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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거기~ 왼쪽에 거 아이패드 선에 꼽고, 오른쪽에 가서, 거 오른쪽 옆에 보면 제일 위에 버튼 있재, 그거 한 번, 두 번, 세 번 누르면 피씨라고 뜨니까 화면 나오면 니가 보고 싶은거 누르면 되자나. 니도 다 컸으니 이제 니가 좀 해봐 짜샤!’
설거지 하는 엄마 대신 쇼파에 누워있는 아빠에게 가서 큰 티비로 보고 싶다고 좀 틀어달라고 했더니 귀차니즘에 빠지신 아빠는 니가 좀 해보라며 주절주절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그.. 또, 틀어줘~ 틀어줘~ 틀어달라구우~ 삼단 짜증 나오겠구만…’ 하는 생각을 하며 냄비 닦는데 열중하고 있는데… 헉. 나온다. 진짜 시키는 대로 다 한거야??
정작 하라고 시킨 아빠도 놀란 모양이다. 어느새 이만큼 커서 하라는 대로 다 하게 됐을고…
설거지 하는데 자꾸 알짱거리는게 귀찮아서 ‘아빠 수건 없으니까 아빠거랑 니거랑 수건 두 개 챙기고 니 샴푸도 챙겨서 아빠한테 가서 같이 샤워하고 와!’라고 다다다다 퍼부었다.
아들이 귀찮은 요구를 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하면 찬찬히 타이르거나 조목조목 알려주기 보다는 짜증과 울분과 화를 동시에 실어서 혼내는 것도 아닌 혼자말도 아닌 말들을 다다다다 퍼붓는게 아빠랑 나의 공통점인 듯 하다. 사실 뭐 그렇게 퍼부어댈 땐 뭔가를 전달하려는 의도 보다는 그저 내 안의 답답함을 쏟아내서 ‘나 지금 짜증나거든!’ 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더 클 것 같다.
잉? 이놈 어디 갔지? 좀 퍼부었더니 심상했나…
좀 있자니 아들의 기특함에 감동한 아빠와 샤워로 깔끔 충만해진 아들이 함께 욕실에서 나온다. 아빠 수건 없으니까 아빠 것까지 가져왔다면서 수건을 들이 밀더라나…
꼬물꼬물 누워서 우유 먹고 똥 싸는거 밖에 할 줄 모르던 아들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커있다. 어느새 세 번째 새해를 맞이하고.. 올해는 유치원이라는 곳에서 나름 사회 생활도 시작할 예정이니.. 진짜 인간 다됐네… 돌아서면 또 어느새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 있겠지..
아들이 부쩍부쩍 크는 것에 신기하고 재미있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도 그만큼 나이 먹고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서글퍼진다. 내 나이가 내일 모레면 사십이라니… 세계 7대 불가사의 보다도 더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결혼 안 한 동생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아들이 나중에 뭐가 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뭐… 하버드 대학 나와서 멋진 직업을 가지고 돈도 아주 많이 벌면서 사랑하는 사람 만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신임 받는 호수 같은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원대한 꿈은… 그냥 꿈이다.
현실에서는 그저 이담에 커서 우리한테 손이나 안 벌리고 지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는 사람으로 키우면 성공한 것 같다.
솔직히 낼 모레 사십을 바라보면서도 아직까지 13시간 바다 건너에 계시는 노모에게서 이런 저런 살림살이며 밑반찬에 김치까지 공수 받아 먹고 아쉬울 때는 아직도 손을 벌리는 불효를 자행하고 있는 엄마, 아빠를 닮지 않는 것만으로도 잘 키웠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들을 키우면서 ‘엄마도 나 키우면서 이랬겠구나’라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딱 너 같은 아들, 딸 나아서 키워봐야 너도 알지.’라시던 어른들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애를 놓으면 어른이 된다더니 정말 아들 덕에 엄마인 내가 더 많이 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효도는 커녕 안부도 자주 못 전하고 있으니 참… 아들한테도 면목이 없다. 올해는.. 아들보다 내가 더 분발해서 많이 커야할 것 같다.
아들! 부끄럽지 않은 엄마,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 테니 아들도 언제나 상대를 배려하고 어른들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인간적인 사람으로 자라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