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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012. 12:13 안진희 (202.♡.85.222)
시티새댁의 육아일기
“위험해. 하지마. 하지 말랬지. 안 들려! 하지 말라구!!!!”
요즘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들이다. 겁이 많은, 아니, 좋게 말해서 조심성이 있는 아들은 뭔가 해서는 안될 것 같거나 위험해 보이는 것은 항상 물어보고 하거나 한껏 과장된 어투로 본인이 하려고 한다는 것을 항상 알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며칠 전부터 갑자기 변했다.
아무런 싸인이나 눈치도 없이 눈 깜짝할 새 어딘가에 올라가서 뛰어 내리질 않나, 쏜살같이 달려 나가질 않나, 무작정 매달리고 끄집어 내고. 본인의 능력을 너무 과신하고 있는 듯 하다.
마트에서는 카트 옆에 갑자기 매달리는 바람에 카트가 기울어져서 깔릴뻔한 것을 간신히 잡았다. 칫솔을 입에 물고 돌아다니면서 서랍장 위에 올라가 뛰어내리다 그대로 찍혀서는 죽는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다. 주말에 아빠랑 나가서는 눈 깜짝할 새 달려가 장난감 가게 선반에 올려진 커다란 차를 꺼내다 뒤로 넘어지면서 차에 제대로 깔렸단다. 덕분에 몰이 떠나가도록 울었다는…
본인 스스로도 이제 좀 크고 힘이 세졌다고 생각하는지 아주 그냥 천방지축이 따로 없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가 한번 뚜껑 열리면 얼마나 무섭게 돌변하는지 잘 알고 있는 아들은 내 목소리 톤이 달라지거나 하지 말라는 경고성 메시지가 나오면 금새 하던 일을 멈추곤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하지 말라고 하면 못 들었다는 듯이 홱 돌아서서는 그대로 하던 일을 계속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다.
짜증도 늘어서 말도 안 되는 걸로 갑작스레 짜증을 부리곤 한다.
결국 뚜껑 제대로 열려서 폭발한 엄마한테 심하게 한 소리를 듣는 것으로 마무리 될 거면서…
긴급 출동 SOS라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쓰는 멘트인 ‘아이는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고 있었다. 개선이 시급해 보였다.’라는 말이 내 얘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노발대발 아들을 싸잡아 놓고는 열이 가시지 않아서 씩씩거리고 있으면 아들은 어느새 옆으로 와서는 “엄마, 짜증내서 미안해.”라며 쿨하게 잘못을 인정한다.
누가 누굴 가르치고 있는 건지…
그럴 때면 ‘좀더 끝까지 조용하게 타이를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무식하게 소리 질렀나. 다음 번엔 그러지 말아야지. 그나저나 이놈이 병 주고 약 주나. 아, 장난하나..’ 뭐 이런 벼라 별 생각들로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그냥 쿨하게 “엄마도 소리 질러서 미안해.”라고 하면 되는 것을…
한참 동안 화낼 일도 없고 혼날 일도 없이 너무나도 평화로운 기간이 유지 되었었다. TV에 나오는 엄마와 아들의 다정한 모습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아주 모범적인, 대화로 해결하는, 큰 소리 낼 필요 없는, 그런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말이 통하니까 이렇게 쉽구나.. 대견하게 잘 컸네.. 내가 쫌 합리적으로 키웠지? 라고 생각하며 므흣해 했었는데… 드디어 그 동안의 평화가 깨어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내 몸이 피곤해서 그냥 넘어갈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건지, 애가 좀더 유난스러워지는 시기가 있는 건지. 전부터 한 번씩 고민했었는데 답을 잘 모르겠다. 내가 유난히 신경이 곤두서는 날이 있는 것도 같고… 점잖게 말을 잘 듣던 애가 유난스럽게도 말을 안 듣는 날이 있는 것도 같고…
음… 어찌 보면 서로가 컨디션이 안 좋은 날 심각한 충돌이 발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요즘은 둘 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서로 평화를 유지하려면 컨디션들이 좋아야 하는데, 애를 키우면서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는 힘들고.. 도를 닦는 게 더 쉬울 것 같다.
아들.. 기량이 아직 부족한 엄마를 이해해 주겠니?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는 쿨하지 못한 엄마를 이해해 주겠니? 엄마가 좀더 노력할게. 평화롭고 모범적인 모자 지간이 되기 위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