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키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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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012. 16:51
김영나 (202.♡.85.222)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을 형성하며 폭발하는 핵폭탄의 위용은 실로 상상을 넘어선다. 사방 수십 킬로 면적이 수십 년에서 수만 년 죽음의 땅으로 변하는 것은 물론, 핵물질이 바람과 해류를 타고 온 지구상에 퍼지면 지구는 멸망을 맞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우라늄, 플루토늄세슘, 요오드 등, 자고나면 새로운 핵물질이 검출됐다. 도대체 핵물질의 종류는 얼마나 많은 것인지. 핵물질은 모양도 냄새도 없이 슬며시 세포 속에 자리잡고 앉아 생명체를 죽게 만드는 몬스터와 같다. 무지몽매한 일반인으로서 공포스럽기 그지없다. 더구나 핵을 다 이해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각 정부들이 잘못을 숨기거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다.
3월 26, 27일, 서울에서 전 세계 53개국 정상(급)이 참여,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했다. 2014년까지 개정된 핵물질 방호협약 발효, 핵 테러방지, 핵물질 재고 관리와 추적 시스템 구축, 원자력 안전 불법거래 방지, 글로벌 안보 체재 강화 등 총 13개 항목의 서울 코뮤니케를 채택, 발표했다. 한 마디로 핵은 위험하니 자제하고 관리를 잘 하자는 것.
하지만 이틀 동안 입에 발린 말(言)들의 폭탄이, 버섯 모양 전 세계에 쏟아져 내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합의문이나 선언서 채택 후, 제대로 이행된 전례도 찾기 힘들고, 실천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불충분하다. 대장급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 북한이나 이란에게 세를 과시하는, ‘그들만의 잔치’일 뿐이라는 짐작도 떨칠 수 없다.
중국은 핵안보의 중요성은 공감하지만, 개발도상국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제약해서는 안된다며 미묘한 신경전을 펼쳤다.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이산화탄소라며, 이산화탄소감축을 빌미로 개발도상국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일과 비슷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은 미국이 1위가 아니던가.
세계 정세를 이끄는 힘의 논리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대중들을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실패, 냉소적으로 돌아선 대중의 등판만 바라볼 뿐이다. 냉소적인 대중들은 단지 허기를 느낄 뿐이고, 정작 나의 관심은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존 키의 손에 들린 선물 보따리다.
2005년 헬렌 클락이 한국에서 열렸던 APEC에 다녀온 후,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마치 촌 사람이 도시에 간 것처럼 얼떨떨했다.’
한국의 인터넷과 IT 산업에 충격을 받은 헬렌 클락의 말이다. 그녀는 시골 소녀 상경기와 같은 APEC에서 돌아와 인터넷망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복장터지던 모뎀식 인터넷 시장에 드디어 초고속 인터넷이 등장했다. 요즘 몇몇 업체 간에 경쟁 구도까지 형성되어서 가격을 떨어지고 서비스는 올라갔다.
사실 핵안보정상회의 이틀 동안 각국 정상들도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많았고, 온 김에 님도 보고 뽕도 땄다.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 간담회를 하고, 산업 시찰, 한국을 벤치마킹하며 국익 챙기기에 열을 올렸다.
영국 부총리 닉 클레그는 삼성물산을 찾아 풍력 발전에 관해 논의 했고, 칠레는 신재생에너지와 방위 산업 협력 강화, 카자흐스탄은 건설 분야의 근로 협정 체결, 태국은 수해방지 시스템에 관해 협상 했으며, 요르단은 삼성전자와 협력 방안을 논의 했다. 존키 총리도 삼성전자를 방문하고 이명박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갖고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와 FTA에 관해 논의 했다.
2010년 7월, 존키와 이명박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가졌었다. FTA의 조속한 타결과 에너지 천연자원 개발, 초고속 인터넷, 교육, 문화, 영화, 정보 통신 등 인적 문화 교류 강화를 협의한 바 있다. 그 당시 뉴질랜드 현지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무릎팍도사처럼 꿰뚫어 본 것이다.
올해는 한뉴 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반세기를 알고 지냈으면 서로에게 줄 선물로 무엇이 가장 좋은지 파악될 법도 하지 않은가.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은 그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의 행동과 선택이 그 사람이더라.’
안철수 교수의 말이다.
존 키 총리가 한국에 다녀온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0년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방문이었다. 첫 번째는 실망했지만, 두 번 실망하기는 싫다. 뭔가 선물을 달라. 우리는 아직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