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 지난칼럼 |
한반도에서 태어나 수 십 년을 살다가 반대편인 뉴질랜드에 와서 살다보니 십 수 년이 흐른 지금에도 계절에 대한 감각은 적응이 잘 안 되고 있다. 한반도는 사계절의 흐름이 명확하고 계절 변화에 따른 환경 변화가 뚜렷해 역동적인 면이 있으나 뉴질랜드는 밋밋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름과 겨울이 반대이니 봄과 가을은 어느 틈에 끼어 지나가는지 혼동이 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헷갈리게 되는 현실이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오래 기억이 되는 만큼 성인이 되어 환경이 정반대인 새로운 땅으로 이주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생각되지만 지난봄은 정말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작년 11월로 기억된다. 분명히 여름으로 이행되어가는 절기인데 겨울날씨 같이 을씨년스럽고 비바람까지 몰아쳐 옆에 있는 키위 레이디한테 지금이 봄인 게 맞느냐고 역설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당연히 봄이라고 대답했다. 무슨 봄이 이렇게 춥기까지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자기는 춥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당신은 젊으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했더니 자기 나이가 60이란다. (? 내 기준으로는 젊은 게 사실인데……) 자기는 웰링턴에서 오래 살다 왔기에 오클랜드 날씨에 대해서 춥다거나 비바람이 거세거나 하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2월4일이면 한국에서는 봄을 알리는 입춘(立春)이고 기나긴 추운 겨울을 벗어나 만물이 기지개를 펴는 때이다. 3월이면 제법 새 싹이 돋아나고 봄의 3총사인 개나리, 벚꽃,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4월이면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이어서 목련, 찔레꽃, 철쭉, 라일락 등이 온 산야를 뒤덮는다. 전 세계 한민족 동포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고향의 봄’은 우리의 정서를 아주 리얼하게 표현한 가사 내용이며 곡의 리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인들의 다문화가 서로 융합되어 글로벌화가 진행되고 있고 이를 통해 인류 평화를 도모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외국에서 합창단 특히 소년/소녀 합창단들이 아주 정확한 우리말 발음으로 ‘고향의 봄’을 부르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과연 한민족의 일월인 우리는 얼마나 우리 가곡을 애창하고 있는지 뒤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외국동요, 가곡들을 애창하듯이 외국 사람들도 우리 가곡을 애창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뜻 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이러한 의도가 전파되고 있고 근래 한류의 열풍과 더불어 가곡도 퍼져 나가는 현상이 자랑스럽다.
‘고향의 봄’은 일제치하 시절인 1926년 이원수(1911-1981) 선생이 15세 때 당시 방정환 선생이 발행하던 아동문학지 ‘어린이’ 잡지에 발표한 동시이다. 홍난파(1897-1941) 선생이 1927년에 작곡한 노래로 한민족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가곡이다.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채택된바 있으며 3.1운동 후 만주, 연해주 등지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던 선조들은 한일병합 이전의 어린 시절 조선을 그리워하며 이 노래를 통하여 시름을 달랬고 하루 빨리 독립을 쟁취하려는 각오를 새로이 했다. 또 다른 동요 곡인 ‘오빠생각’은 이원수 선생보다 3살 어린 최순애(1914-1998) 선생이 11살 때 1925년 ‘어린이’ 잡지에 발표한 동시를 박태준 선생이 작곡을 했는데 역시 국민 가곡이 되었다. 어린이 잡지를 통해 서로 호감을 갖게 된 두 사람은 펜팔로 교재를 이어갔고 1935년에 혼담까지 오고 갔으나 독서회 사건으로 이원수 선생이 투옥되었다. 다음해 출옥 후 선생은 최순애 연인의 집을 찾아가 청혼을 했고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되는 동화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고향의 봄’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고 선율이 순수하고 아름다워 이를 전 세계인의 애창곡으로 전파할만하다. 우리 재외동포 입장에선 회합이 있을 때마다 이 노래를 합창하면서 고국에 대한 사랑을 재인식하고 다른 민족들과 같이 모임이 있을 때는 노래의 한글과 영문 가사를 제시해주어 노래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하고 같이 불러보는 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 참고로 영어로 번역된 가사 내용을 인용해보면 아래와 같다.
고향의 봄 Spring in my hometown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My home is a blooming mountain village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Poach blossom apricot baby azalea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So nice colourful Arcadia with many of beautiful flowers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I miss old playmates and those times on the playgrounds.
꽃동네 새동네 나의 옛 고향
Village of flowers village of birds that’s my old hometown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So sweet winds were coming from the southern green field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Aid it danced with the leaves of willow trees sitting on the flowing creek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I miss old playmates and those times on the playgrounds.
세계화 시대에 한민족이 지구촌 방방곡곡에 진출하여 살 있고 고국은 남북으로 갈라진 상태에서 78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처한 정치적 환경은 다르더라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 살고 있던 고향에 대한 정서는 동일하리라. 그렇다면 남한에서 살고 있던 북한에서 살고 있던 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 살고 있던지 간에 8천5백만 한민족의 가슴에 품고 있는 고향에 대한 정서를 세계인들과 함께 공유(共有)하면서 ‘고향의 봄’을 마음껏 불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