔 마음이 짠하다.
애를 놓고 키우다 보니 나도 모르게 참 많은 것이 변해있다. 세련되고 이지적인 유부녀의 상징이라는 김남주 머리를 나도 한번쯤 도전해보고 싶지만 일주일에 고작 두 세번 머리를 감는 지금으로서는 급하면 질끈 묶어버리고 나갈 수 있는 긴 머리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다. 예전엔 내가 바로 마시고 돌아선 컵도 한번 더 쓰라고 하면 절레절레할 정도로 유난을 떨었지만 안 그래도 쌓여가는 설거지에 나까지 보탤 수 없어 우유 마신 컵 대충 헹궈서 콜라 마시고, 뒀다가 물 따라 먹고, 다음날 일어나서도 그 컵에 또 물 마시기를 반복한다.
처녀적에는 아줌마들이 사람 많은 데서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뒤적거리고 있으면 너무 아줌마스럽단 시선을 보내곤 했었는데 어느 날 깨달았다. 유모차를 끌고 나간 마트에서 내가 그러고 있다는 사실을. 바리바리 비닐 봉지들을 요령 있게 유모차 아래에 구겨 넣어야 힘들이지 않고 끌고 올 수 있으니 계산을 하고 나면 번잡스러운 계산대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맨날 주섬주섬 부시럭부시럭. 요구르트 꺼내달라는 둥, 쉬가 마렵다는 둥, 집에 얼른 가고 싶다는 둥 한 시도 쉬지 않고 혼을 빼놓는 아들 옆에 있으니 주변 시선을 느낄 틈이 없다. 아… 이런 내공이 쌓여서 주변 시선에 절대 아랑곳하지 않는 줌마 파워가 단련되는가 보다.
뇌가 변하기 때문에 입맛도 변하고 행동도 변하는 거라고들 하던데.. 몰랐었다. 내 뇌가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을 지를. 아들이 크면서 나도 아마 ‘엄마도 옛날엔 안 그랬거든~ 엄마도 옛날엔 잘 나갔거든~’을 입에 달고 살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친정 엄마가 그런 얘기를 하면 ‘에이.. 누군 뭐 왕년에 잘 나가는 월남 스키부대 아니었을까.’하며 그러려니 하며 넘기곤 했는데.. 아줌마들 추태에 ‘왜들 저러실까’라는 비난의 시선을 마구 쏴 붙이곤 했는데.. 내가 그 입장이 되고 나니 다 똑같아 지는 것을.. 아마 내 아들도 그러겠지?
아들아. 세상의 모든 아줌마들이 원래부터 그렇게 추태를 일삼았던 건 아니란다. 남의 시선보다는 내 자식에게 집중하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린 게 아닐까? 엄마도 너무 아줌마스러운 아줌마가 되지는 않도록 노력해볼께. 아들도 무조건 남을 비난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자라주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