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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으로 이름난 절 가야산 해인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익히 들어 친숙한 이곳은 저마다의 관념 속에 대웅전 하나쯤 짓고 해인사라 부를만한 곳이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처럼 널리 알려졌으나 실제로 닿기 어렵단 소리다. 합천군 언저리가 터전인 사람이라면 모를까, 접근성이 취약한 탓에 해인사를 찾기 위해선 용단이 필요할 수 있다.
현재 해인사터미널까지 왕복 가능한 대중교통편은 대구 서부정류장의 시외버스가 유일하다. 코앞에 해인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부터 2km 남짓의 경사로를 도보로 이동해야 해인사다. 서울과 부산, 진주, 마산에서 시외버스에 탑승해 합천터미널에 하차한 후 시내버스를 타고 해인사 터미널까지 이동할 수 있으나, 1일 4회만 운영되니 이를 놓치면 난감해질 노릇이다. 자차 운행을 선택한다면 굽이지고 가파른 도로 주행을 감내해야 한다.
쉽지 않은 길임에도 이곳의 템플스테이를 추천하는 것은 여느 사찰에서 겪지 못할 해인사만의 ‘독점적인’ 특전들이 매우 특별하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산행이 고행이라면 해인사행 여정은 행복 그 자체일 이곳만의 템플스테이를 소개하니, 해인사를 꼭 찾아야 할 이유 하나쯤 간직해 보자.
#살굿빛 #독립공간 #자유
해인사 템플스테이 체험동은 해인사 뒤쪽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오르막길 군데군데 알림판을 설치해 헤매지 않고 다다를 수 있는데, 오름길의 끝에 이르러 살굿빛 외벽의 건물을 발견했다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체험동은 참선과 108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선림원과 숙소인 휴휴정사와 무아정사, 차담 공간인 다정원, 사무국으로 구성된다. 비탈진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선림원 아래로 휴휴정사, 그 아래로 무아정사를 앉힌 형국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전각 주변의 탁 트인 너른 공간은 해방감을, 산의 능선과 울창한 숲이 에워싼 형국은 평온함을 선사한다. 따로 떼어낸 듯 독립된 공간이라 자유로운 정서도 짙다.
살굿빛 건물 안쪽의 공간은 템플스테이 사무국으로 강의실, 인경체험실과 공양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이곳에서 교육과 안내를 받은 후 배정된 방으로 이동해 짐을 정리하면 된다. 수련복으로 갈아입은 후 쉴 겨를이 생기면, 선림원 뒤편에 마련된 정원에 방문해 보자. 바위를 중심으로 제철 꽃으로 꾸민 아담한 화단과 벤치가 나를 반긴다. 자유다!
#침대 #108배 #거뜬
템플스테이 덕에 대가람에서 묶는 게 수월해졌지만, 등이 배기는 잠자리는 혹자에게 고역이었을 테다. 해인사는 방마다 침대를 넣고, 편안한 숙면을 제안한다. 새하얀 침대보와 베갯잇을 절에서 보게 되니 반갑고, 단순한 색조로 통일된 실내의 공간 설계가 꽤 현대적이라 놀랍다. 방마다 탁상 조명기를 올린 책걸상을 배치해 읽을거리를 구비해 놓았고, 더위를 몰아낼 팬을 천장에 달아놓았다. 문밖 풍경만 아니라면 사관학교의 기숙사라 착각할 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108배를 마쳐도 삭신 걱정 없이 거뜬하게 쉬어갈 수 있다.
#브로콜리감자스프 #아메리카노 #티타임
휴식형, 체험형 구분 없이 주말 참가자에 한해 브런치를 제공한다. 국내산 수미감자에 브로콜리를 곁들인 스프를 내어놓는데, 템플스테이 사무국에 딸린 공양간에서 맛볼 수 있다. 이곳에는 에스프레소 머신도 설치되어 있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부담 없이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카페인이 꺼려진다면 옛 템플스테이 사무실인 다정원(아직 간판이 없다) 1층 다실에서 약초차를 마셔보자. 쑥잎, 백련잎, 우엉 뿌리 등 천연 차와 다구가 준비되어 있어 나만의 티타임을 가질 수 있다. 이곳 테라스에서 계곡을 바라보며 일행과 차담을 즐겨도, 지참한 텀블러에 차를 담아 산책을 다녀와도 좋다. 사무국 공양간과 다정원 1층 다실은 취침 전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니 요긴하게 활용해 보자.
스님과의 차담은 한 층 위 카페에서 진행된다. 편안한 공간에서 지도 법사인 서현 스님 말씀에 귀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나를 잘 살피게 되니, 차담이 필요한 참가자는 사전에 사무국에 요청하자.
#팔만대장경 #단독개방 #윤장대
해인사의 꽃인 팔만대장경은 판전에 보관되고 있다. 인터넷 예약을 통해 탐방이 가능하지만, 템플스테이 주말 참가자들에게는 단독으로 개방된다. 팔만대장경 연구원의 전문가가 직접 해설을 담당해 만족도는 비교 불가다. 주중 참가자는 판전 내부에 진입할 수 없는 대신 장경이 보관된 수다라장(修多羅藏)과 법보전(法寶殿) 등을 외부에서 관람할 수 있다.
경판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판전 바로 밑 대적광전이나 대비로전에 방문해 참배한 후 법당 보살에게 윤장대 코인을 달라 요청해 본다. 이걸 뒤편에 설치된 윤장대에 넣고 돌리면 부처님의 이야기를 얻을 수 있다. 작은 지통에 돌돌 말린 부처님의 이야기가 가르침으로 번뜩 빛날 수도 있겠다. 해인사 템플스테이 기념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가야산 #원당암 #공부하다 죽어라
가야산(伽倻山)은 상왕봉을 중심으로 기암괴석의 고봉들이 병풍을 치듯 에워싸고 있는 산세가 경이로운 데,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擇里志)』에서 ‘뾰족한 돌이 줄을 잇달아서 불꽃 같다’하며 예찬했다. 해인사가 가야산의 품에 푹 안긴 형국이라 경내에서 기암의 봉우리를 볼 순 없지만, 대적광전 앞에 서면 서서(徐徐)한 산들의 능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만들어 내는 한 폭의 수묵화를 감상할 수 있다.
경내 풍경이 성엘 차지 않으면 원당암(願堂庵)에 가보자. 선림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원당암엔 가야산 제일의 전망대 운봉교가 있다. 야트막한 언덕인 이곳에서 해인사 전경을 조망할 수 있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면 ‘공부하다 죽어라’ 글씨가 새겨진 높다란 비석도 볼 수 있다. 이는 혜암 큰스님이 남긴 말씀이다. 원당암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는 기도처이자 수행처니 순례 중에는 조신하게 행동하자. 이외에도 점판암(粘板岩)으로 제작된 특이한 구조의 다층석탑을 만나볼 수 있어 부러 시간을 내어 원당암에 방문하기를 권한다.
#홍류동 계곡 #비경 #해인사소리길
해인사터미널 부근에 흐르는 홍류동(紅流洞) 계곡도 백미다. 가을 단풍이 붉게 달아오르면 계곡의 물 또한 붉게 피어오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 홍류동 계곡은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갓과 신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로 유명한 곳인 만큼 기암괴석과 노송, 전나무,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비경을 선사한다.
홍류동 계곡에는 해인사터미널에서 시작해 대장경테마파크까지 7.3km를 이은 ‘해인사 소리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해인사는 6월부터 매월 첫 번째 토요일에 ‘소리길 산책’이라는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전 구간을 걷는 것은 아니지만 1시간 30분 정도 잘 닦인 탐방로를 걸으며 최치원인 양 자연에 동화되는 순간을 만끽하자.
#마애불입상 #성철 스님 부도 #2박3일 #추천
템플스테이 참가자만 탐방이 가능한 마애불입상도 빼놓지 말자. 선림원에서 40분 정도 거리인 중봉에서 통일신라 시대의 석불을 만날 수 있는데, 운이 좋으면 스님과 도반이 되어 ‘스님과의 산행’이 성사될 수도 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말씀으로 유명한 성철 큰스님의 부도도 꼭 참배하자. 조형미를 한껏 살린 부도의 외관이 특이한데, 이곳에 앉아 잠시 번뇌와 망상을 멈추고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 속에[海]에 비치는[印] 해인삼매(三昧)에 들어 보자. 성철 스님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백련암을 찾으면 되는데, 해인사는 총 16개의 부속 암자를 거느린 큰절인 만큼 시간을 할애해 순례하면 좋다.
템플스테이 실무자인 안혜원 씨는 “해인사엔 스님도 많이 계셔서 예불 소리가 장엄하고, 절의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엔 1박 2일은 짧으니 최소 2박 3일 일정으로 방문하면 흡족한 여정이 될 것”이라 전했다.
■ 합천 해인사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055-934-3110
■ 제공: 한국불교문화사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