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5 개
7,678
20/09/2010. 17:25
NZ코리아포스트 (122.♡.151.146)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사랑은, 결혼은 뭐하러 하나? 뉴질랜드, 한국 불문하고 집집마다 절벽 위 소나무처럼 독야청청 늙어가는 아들 딸들이 있다. 그네들은 사랑과 결혼이 두렵다고 한다. 힘들어 보여서 지레 피하고 싶다고도 한다. 아들 둘, 딸 하나가 서른 초중후반에 걸쳐 있는 선배는 화병이 다 생겼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한국의 노교수가 어느날 자신의 사랑론을 피력했다. 사랑에 빠지다, 영어로도 falling in love, 제 정신 가졌다면 어떻게 ‘빠지냐’는 것. 물귀신에 발목을 잡혀 늪에 끌려 들어가 듯이 어떤 음험한 기운에 정신을 잃고 holic되는 상황은 결코 정상이 아니라고.
반면, 일본에서는 미혼으로 늙어가는 이들을 ‘싸움에 진 개’라고 표현한다. 세상과의 싸움, 사랑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것일까, 패배자처럼 처절하고 청승맞아 보인다는 것일까? 그들을 둘러싼 아우라가 황금 가루가 아니라 잿빛이라는 것일까.
나의 '사랑론’은 생물학과 관련이 깊다. 혹여,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이들이 사랑에 빠진 이들과 달라보인다면 그 이유는 '줄기세포’를 만들어내지 못해서일 것이다. 60조가 넘는 우리 몸의 세포는 줄기 세포로부터 분화된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어떤 감정이나 느낌, 감수성, 사고, 판단, 이해 등의 모(母)세포는 분열되고 분화되고 자라고 죽고 다시 태어난다. 이때 필요한 정신의 자양분은‘사랑’이다.
생각해보면, 알 속에 갇혀 있다가 세상에 나온 병아리처럼 미성숙, 미분화 감정 상태가 몇 단계 쑥 커져버린 것은 사랑이 지나간 후였다. 사랑이 이루어졌거나 이별로 끝났거나, 달콤했거나 씁쓸했거나 하는 사실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랑, 미움, 배신, 화해, 용서, 기대, 실망, 그리움, 반가움, 흥분, 진정, 좌절, 저릿함, 환희, 안타까움, 갈망, 질투, 한숨 등이 원자폭탄처럼 증폭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 사랑이 아니라면 인간이 무슨 일로 이 많은 감정의 줄기세포를 분화시킬 수 있을까. 과거에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랫말이 궁금해서 번역본을 찾아보곤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일이 부질 없음을 깨달았다.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즐기는 노래며 시, 소설, 영화, 드라마의 90% 이상은 사랑과 관련된 일이다. 사랑은 창조적 작업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사랑으로부터 분화된 감정선상에서 이해하면 그리스, 라틴 노래도 OK!
기쁜 우리 젊은 날엔 느닷없이,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사랑에 빠졌다. 내가 아는 언니는 최루탄 포화 속에서 사랑을 만났다. 생면부지의 남자가 혼자 걷고 있던 언니에게 다정하게 팔짱을 끼었다. 그 남자는 운동권 학생이었는데, 경찰에 쫓기고 있었던 것. 데이트하는 척 광화문과 시청을 걷는 것으로 인연의 실타래가 엮어져서 뜨겁게 타올랐지만, 이별했다. 그 언니는 손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싶어 했고, 그 남자는 재야 노동 운동을 했으므로.
내 친구는 남친이 데모하다가 잡혀서 강제 징집 당한 뒤, 정신이 이상해졌다. 친구는 정신과 약을 먹고 시도 때도 없이 졸고 깨어나면 횡설수설 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격랑의 세월, ‘모래시계’에 필적한만한, 50부작 미니시리즈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우리들 사랑 얘기여서 다시 떠올려보니 참 지난하고 혼을 뒤흔드는 저릿함이 있다. 하지만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이었음을 우리는 안다. 하여, 위대한 노(老)작가나 걸출한 노배우에게 앞으로의 희망 작품을 물으면 십중 팔구는 가슴 절절한 사랑 얘기, 멜로 연기라고 말한다. 오죽 사랑이 좋으면 정호승 시인은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시를 썼을까.
휴일에는 혼자 찜질방에 가는 K, 결혼한 동생 애들 재롱 보면서 행복해 하는 Y, 컴퓨터를 애인처럼 껴안고 사는 P야, 사랑을 꼭 만들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젊었을 때는 사랑으로 살고, 늙어서는 추억을 곱씹으며 산다고 한다. 되새김질한 사랑이 없다면 아흔까지 무슨 낙으로 살까. 잠도 없어진다는 노년의 베갯머리에 옛 사랑의 환영이 떠돌아다니면서 황금 가루를 뿌려준다면 우리의 노년은 얼마나 찬란할까.
나는 문득 '인생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같았다는 말을 남기고 선종한 테레사 수녀의 말을 떠올리곤 한다. 인생은 매일매일 그저그렇고, 낯설고 퀴퀴하고 구질구질하고 좀벌레처럼 음험한 사건의 연속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 고마웠던 것은 함께 나눈 ‘사랑의 시간’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 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허수경의 시 --- 고마웠다, 그 생애의 어떤 시간>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