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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2011. 12:49 안진희 (202.♡.85.222)
시티새댁의 육아일기
“우엉.. 엄마도 죽겠다고… 너만 힘든거 아니라고… 나도 힘들어 죽을거 가터.. 엉엉…”
짜증에 겨워서 울어 대는 아들내미 옆에서 참다 참다 결국은 나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소리 내서 꺼이 꺼이 우는 엄마가 신기했는지 불쌍했는지, 차츰 울음이 잦아지면서 한참을 빤히 쳐다보더니 냅다 달려와 품에 안긴다.
그렇게 우리 모자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채 부둥켜 안고 한참을 더 울었다.
이제 15개월 난 우리 삼대독자는 지금 며칠 째 잇몸을 뚫고 나오는 작은 어금니와 씨름하느라 미열과 식욕감퇴를 동반한 폭풍 짜증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어린게 얼마나 힘드니까 그러겠냐.’ ‘항상 사랑으로 감싸야 한다.’ ‘그럴 때일수록 더 많이 안아줘야 한다.’
피곤과 스트레스에 쩔은 초보 엄마에게 그런 이야기들은 이미 하기 좋은 남의 말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폭풍 검색으로 이 시기 아이들은 이앓이를 심하게 해 엄마도 아이도 많이 힘들다는 정보를 충분히 숙지했건만. 우허… 애들 이가 28개이기에 망정이지 100개라도 됐으면 그 감당을 어찌하라고…
오잉? 궁여지책으로 발라준 티딩젤이 생각 외로 효과를 보인다. 얼린 샐러리도 먹여보고, 칫솔도 쥐어줘봐도 잠깐 지나면 다시 또 짜증 상태로 복귀해 좌절스럽게 만들더니 티딩젤을 좀 발라줬더니 시원한지 한동안 혼자 즐겁게 놀아주기까지 하는 기특한 상황을 연출해주신다.
마트에서 카트에 얌전히 앉히고 쇼핑하려면 뭐라도 쥐어줘야겠기에 줬는데 포장박스를 쪽쪽 맛나게 다 빨아놔서 어쩔 수 없이 집어왔던 것이 이렇게 효자 상품일 줄이야.
짜식, 지도 효과를 느끼는지 약효가 떨어질만하면 입안에 손가락을 넣고는 “아, 아” 거리면서 티딩젤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
그나마 낮에 놀 땐 티딩젤 효과를 좀 봤건만.. 열이 나는 건 또 어쩐대…
며칠째 낮엔 비교적 괜찮다가 밤만 되면 열이 38도를 넘어 39도를 넘길랑 말랑하니.. 왜 꼭 다들 자는 밤에만 이렇게 열이 오르는 거냐고.. 머리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끙끙 소리까지 내며 앓는 통에 도대체 잠은커녕, 애 옆자리를 지키고 앉아 아이폰을 손에 쥔 채 ‘아기 미열’ ‘이앓이’ ‘아기 머리열’ ‘아기 열 내리는 법’ 등등의 검색어를 마구마구 찍어대며 폭풍 검색을 하다 보면 어느새 오늘 밤도 잠 한숨 못 자고 지나간다.
나름 고군 분투하는 모자 옆에서 코는 기본에 이까지 갈며 잘 주무시고 계시는 신랑님을 보면 혼자 너무 잘 자서 얄밉다니 뭐 이런 생각은 벌써 오래 전 이야기이다. 이제는 이런 상황에서 모든 판단을 나 혼자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 밤이 너무 길고 두렵기까지 하다.
끙끙 앓는 소리 없이 자고 있으면 혹시나 열이 너무 나서 혼수상태인건 아닌지, 이거 온도계가 고장 나서 제대로 못 재고 있는 건 아닌지, 큰 병인데 모르고 그냥 두고 있는 건 아닌지, 별것도 아닌데 혼자 유난 떨고 있는 건 아닌지.. 밤새 혼자 소설을 백 번도 넘게 쓰고 있다.
결국 39도를 찍은 밤, 날이 새기가 무섭게 신랑님을 깨워서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왠 아픈 사람들은 이리도 많은지 아침부터 GP는 예약이 다 차서 근처 White Cross에 가서야 겨우 의사를 볼 수 있었다.
의사 왈. 편도선이 부었단다. 헐.. 아마 목이 아파서 밥을 넘기기 힘들어 식욕도 없었을 것이란다. 헐.. 항생제 좀만 먹으면 금방 좋아질거란다. 또 헐..
무식한 에미가 애 열난다고 가재수건에 물을 적셔서 목에 감아뒀던 게 원인이지 않을까 싶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항생제 하루 분에 눈에 띄게 컨디션을 회복한 아들내미는 식욕이 솟구쳐 오르는지 소고기 국에 말은 밥을 양푼째 들고 흡입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