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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010. 16:41 NZ 코리아포스트 (219.♡.216.169)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인품 좋고 점잖은 신사의 나라 영국이 과거 아프리카 등 식민지에서 자행했던 일들은 악마의 짓이었다. '지킬 박사'가 약을 먹고 '하이드'로 변해 온갖 추악한 일을 저지른 것처럼. 스코틀랜드처녀는 시집 가기 전 잉글랜드 남자와 하룻밤을 지내야만 한다는 (영화 '브레이브 허트') 빌어먹을 법도 있었다.
Racism(인종차별)은 천사를 가장한 악마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존재 해 왔다.
호주는 1910-1970년대까지 원주민 애보리진의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시켰다. 명목은 교육과 문화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 실상 아이들은 백인 가정에서 하녀 노릇을 하거나 성적 학대에 시달려야 했다. 애보리진의 실화를 담고 있는 필립 노이스 감독의 'Rabbit Proof Fence'는 인종 차별의 악마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 14세의 몰리가 여동생, 사촌과 백인 집에서 탈출해서 부모를 찾아가는 고난의 여정은 120마일, 1920Km다. 9주 동안이나 걸어야 했던 소녀들의 이정표가 되어준 것은 다름 아닌 토끼 울타리였다. 토끼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호주 대륙에는 남과 북을 가로지르는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몰리는 잡히지 않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하면서 걷고 걸어 마침내 부모와 해후하지만 다시 잡혀가지 않기 위해 숨어 지내야 했다. 몰리역의 실제 인물은 결혼하여 세 명의 아이를 낳았지만 모두 빼앗기고 말았다고 한다. 그 당시 부모로부터 격리된 애보리진은 10만명에 이른다. 그들을 '잃어버린 세대(Stolen Generation)'라고 부르지만, 부모 자식을 갈라 놓는 천륜을 거스르는 차별의 후유증은 그 세대에서만 끝날 수는 없다. 애보리진들은 부모와 헤어져 고아처럼 성장해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마약 중독에 시달리는 등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케빈 러드 총리는 2007년 취임하자 마자 'Sorry Day'를 잡아 애보리진에게 사과했다. 그나마 감동적이었지만, 고작 립 서비스로 애보리진의 가슴에 서린 천추의 한이 풀릴지는 의문이다.
지난 8일, 호주는 2만명이나 되는 독립기술이민 신청자들의 비자 심사를 갑자기 취소 했다. 수년 동안 공부하고 경력을 쌓는 등 돈과 시간을 퍼부었던 이들에겐 아닌 밤중에 홍두깨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비숙련 단순 기술자들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 이민법을 손봤다는 데는 참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2007년 9월 이전 신청자가 이번의 비자 취소 대상이라니, 호주에는 '소급 입법 금지의 법칙'이 없는지, 이민법은 예외인지? 1월 말에는 시드니에 '이민 반대' 유인물이 유포 되었다. 4년 동안 60만명의 이민자가 유입된 일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호주 인구는 겨우 2200만을 돌파했다. 환경론자들은 사람들이 유입되어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지만, 앵글로색슨만의 대륙, 백호주의의 망령이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호주 당국이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건조한 대륙 호주는 점차 사막화 열대화 되어 가고 있다. 고령화 문제도 심각하다. 현재 65세 인구가 13%, 40년 후에는 22%로, 85세 인구도 현재 5%에서 17%로 증가한다. 생산력은 떨어지고 경제성장은 둔화될 것이 뻔하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선 이민자들을 잘 활용하는 수밖에 없다. 인구를 유입시켜 버려진 땅에 생명을 불어넣고, 젊은 피를 수혈하는 것이다. 인구가 많아지면 환경이 오염되고 자연이 파괴될 것이라는 논리의 오류도 이제는 벗어 던져야 할 때이다. 예를 들자면, 인구 1천만의 도시 서울의 공기는 말도 못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2년 전 서울에 갔을 때 공기가 제법 신선했다. 알고보니 서울시가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시내버스를 CNG(압축천연가스)차량으로 전환하고, 경유차 공해 줄이기 등의 노력을 했단다.그 성과가 바로 숨 쉬면서 느껴졌다. 서울시는 올 2020년까지 버스, 택시를 모두 전기,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교통은 더욱 안락하고 편리해지면서도 숨 쉬는 공기도 깨끗해진다니 무엇보다 반가운 뉴스였다. 환경론자들에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는 말을 해주고 싶다.
뉴질랜드는 '유엔 인종차별 철폐위원회'로부터 쓴 소리를 들어왔다. 인종차별에 대한 동기나 범죄 건수, 처벌 내용 등을 기록한 자료가 없다는 것. 그러고보니 한가한 듯 느린 듯 보이는 뉴질랜드도 재빠르게 움직이는 일들이 있다. 관광, 유학 산업에 타격을 주고 국가 이미지를 손상시킬 문제들은 모래판에 쓴 글씨처럼 재빨리 지워 없앤다는 것이다. 그래서 뉴질랜드는 청정이미지, 지상 낙원, 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 등 '지킬박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뉴질랜드 당국은 이민자들에게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과 지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미래사회를 예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미래에는 국가 개념이 없어진다고 한다. 뉴질랜드와 호주 북부의 아시아 대륙에는 2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다. 이제는 '하이드'의 악마성을 버리고 '지킬박사'의 품성으로 잘 어우러져서 살아갈 일만 생각할 때다. 미래라고 해 봐야 고작 3,40년 후를 말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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