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가만히 있어도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는 재주들이 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표정만 봐도 이심전심이 가능하다.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경지를 ‘지음(知音)’이라 한다. 중국 진나라 시절 거문고를 잘 켜던 ‘유백아’와 그 소리를 잘 알아주던 ‘종자기’의 고사에서 나온 얘기. 유백아는 종자기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고 두 번 다시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 불가(佛家)의 대자대비, 중생들의 서원담당 관세음(觀世音)보살도 세상의 소리를 듣고 구제해주는 보살이다. 입보다 귀를 상석에 앉히라는 것도 소리를 잘 들으라는 말이다. 여기서 ‘소리’라는 것은 성대를 통해 나온 음성이 아니다. 영혼에서 울려 나오는 메시지, 혹은 어떤 기운을 알아차리라는 것이 아닐까.
나는 후배와 통화를 하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날은 뼈 속으로 추위가 스미는 스산한 날이었는데, 맨발로 찻집에 두어 시간 앉아 있다 온 후였다.
“---선배, 발이 너무 차. 족욕 좀 해야 겠는데. 한 일주일은 해야 냉기가 빠질 거야. 커피 포트에 물 끓여가면서, 식으면 조금씩 붜 주고--- 난 뭐 커피포트를 그런 용도로 사용한다니까---”
워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면서, 후배가 신기 들린 무당처럼 느껴졌다.
서울과 오클랜드는 비행기로 11시간이나 되는 거리다. 물론 후배가 기(氣) 수련을 2년 동안 했다지만, 그녀가 나의 지음이 아니었다면 서로 찌르르 통했을까? 그 후배는 어느 날, 또 이런 말도 했다.
“선배, 왼쪽 갈비뼈 아래가 결리지?---으으---나도 아프다.”
그날 이후 나는 내 몸 상태가 아주 좋을 때만 후배와 통화한다. 지구의 남반구에서 북반구로 아픈 기운을 전염시키지 않기 위해서.
나의 지음은 항상 내편이 되어주고 나를 걱정해준다. 어떤 경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필요하다. 소진되어가는 에너지를 충전시켜주고, 살아갈 이유를 부여해주는 소울 메이트이기 때문에.
오클랜드에 13년째 살면서 간신히 만들어지려(?) 했던 지음은 한국으로 돌아가버렸다. 물론 한국에 살 때도 나는 진정한 영혼의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소울 메이트를 갈망했지만, 겨우 한 두명 찾아냈을까. 공자는 일생에 친구 한 명 얻기 힘들고, 두 명은 과하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진정 뼈 속까지 시리도록 파고든다.
그리하여 나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자판을 두드렸다. 소설가 박민규는 2010년, ‘아침의 문’으로 34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연탄불을 피워놓고 단체로(?) 자살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 하나였던 나는 운 좋게(?) 죽지 않고 깨어나서 건너편 건물의 옥상 위에서 애를 낳는 한 여자 아이를 보게 되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처럼 비릿하고 짭쪼름한 자학과 피학과 가학의 냄새도 나고 구원의 향기도 얼핏 떠도는 소설이다. 그런데 소설보다 더 파격적인 것은 작가의 변이었다. 박민규는 ‘공부는 불쌍한 인간이 스스로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공양(供養)이다’라는 덕목을 세웠다. 그는 좋은 공양을 위해 몇 가지 원칙도 마련했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 볼 일을 만들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다, 겸손해진다, 생깐다(경조사들!), 그래요 당신이 옳아요라고 말한다, 양보한다, 손해를 본다’ 등이다. 그의 원칙은 시간과 감정의 낭비, 불필요한 열정 등 정말 많은 것을 절약해주고, 오로지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일 터.
나도 오클랜드에 살다보니 본의 아니게(?) ‘볼 일이 별로 많지 않아’ 박민규의 원칙을 손톱만큼 닮아가게 되었다. 게다가 손가락 끝에서 중구난방 뛰쳐나가는 자판의 활자들을 다스리기 위한 좌표도 세워야만 했다. ‘서정적일 것, 꿰뚫어볼 것, 공감을 살 것’ 등이다. 우리네 삶이 비루해지고 강퍅해진 것은 서정을 잃어버려서, 혹은 비루해지고 강퍅해져서 서정을 잃었다고 느끼기 때문에, 인간들이 잃어가고 있는 감정 중에 반드시 되찾아야 할 것이 ‘서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날선 비판이 최고의 덕목인 칼럼과 서정의 조화를 시도했다. 삶의 표피가 아니라 진실을 찾아 통찰할 것, 그리하여 많은 지음을 만들 것. 단 세 가지였다. 그러나 뭐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는 듯 하다.
어쩜 어떤 원칙이나 덕목을 세워놓는 것 조차도 의미 없는 일이 아닌가. 살다보면 장님처럼 더듬거리는 나날들이 더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