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리아 포스트 창간 20주년에 부쳐
지구 밖 6천Km 상공에서 찍은 우주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구는 진애(塵埃)에 불과했지요. 마치 햇살 좋은 날 커튼 사이로 비쳐들어오는 한줄기 빛 속에서 부유하는 먼지 중 하나라고나 할까요. 과학자가 동그라미 쳐주지 않았으면 알아채지도 못할 창백한 먼지, 그것이 지구였지요.
또 다른 이야기도 있어요. 그나마 눈이나 기기로 관측되는 별과 행성 먼지들은 전체의 4%에 불과하답니다. 우주는 최첨단 기기로도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23%, 암흑에너지는 73%라고 합니다. 우주의 96%는 미스터리입니다.
암흑 속에 티끌 같은 지구, 그 속에 살고 있는 나, 너, 그리고 우리들 ---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기운이고 바람이고 먼지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생의 방정식은 답을 알 수가 없지요. 하지만, 우리와 삼라만상이 내뿜는 기운이 고운 미립자, 혹은 에너지가 되어 96% 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들이 오래전부터 내려온 것이 아닐른지요. 싸우고 절망하고, 영혼과 육체를 함부로 다룬다면 나쁜 기운이 떠돌겠죠.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사랑하고, 건강한 심신을 위해 노력한다면 아름다운 에너지가 무지개처럼 우리를 둘러싸겠죠.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렵다고 말합니다. 유로존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 침체가 지구촌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출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쇼핑몰은 복잡하고 비싸고 유명한 음식점은 예약하지 않고는 자리잡기가 힘듭니다. 18세기, 찰스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를 썼는데, 요즘 상황과 딱 들어맞습니다.
<최고의 시기였고, 최악의 시기였다. 지혜의 시기이기도 했고, 바보 같은 시기이기도 했다. 믿음의 시대였고, 불신임의 시대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갖고 있었고,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또 반대로 가고 있었다.>
18세기에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우린 쫄딱 망하지 않고 장님처럼 더듬거리면서 주린 배를 졸라매기도 하면서, 피흘리는 상처를 감싸안고 21세기까지 왔네요. 희망은 ‘영원불멸’이니까요.
희망의 미립자가 가득 넘치는 세상을 만들려면?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왜 한국에서 80만부 이상이나 팔렸을까요?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로운 사회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으로 올바르게 분배되는 사회랍니다. 그는 지난 3일 서울 시청에서 박원순시장과 대담을 나눴는데요,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공동체의 선(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회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그런 시민 사회의 고민과 의견을 미디어가 성실히, 그리고 정의롭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제대로 된 미디어가 존재하는 사회는 어둠의 에너지가 존재할 수 없겠죠. 하여, 20년 동안 오롯이 교민들의 입이 되어준 코리아 포스트의 성년식이 정말 기쁘답니다.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20년 동안 한 우물을 파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요. 강해서 버틴 것이 아니라 버티다 보니 강해졌다는, 그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잘 자라서 어른이 된 언론은 이민 사회의 정의와 공동체의 선을 얘기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해서 뉴질랜드 한인 사회의 희망입니다. 한 가지 더 의미 있는 사실은, 한인 이민자들이 본격적으로 밀려들어왔던 1990년 대 초 중반에 코리아 포스트는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순간을 담아왔고, 덕분에 우리는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어떤 교민은 코리아 포스트가 광고지라며 하찮게 여기곤 하는데요, 사실 광고는 훌륭한 역사이지요. 팝 아트의 스타 앤디 워홀의 ‘캠벨 스프 깡통’이나 ‘210개의 코카콜라 병’ 등은 수십 억을 호가하며 뉴욕 화랑에 걸려 있지요. 광고는 문화의 꽃이고 삶을 엿볼 수 있는 바로미터이고 또 역사의 기름진 거름이기도 해요. 더구나 요즘의 코리아 포스트는 다양한 필진이 대거 포진해서 어느 나라 교민지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읽을거리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요.
온 누리에 생명의 소리가 가득찬 6월, 누리달에 태어난 코리아 포스트. 태생부터 희망의 메신저가 될 소지가 다분했나봅니다. 우리는 이제 막 성년이 된 ‘코리아 포스트’를 희망의 메신저로 임명하여 멋진 장년이 될 수 있도록 요모조모 궁리해봐야겠습니다. 불길한 어둠 에너지가 머리와 어깨에 가득 쌓이는 21세기를 견디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