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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1/2013. 17:40 안진희 (210.♡.28.40)
시티새댁의 육아일기
이놈의 새들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기껏 빵을 줘서 잘 얻어 먹었으면 감사하다 몇 번 지저귀고 가면 될 것을 그렇게들 생각 없이 똥들을 퍼질러 싸대고 가면 도대체 누가 좋다고 빵을 또 주냔 말이지.. 그 옛날 흥부네 집이야 초가 지붕에 흙 마당이었으니 박씨가 있는 똥을 싸주면 박이 열렸겠지만 우리 집이야 아무리 봐도 콘크리트뿐인 아파트인 것을.. 보면 모르나? 이러니 새 대가리라는 소리가 나오지.
식빵 한 봉지를 사면 어차피 다 먹지도 못하고, 아들도 새 밥 주는 걸 재미있어 하니 종종 아들에게 새 밥 주라고 식빵 몇 쪽을 쥐어주면 아들은 신이 나서 베란다에 뜯어 던지기 바쁘다. 그렇게 던져 놓고 들어오면 진짜 온 동네 새란 새는 다 와서 다음 날까지도 신나게 쪼아 먹으며 남아 있던 하얀 빵 가루조차 깔끔하게들 먹어 치워버린다. 그런데 이놈들이 와서 곱게 먹고만 가면 좋을 것을 똥들을 어찌나들 싸놓고 가는지 진짜 그 덕에 또 울컥해서 한참을 잊혀질 때까지 빵 주기를 전면 금지해 버리게 만들지 않는가. 깔끔하게 먹고 가면 얼마나 좋아. 지들도 맨날 빵 얻어 먹으니 좋고, 우리도 더러운 꼴 안 봐도 되니 좋고. ‘와서 빵 먹어!’란 소리는 귀신 같이 알아듣는 것 같은데, ‘우리 집은 박 안 자라!’라는 말은 도무지 못 알아 듣나 보다.
허긴, 배은망덕한 걸로 치자면 우리 아들도 새들 못지 않다.
지 재미 있으라고 친구들 불러서 맛있는 거 먹여주고 하루 종일 정신 없이 놀려 줬건만 실컷 재미있게 놀고 나서는 친구들 가고 나면 피곤하다고 짜증이다. 나 참, 재미있게 잘 놀았으면, ‘어머님 덕분에 재미나게 잘 놀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큰 절을 해도 시원찮을 판국에 놀거 다 놀아 놓고서는 왜 짜증이냐고.. 누가 피곤할 만큼 놀라고 했나… 아량이 그리 넓지 못한 엄마인 나로서는 아들이 실컷 놀고 피곤하다고 짜증을 부리면 버럭 뚜껑이 열려서는 ‘지금 장난해! 그러게 누가 그렇게 놀래! 놀게 해 줘도 난리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혼자서 씩씩거리기 일수다.
자식이 상전이라는 말은 진짜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 체력이 남아 돌아도 주체가 안되고 그렇다고 또 너무 놀려도 짜증을 동반한 후폭풍으로 감당이 안되니 적당한 선에서 잘 끊어 주어야 서로가 평화롭다. 먹는 것도 좀 전까지 관심 없다가 금새 또 배고파서 신경이 날카로워지니 잊을만하면 먹을 걸 대령하고 또 잊을만하면 먹을 걸 대령하길 반복해야 별다른 마찰 없이 하루를 보낼 수가 있다. 알아서 적당히 놀고, 알아서 적당히 자고, 알아서 적당히 먹어주면 얼마나 좋을 것을..
부모라는 자리, 특히 엄마라는 자리는 시간이 지날 수록 정말이지 대단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 만 3년을 키우면서도 죽네 사네 하루에도 뚜껑이 열 댓 번도 더 열렸다 닫혔다 하는데, 부모님들은 나를 어찌 여태 키우셨을고.. 이렇게 힘든 과정들을 일, 이년도 아닌 십 수년을 해오시고는, 정작 그렇게 공들여 키워놓은 자식이 제대로 은혜를 갚지 못하는 데도 내색 한번 없으시고 계속해서 내리 사랑을 주고 계시니 말이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제대로 해드리지도 못하는 내 처지는 생각도 않고 내 아들이 짜증 부린다고 못 마땅해 하고 있으니 이게 진정한 배은망덕이 아닌가.
아들아. 네 할머니가 그러셨던 것처럼 엄마도 묵묵히 지켜봐 줄 수 있는 아량이 생길 수 있을까? 걸핏하면 뚜껑 열려서 노발대발 하지 않고 언제쯤이면 평정을 유지하며 너를 대할 수 있을까? 엄마도 열심히 노력할 테니 아들도 제발 자라면서 엄마의 부족했던 모습을 잊어주겠니? 그날이 올 때 까지 오늘도 파이팅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