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나는 매일 우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주는 나에게 선물을 보낸다. 내게 꼭 필요한 것을 물건으로든 돈으로든 마음으로든 성의표시를 꼭 한다. 우주에 대한 내 믿음만큼 그만큼 보내주는 선물.
요즘에는 우주가 내게 그 이상으로 선물을 주는 것 같다. 갈수록 선물이 더 커진다. 내 믿음이 그만큼 더 크고 확실해져서일까? 그렇겠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겨자씨만큼의 믿음이 산을 옮긴다고 하는데, 내 믿음은 어쩜 겨자씨보다 더 작을 수도 있겠다. 지구가 우주의 한 점과도 같으니, 내 믿음이 아무리 커봤자 우주의 눈에 보이기나 할까? 이렇게 보이지 않는 작은 믿음에도 선물을 보내는 우주. 우주의 눈은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세음보살보다 더 많을 것이다.
피노키오가 거짓말 했을 때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자,
“아빠 내 코가 왜 자란 거예요?”
“거짓말을 했거든. 거짓말이란 코처럼 빤히 보이는 거거든”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 ‘기예르보 델토로의 피노키오’를 보다가 두 부자의 이 대화에 큰 공감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피노키오의 코를 달고 산다. 우주는 보이지 않는 코는 물론이거니와 삼라만상의 마음을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우주의 나이가 얼마나 많은가? 60 중반의 삶을 살아온 내 눈에도 상대의 보이지 않는 코가 대충 보이니, 우주는 얼마나 정확하게 다 보고 있을까? 억겁의 세월만큼 밝은 눈으로 관찰자가 되어 소우주인 우리들의 삶을 관망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과감히 관찰자인 우주를 나의 멘토로 삼았다.
나의 이런 생각을 우주가 알고 있으니 나의 멘토가 되어 주었고, 우주의 마음을 따라가고 싶어 하는 작은 체구의 내 생각도 무시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 여긴다. 고마운 우주. 내가 우주를 고마워하는 만큼 우주도 나를 귀히 여기며 내게 꼭 필요한 선물을 내려 주었다.
그 선물 덕분에 지금껏 살아올 수 있었고, 버텨나갈 수 있었다. 아참, 우주의 선물을 받으려면 잘 버틸 줄 알아야 한다. 버티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잘 버티면 좋은 결실을 얻게 된다.
‘기특하다. 기특해. 잘 버텨주었구나.’ 우주의 다정한 소리를 듣고 싶지 않은가? 지금 힘들고 지치는 사람은 포기하지 말고 버텨주길 바란다. 이건 완전히 내 체험으로 말하는 것이다.
지난 월요일에 나는 웰링턴에 다녀왔다. 첫째와 막내, 이렇게 셋이서 웰링턴 여행을 했다. 여행이라고 말하기엔 좀 그렇다만, 나에게 있어서는 여행이나 다름없었다. 워낙 집 귀신에 파미 옆 동네도 거의 가지 않으니 말이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샤워하고 화장하고 108배와 명상, 약과 아침을 먹고 딸들의 준비가 끝나길 기다렸다. 어린아이가 여행할 때의 설렘으로 거울을 보면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유은이 첫돌을 챙기러 오클랜드에 갔었던 게 6월 말경이었으니, 거의 반년만의 외출이 되겠다.
승용차 뒷 자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오디오북을 들으려다 다 접어버렸다. 아이들이 켜 놓은 음악을 들으며 창밖의 풍광을 즐기기로 한 것이다.
레빈을 지나 오타키까지는 정신이 말짱했는데, 고속도로에 들어설 때부터 졸기 시작했다. 잠깐 눈감았던 거 같은데, 눈을 떠보니 빌딩들이 우뚝우뚝 솟은 시내 입구였다. 바다도 못 보고 시내에 도착한 것이다.
웰링턴에 간 이유는 내 심장 검사와 세 여자들의 여권신청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병원에 도착했는데, 병원 로비에 들어서니 크리스마스 시즌임이 현실로 느껴졌다. 작년과 똑같이, 반짝거리며 알록달록한 장식 구슬이 박힌 트리들이 줄을 서 있고, 크리스마스 캐롤송이 아름답고 힘찬 음률로 울려 퍼졌다.
로비 한쪽에 놓여있는 아이보리색 그랜드 피아노를 치고 계신 할머니. 연세와 달리 그분의 피아노 소리는 힘차고 활기찼다. 경건하고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라이브로 들으면서 카페 음식을 먹었다.
예약시간보다 40분이나 빠르게 도착한 바람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넘치는 병원 로비에서 브런치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의사는 여전히 친절했다. 스캐너도 빠른 순간 내 가슴과 하나가 된 페이스메이커를 스캔했다. 6개월 동안의 내 심장박동 정보는 컴퓨터 기계에 입력이 되어 모니터 속에서 춤추며 지나갔다. 두 명의 의사가 함께 확인했다. 정상이라고 했다.
올해 초 6개월간의 심장박동은 이미 내 침대 옆에 둔 핸드폰만한 기계가 서버로 전송한 상태이고, 이번 방문으로는 나머지 6개월간의 상태를 스캔한 것이다. 앞으로 계속 이런 식으로 1년마다 점검을 할 것이다.
요즘 융합의 시대라고 하더니, 과학, 의학 할 것 없이 모두 다 함께 융합이 되어 빠르게 발전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원격치료가 생활화 될 날도 머지않을 거 같다.
대사관에 가기 전에 시내에서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사기로 했다. 많이 걸어 다닐 거 같아서 운동화를 신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쇼핑하는 동안 만보 정도 걸었다.
파미에선 볼 수 없는 다이손 지점이 있었다. 그곳에는 온갖 잡화물들이 다 있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샀는데, 착한 가격들이었다. 워낙 쇼핑을 즐기지 않는 나였지만, 딸들 옆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 시간을 함께 즐겼다.
다이손 지점을 나와 현금자동지급기로 여권 만들 현금을 꺼내고, 여권사진 출력해 놓은 것을 찾고, 맛있는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나서 대사관에 갔다.
대사관에 가면 뭔지 모르게 고국에 온 느낌이 든다. 친절한 직원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더 그런가 보다. 대사관이 뉴질랜드에 있는 내 고국이 아니던가.
대사관에서 일을 다 마치고 나서 막내를 위한 쇼핑을 더 해야 했다. 그 쇼핑을 하고 나니, 퇴근시간하고 겹쳤다만 막힘없이 고속도로와 연결이 되었다. 그런데다 고속도로가 오타키까지 완벽하게 완공이 되어서 아주 수월하게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웰링턴에 가서 이번처럼 알차게 볼일을 다 보고 온 적도 없다. 여름 해가 길어서 밝을 때 집에 올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남편은 정원에 물을 주고 있었고, 사위는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이 그림도 언젠가의 내 꿈이었다. 데자뷰 같은, 어려서의 향수 같은, 소박한 종이 향이 배어 있는 소설책 같은 내 꿈을 우주가 선물로 보내 준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그 날이 내 생일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미리 내 생일 선물을 돈으로 주었다. 안경과 선글라스를 사는데 보탰다. 화장품을 보내 준 언니와 동생, 내가 그렇게도 읽고 싶어 했던 책을 보낸 언니. 모두들 나에게 멋진 생일선물을 한 것이다.
소우주인 모든 내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마워. 모두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