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이임스가 막 이러케 때리더라.’
잉? 이건 또 뭔 소리래..
유치원에서 픽업해 오면서 의례적으로 ‘오늘은 뭐하고 놀았어?’라고 질문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재연까지 해가며 친구한테 맞았다고 하길래, ‘아~ 그랬어? 그럴땐 노! 하고 똑바로 얘기해야해~’라고 교과서처럼 받아 쳤다.
사실 아들은 아직까지 정확한 사실 전달이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아들에게서 나오는 정보를 모두 다 신뢰할 수 없다. 뭘 어질러 놔서 ‘이거 왜 이래? 아들 니가 그랬어?’라고 물으면 너무나도 당당하게 ‘아니~ 아빠가 그래써.’라고 대답한다. 뻔히 지가 한 걸 봤지만 형식상 물어본 건데 어찌 그렇게 죄 없는 아빠를 끌어들이는지..
유치원에서도 아직까지 누가 누구인지 잘 구분을 못하는 것 같다. 길 가다가 머리 노란 여자 어린애를 보면 다 샤샤란다. 이름이 쉽고 이쁘게 생겨서 몇 번 얘기 했더니 무조건 다 샤샤다. 머리가 노라면서 큰 여자는 전부 선생님이란다.
그런 아들이 이름을 지명하면서 맞았다고 얘기하니 때린 애가 진짜 그 애가 맞는 지도 불확실하고, 또 실제로 맞았는지 조차도 모를 일이다.
아들은 유치원에 처음 가서 트랜지션 반에서 꼬맹이들이랑 심심한 나날들을 보내다가 이제 세돌 생일도 지났고 옆 반에 자리도 난 김에 올려 보내져서 며칠 전부터 큰 애들 반에서 생활하고 있다.
뭔 팔자 좋은 집들이 그리 많은지 뉴질랜드에서는 날씨 좋은 여름 시즌에만 머물다가 겨울이 오면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나는 집들이 많아서 빈 자리가 생겼단다. 겨우 친해진 친구네도 5월부터 11월까지는 프랑스에서 생활한다며 이번 주에 떠났다. 아 진짜 이젠 하다하다 외국 애들까지 날 버리고 떠나네… 이놈의 남겨지는 뉴질랜드 생활이란... 유치원 끝나고 같이 자전거 타러 다니는 재미에 아들이 무척 좋아했었는데… 그래도.. 돌아 오긴 한다니 그나마 다행인가..
그렇게 떠나는 집들 덕분에 아들은 이제 빅 보이 반에서 나름 공부도 좀 하면서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맛보게 됐다.
그런데 참 사회 생활을 어찌나 터프하게 하시는지 픽업 가보면 그지 중에 상그지가 따로 없다. 물론 그 전에도 가히 단정한 모습으로 있진 않았었지만, 이젠 아예 본격적으로 옷이며 얼굴이며 흙 바닥에 뒹굴었는지 모래를 퍼먹었는지 꼬질꼬질 아주 그냥…
너무나도 과격한 재연과 함께 맞았다는 말을 몇 번씩 하기도 한다. ‘진짜로 맞고 다니나…’ 별거 아니라 생각했던 말도 여러 번 들으니 신경이 쓰인다. 손톱에 뜯긴 것 같은 상처도 달고 오니 왠지 진짠가 싶기도 하고.. 아.. 짜식. 왜 맞고 댕긴데…
‘이제 유치원 가면 재밌지~? 형들이랑도 같이 놀고~’라고 했더니 ‘아니, 형들이 안 노라조.’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그렇겠지.. 왜 안 그렇겠어.. 4살 넘은 애들은 말이 청산유수라 지들끼리 대화하면서 노는 것을… 말이 안 통하면 답답하니 끼워 주겠냐고…
그나마 오며 가며 보니 착한 누나들이 동생이라며 앞다투어 돌봐주던데 아들은 나름 남자라고 형들이랑 부대끼면서 놀고 싶은가 보다.
사정이 빤히 보이니 참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고 에혀…
본격적인 사회 생활이 나름 많이 힘든지 요즘은 유치원에 갔다 와서 씻고 밥 먹고 나면 지 혼자서 쇼파에 쓰러져서 잠이 들기도 한다.
아들! 사회 생활이라는 게 힘들지? 그런데 어쩌지? 이제 시작인 것을..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더 많은 일들을 겪어갈 텐데.. 재미있는 일도 많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겠지만, 때로는 힘든 일도 있고 상처를 받는 일도 있겠지. 그렇게 겪어 나가다 보면 어느 새 호수같이 넓고 깊은 사람이 되어 있을 거야. 니가 힘들 땐 언제든지 기댈 수 있게 엄마 아빠도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줄게.
우리 아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