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초등학생인 영수가 지난 주말에 영화 해리포터를 보았다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야기는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주 상세하고 길었습니다.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묻습니다. “선생님! 지루했죠?”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우리 아빠는 요점만 말하래요. 지루하다 구요.” 내가 듣기에도 영수가 전달하는 이야기 자체는 좀 지루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영수는 나한테 영화 내용을 알려주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상세하게 줄거리를 말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영수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누구와 함께 나누고 싶어했습니다. 영수는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아빠와 그 감동을 나누고 싶었는데 아빠는 영수로부터 해리포터의 줄거리를 들으려고 하였습니다. 해리포터가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마법은 어른 중심의 사회에서 느끼는 어린이들의 좌절감을 보상하기에 충분합니다. 영수도 해리포터의 마법에 폭 빠져 있었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면 ‘아이’에게 관심을 두기 보다 ‘아이의 이야기’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대강 듣고 이야기가 재미없거나 너무 유치하다 싶으면 부모의 귀가 닫혀버립니다. 귀가 열려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듣는 체 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의 관심사와 어른의 관심사는 그 차이가 아주 큽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관심사에 부모가 진실로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모가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하는 것은 자녀의 이야기보다 자녀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는 것은 해리포터 이야기가 아니고 해리포터를 보고 감동을 느낀 자기 자신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느낀 진한 정서는 계속 이야기하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감동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벅찬 감동도 쓰라린 아픔도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해소되지 않고 가슴속에 쌓이면 한이 되고 병이 된다고 합니다. 대학에 수석 합격한 기쁨을 누구와 나눌 수 없어도 한이 되고, 자식 잃은 쓰라린 아픔도 누구와 나누지 않으면 병이 됩니다. 자꾸 이야기를 하면서 그 감동과 감정은 해소되고 점점 옅어집니다. 그런데 그 감동에 관심을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을 때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감동을 나누기를 체념하고 무덤덤하게 살아가거나 스스로의 환상 속에서 홀로 그 감동을 되새기게 됩니다.
부모-자녀는 아주 긴밀한 관계입니다. 사람이 서로 긴밀한 관계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삶에서 느낀 감동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관계를 말합니다. 긴밀한 관계는 감정교류가 활발합니다. 사람은 활발한 감동과 감정교류를 통해 자기가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느끼고 누구와 따뜻하게 연결되었다고 느껴지게 되고, 든든하고 안정된 느낌을 갖습니다. 자녀와 긴밀한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려면 자녀가 하는 이야기에만 관심을 두어 지루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자녀가 느끼는 생생한 감동과 감정에 관심을 기울여줄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