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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 새해 2023년 계묘년(癸卯年) 토끼해를 맞아 종교지도자들은 신년사(新年辭)를 통해 혐오와 갈등이 팽배한 한국사회에 증오와 분노를 넘어서는 인내와 참회, 용서, 화해를 당부했다. 요즘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광장에 약 1m 높이 토끼인형 ‘마시마로’ 9마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계묘년 토끼 마케팅 덕에 마시마로, 몰랑이, 라토리 등 국산 토끼 캐릭터가 화려하게 부활했고, 토끼 캐릭터 굿즈를 생산하는 업체도 바빠졌다. 고맙다 토끼해!
교수신문(敎授新聞)은 2001년부터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사자성어(四字成語, four-character idiom) 하나를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과이불개(過而不改) 즉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이 올해(2022년)의 사자성어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발표된 사자성어들은 대체로 우리 사회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수신문은 1991년 11월 전국 사립대학교 교수협의회, 국공립대학교수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등 교수 3단체가 전체 교수사회를 대변할 정론지(正論紙) 발간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수차에 걸쳐 교수신문 창간을 위한 논의를 전개한 결과 1992년 4월 15일에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박현모 교수(여주대)는 ‘過而不改’ 선정배경을 “우리나라는 여당이나 야당 할 것 없이 잘못이 드러나면 ‘이전 정부는 더 잘못했다’ 혹은 ‘대통령 탓’이라고 말하고 고칠 생각을 않는다. 그러는 가운데 할로윈 참사(이태원 참사)와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지려는 정치인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추천이유를 밝혔다. 이태원 참사에 잘못을 인정하면 패배자가 될 것이라는 강박에 일단 우기고 보는 풍조가 반영됐다는 시각도 있다.
‘過而不改’는 논어(論語)의 위령공(衛靈公)편 29장에 나오는데, 해당 글의 전후 문장은 “子曰 過而不改 是謂過矣”(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일러 잘못이라고 한다.)”이다.
교수신문에 의하면 전국 대학교수 935명을 대상으로 한 이메일 조사(11월 23일-30일)에서 50,9%의 지지를 받은 1위 ‘과이불개’에 이어 2위는 욕개미창(欲蓋彌彰, 덮으려고 하면 더욱 드러난다, 14.7%), 3위 누란지위(累卵之危, 알을 쌓아놓은 듯한 위태로움, 13.8%), 4위는 문과수비(文過遂非, 과오를 그럴듯하게 꾸며대고 잘못된 행위에 순응, 13.3%), 그리고 5위는 군맹무상(群盲撫象, 눈먼 사람들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말하다, 7.4%)가 각각 선정되었다고 밝혔다.
2001년 12월에 발표된 첫 ‘올해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 어떠한 일의 진행에 대하여 예측할 수 없다), 2002년은 이합집산(離合集散, 일없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무위한 일을 하다)이 선정되었다. 최근에는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2021년 작년에는 묘서동처(猫鼠同處,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가 선정되었다.
지난해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였고, 올해 2023년은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다. 토끼는 십이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네 번째 ‘묘(卯)’에 해당한다. 방향은 정동(正東), 시간은 오전 5-7시, 달로는 음력 2월을 지키는 방위신이다. 계절로는 봄에 해당하며, 농경사회에선 농사가 시작되는 동시에 풍년을 기원하는 달이다. 또한 토끼는 강한 번식력으로 다산(多産)과 번성, 불로장생(不老長生)을 상징한다.
새해 계묘년을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토끼의 민속 상징과 생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 ‘새해 토끼 왔네!(Here Comes a Rabbit)’ 특별전을 3월 6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토끼는 지능이 꽤 높아 영민하다. 호랑이 IQ는 40, 거북이는 20이지만 토끼는 50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똑똑한 토끼는 도망갈 굴을 세 개 파놓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교토삼굴’도 있다.
인류와 토끼의 관계는 선사시대로 올라간다. 인류에 의해 숲이 사라지면서 초원이 토끼의 서식지로 떠올라 개체 수가 늘어났다. 대략 5만년 전부터 토끼는 인류의 사냥감으로서 동물성 단백질(蛋白質) 공급원이 되었고, 모자와 토시 같은 의복 재료와 고급 붓을 만드는 데도 활용됐다. 수궁가(水宮歌)에서 병이 든 용왕에게 필요한 불사약은 토끼의 간(肝)이었다.
‘놀란 토끼 눈을 하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한다’ 등 속담에서도 토끼는 친숙한 존재다. 또한 ‘토끼 두 마리를 쫓다가는 다 놓친다’는 부정적인 속담이 현대에 와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다’로 변형되어 한 번에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성취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긍정적 변화가 반영됐다.
우리나라에서 토끼띠 해에 태어난 대표적인 인물로는 안중근 의사(1878년생), 만해 한용운(1879년생), 현대그룹 정주영(1915년생), 김영삼 전 대통령(1927년생), 소설가 이청준(1939년생), 영화감독 박찬욱(1963년생), 메이저리거 류현진(1987년생) 등이 있다.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속으로는 단단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모습을 보여주고 반전을 이룬 사람들이 많다. 필자는 1939년 토끼띠 해에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가 이끄는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트렌드 코리아(TREND KOREA) 2023’을 출간했다. 소비트렌드를 연구하는 김난도 교수는 1963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과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행정학박사 학위를 1991년 취득했다.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트렌드(Trend)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난도 교수는 2008년부터 매년 말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를 통해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를 발간하고 있다. 김난도 교수는 2023년을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검은 토끼의 해’로 이름 짓고 10대 소비트렌드의 앞 글자를 따 래빗 점프 ‘RABBIT JUMP’를 제시했다.
우리는 사자성어 교토삼굴에서와 같이 글로벌 경기침체, 물가 폭등, 전쟁 등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넘어서기 위해서 플랜A뿐 아니라 플랜B, 플랜C도 함께 마련해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균 실종과 오피스 빅뱅 등의 2023년에는 관계, 일터, 공간 등 모든 것이 재정의된다. 2023년에는 어떤 트렌드가 사람들을 이끌지, ‘RABBIT JUMP’ 10대 키워드별로 살펴본다.
Redistribution of the Average(평균 실종), 중간이 사라지는 시대. 일반적으로 쓰이던 평균이나 기준, 중간이 사라지는 시대를 말한다.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사회에서 제품 및 서비스도 아주 비싸거나 아주 싸거나 해야 잘 팔린다. 자본주의의 태생적 불균형이 코로나19 팬데믹의 차별적 영향을 거치면서 경제•사회•교육•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를 유발하고 있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준거 집단이 다원화되고 시장의 개인 맞춤화 경향이 강해))지면서 시장의 전형성이 사라졌다. 모집단이 정규분포를 이루지 못하고 양극화, 다극화가 되니 평균값이 의미를 잃게 된다. 균형 잡힌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Arrival of a New Office Culture: ‘Office Big Bang’(오피스 빅뱅)은 노동시장에 부는 변혁의 바람이다. 노동 환경이 폭발적으로 변하고 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이직(離職)이 곧 경력 관리의 수단이자 직장인의 버킷리스트가 됐다. 재택근무, 자율출퇴근제, 하이브리드 워크 같은 용어가 회자되고, 보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업무 환경이 어떤지를 두고 고민한다. 디지털화를 계기로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의 규모 또한 커지고 있다.
Born Picky, Cherry-sumers(체리슈머)란 다양한 알뜰소비 전략을 펼치는 소비자를 말한다. 소비 심리의 위축은 2023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체리슈머는 ‘구매하지 않고 혜택만 챙겨가는 소비자’를 뜻하는 체리피커(cherry picker)에서 진일보한 개념으로 ‘한정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해 알뜰한 소비를 하는 소비자’라는 뜻이다. 딱 필요한 만큼만 사는 ‘조각 전략’, 계약 위반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말랑 전략’ 등 기존의 소비방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며 효용을 극대화하는 지출을 보여준다.
Buddies with a Purpose: ‘Index Relationships’(인덱스 관계)란 인덱스(색인)로 구분하는 인간관계를 말한다. 예전에는 소수의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면, 요즘을 목적에 기반하여 인간관계를 지향한다. 관계의 밀도보다는 스펙트럼을 중시하고 SNS로 촉발된 목적 지향적 만남이 오늘날 대세가 됐다. 이에 과거의 지인들이 전화번호부에 국한되었다면 요즘은 다양한 인덱스를 붙여 효용성 있게 관계 관리를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Irresistible the ‘New Demand Strategy’(뉴디맨드 전략)이란 불황에도 수요를 이끌어내는 전략이다. 즉, 새로운 수요를 불황기 속에서 창출하는 전략을 말한다. 얼어붙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여는 것은 모든 기업들의 과제이다. 고객들의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이나 허를 찌르는 참신함이 있어야 한다. 사지 않고는 못 배길 대체 불가능한 상품을 개발해 수요를 창출한다. 이 전략은 소비자 지향적 관점에서 창의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Through Enjoyment: ‘Digging Momentum’(디깅모멘텀)은 고도의 ‘덕후’는 곧 전문가이다. 특정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소위 ‘덕후’라 불리던 이들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괴짜’로 치부되곤 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한 분야를 파고들어 자신만의 ‘행복 버튼’을 찾으려고 매진한다. ‘디깅 모멘텀’은 한 분야에 진심으로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트렌드를 말하다. 현실도피냐 건전한 취미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일상과의 조화다. 일상과 디깅이 적절히 조화되면 인생에 생동감이 더해질 수 있다.
Jumbly Alpha Generation(알파세대가 온다)는 책 대신 스크린, 필기 대신 터치를 선호한다. MZ세대의 다음 주자인 알파세대는 2010년대 초반부터 2020년대 중반에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말한다. 1980년대 밀레니엄 세대 부모에게서 태어난 이들은 이전 세대들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랐으며,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이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을 접하기에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알파세대는 온라인 활동을 자유롭게 누리고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제약된 오프라인 활동에 대한 갈증이 큰 세대이다.
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선제적 대응기술)이란 기술이 먼저 제안하는 시스템 개선 솔루션을 말한다. 사람이 기술을 제어하는 수동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이제는 기술이 먼저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파악해 미리 제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물론, 사회적 약자를 돕거나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기술이다. 소비자의 행동에 대한 분석과 이해, 나아가 상상력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지가 이 기술의 관건이다.
Magic of Real Spaces(공간력)이란 마음을 움직이는 공간의 힘이다. 개인 블로그(blog)부터 메타버스(metaverse)까지, 가상공간에서의 활동 영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하지만 가상의 영토가 넓어질수록 삶의 근본적 터전인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에 사람을 모으고 머물게 하는 공간의 힘, 공간력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공간 자체의 힘으로 사람을 끌어당기고(인력), 가상의 공간과 연계하여 효율성을 높이거나(연계성) 메타버스와의 융합으로 지평을 넓히는(확장력) 공간력은 물건 유통의 공간을 넘어 브랜드의 정체성까지도 견고히 다져준다.
Peter Pan and the Neverland Syndrome(네버랜드 신드롬)이란 나이들기를 거부하는 피터팬처럼 어린이들이 소비할 것 같은 상품을 성인들이 소비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이는 영원히 늙지 않고 젊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더 젊게 살 수 있게 되면서 소위 ‘어른’의 전형적인 모습이 사라진 세태를 말한다. 불안정한 미래를 잠시 잊고자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젖어든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회 전체가 유아기적인 행동을 보여 미성숙(未成熟)해질 수도 있다. 이에 유아적 자기중심주의가 아닌 청년의 활기찬 기운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사회 전체의 진정한 성숙을 위해서는 네버랜드 신드롬이 건강한 방향으로만 이어져야 한다.
사회 변화에 부응한다는 측면에서 트렌드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을 갖기 쉬우나 중요한 것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언제쯤 확산될 것인가 하는 타이밍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또한 트렌드를 쫓더라도 자기 주관을 지키는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앞으로 2023년의 흐름을 읽어 나가는데 10가지 주요 트렌드를 참고한다면, 결정적인 순간에 기지를 발휘하는 토끼처럼 힘차게 도약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