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건물은 예쁘지가 않아. 왜 저렇게 지었을까? 너 보기엔 어떠니?"
"내가 보기에도 마찬가지야. 조금도 예쁘지가 않아."
개선문 근처의 어떤 광장에 새로 지은 건물을 가리키며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두 소녀가 주고받는 말입니다. 인형을 놓고 말하듯 건물을 놓고 이런 의견을 말하는 소녀들은 프랑스에서는 특별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보기 좋아야 하는 사회환경에서 자랐을 뿐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요리를 할 때도 구운 고기에 야채를 곁들이며 색깔을 맞춥니다. 포도주를 따를 때도 잔을 끝까지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잔의 반 정도에서 7분의 4쯤 따라 모양을 냅니다. 곧 먹고 마셔 없어질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신경을 쓰니, 사는 집이나 가구, 옷이나 몸의 선과 같이 항상 보는 것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일상사는 예술적인 것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들은 의식주의 모든 면을 배색이나 명암의 조화, 소재의 질감, 구도도 고려하여 꾸미고자 애씁니다. 프랑스에서는 전철표나 카드, 영수증, 건물의 표시와 같은 사회의 공공 기호들도 다양한 색깔로서 그 기능을 표현합니다. 공공 주차장을 하나 지을 때도 최고의 예술품으로 짓기 위하여 저명한 예술가들을 대거 참여시킨다고 합니다. 이렇듯 프랑스에서는 국민 전체가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파리를 패션의 도시라지만 부자동네의 귀부인을 제외한 일반 여성들은 무척 검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만의 개성과 멋을 위해 패션과 미용잡지를 열심히 읽습니다. 몸매 다듬기에도 열정적이며 액세서리나 화장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들은 아끼는 스웨터에 어울리는 치마를 찾기 위해 옷을 싸들고 몇 시간이고 쇼핑을 하며, 평범한 디자인의 옷이라도 머리띠나 장신구로 색을 맞추고 명암과 배색을 달리해 변화를 줍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멋 내기도 연령을 초월합니다. 색깔을 맞추는데도 달통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면 교사들의 옷차림부터 개성적이고 자유분방하다고 합니다.
프랑스 엄마들은 집을 꾸미는데도 남들과 똑같이 획일적인 기성품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커튼이나 소파 덮개, 그림 등 집안의 장식물들을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이 엄마에게서 자주 받는 선물도 책이나 장난감이 아닙니다. 엄마의 속치마로 만들어진 낭만적인 스탠드, 골판지로 만들어진 배와 말, 신비로운 우주 공간이 그려진 서랍장, 예쁜 색깔로 패치워크된 모자와 원피스 등 엄마가 직접 그리고 만든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것은 이 세상에서 둘도 없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이런 것은 유치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프랑스 유치원의 외관은 볼품없으며 시설은 한국과 비교하면 수수하다 못해 낙후돼 있다는 느낌마저 준다고 합니다. 교육을 위한 자금을 배분하는 우선순위가 건물의 외양보다는 실리 면에 치중하기 때문입니다. 교실 안에도 장난감이나 교재, 교구 등은 풍부하지만 다른 시설들은 소박합니다.
그런데도 학교측에서 아이들 손에 쥐어주는 크고 작은 선물이 풍성합니다. 수업료 외에 다른 잡부금이 없는데도 아이디어만으로도 이런 선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밀가루로 구운 도자기, 찰흙에 색깔을 넣은 부조상, 색종이 리본으로 만든 아파트 공작물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석고로 조각해서 가져오기도 하고 부모들을 초대해 아이들이 만든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개성과 창의적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프랑스 사람들은 아이든, 어른이든 손이 닿으면 마치 마술 지팡이가 닿듯, 모든 것이 창의적인 재료가 되어 생활 예술품으로 재 탄생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