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아들 녀석이 한참이 지나도 나오질 않는다.
“아들~ 뭐해? 쉬 다했어?” “아~” 쏴아~ … 또 쏴아~
“너 안 나오고 뭐해? 물 자꾸 내릴래?” “아~” 또 쏴아~
쉬하러 들어가서는 또 물 내리기 삼매경에 빠지신게다.
“이봐 아들! 물은 한번만 내리는 거라 그랬지? 물 자꾸 내릴래?” “아~” 또 쏴아~
엄마의 말은 긍정도 무시도 아닌 “아~” 한 마디로 가볍게 씹어 주시고는 물 내리기에 열중이다.
“아들! 코코몽이 뭐라 그랬어? 물은 소중한 거라고 아껴야 된다 그랬지?” “어? 아~ 코코몽이?” 이런… 엄마 말은 껌으로 씹어버리더니 코코몽 말에는 바로 손을 털고 나온다.
“엄마, 코코몽이 물은 아껴야 된다 그래따요?” 그래 그래 코코몽이 그랬다. 엄마는 안 그러든? 엄마는 백날 얘기해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코코몽이 하는 말은 귀에 쏙쏙 들어오시나? 이거 원 서러워서…
“아들~ 치카하자~” “시어!” “야아~ 치카하자~” “시! 어!” “음.. 호비가 치카를 안 하면 충치벌레가 생긴다 그랬지? 충치벌레 생기면 큰일난다고 그랬자나.” “아~ 호비가?” 쩝… 호비 덕에 오늘도 겨우 이를 닦인다. 엄만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없다. 호비 말 한마디면 상황 종료인 것을…
“제일 큰 김 죠. 크은 김. 먹을래 먹을래!” 아들은 밥 먹을 때마다 자기도 무조건 큰 걸로 먹겠다고 난리다. 잘라서라도 주면 작은거 줬다고 어찌나 난리인지. 한 입에 다 씹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어른들이랑 같은걸 하겠다고 욕심이다. “아들. 똑똑 박사 에디가 뭐라 그랬어? 뽀로로는 크니까 큰 빵을 주고 해리는 작으니까 작은 빵을 준다고 했지? 아들도 작으니까 작은김~ 엄마는 크니까 큰김~” “아~ 에디가? 작은 빵 준다 해써요?” 두 말없이 작게 썬 김을 먹는다. 아니 아주 즐겁게 드신다.
엄마라는 존재는... 참.. 가장 가까이서 늘 뭐든 걸 해결해 주는 없으면 아쉬운 만만한 존재인가 보다.
하긴.. 누굴 탓하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어린 시절에도 세상에서 가장 만만한 게 엄마였던 것 같다.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 시절, 5분이라도 늦게 깨워주면 늦게 깨웠다고 오만 성질과 짜증을 다 내며 방문이 부서져라 닫고 다니고 짜증나는 일만 있으면 엄마한테 짜증을 부려대고. 그래도 엄마는 아무 소리 없이 다 받아주셨더랬다. 필요한 게 있거나 아쉬운 게 있을 때 얘기하면 언제든지 들어주셨고, 혼 내는 일도 한번 없으셨다. 나에게는 친구가 더 소중했고 가족은, 특히 엄마는 그저 당연한 존재였다.
돌이켜보니 아들이 내 말 좀 씹는다고 뭐라 할 처지가 못 되는 것 같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노릇인가..
엄마인 내가 가르쳐야 할 것들을 코코몽과 뽀로로, 호비가 나눠서 잘 가르쳐 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TV가 치명적이니 TV를 보여주면 안 된다느니 말들이 많지만, 살림을 맡아서 해 줄 전주댁도 없고, 운전을 해줄 김기사도 없고, 돈을 안 벌어도 편히 먹고 살 팔자도 아니고, 하다 못해 급할 때 도움을 청할 친지 한 명 없는 독고다이 뉴질랜드 인생인 나는 오늘도 코코몽과 뽀로로, 호비와 함께 육아를 분담한다.
내 자신도 그런 교육적 만화들이 아니라 맨날 때려 부수는 마징가Z, 마루치아라치, 타이거마스크 뭐 이런 만화들을 주구장창 보고 자랐어도 별탈 없이 잘 자랐다는 사실을 애써 위안으로 삼으며 아들이 코코몽과 함께 있는 시간에 밥도 하고, 뽀로로와 함께 있는 시간에 빨래도 하고, 호비가 봐주는 시간엔 살짝 눈도 붙인다.
아들아, 아주 한참 동안은 옆에서 함께 놀아주는 친구들이 가장 소중하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겠지? 그래 마음껏 즐기렴. 너도 언젠가는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거야.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지만.. 조금 늦더라도 기다릴게. 우린 가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