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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010. 17:19 NZ코리아포스트 (219.♡.21.112)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법정 스님이 입적하고 난 후 두 통의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로 시작되는 한 통의 메일은 스님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들이었습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날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白書)가 되어야 한다. 내게 무덤이라도 있게 된다면 그 차가운 빗돌 대신 어느 여름날 좋아하게 된 양귀비나 모란을 심어 달라고 하겠지만 무덤도 없을 테니 그런 수고는 끼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한 통은 80년대, 독재 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시기에 스님의 책을 처음 접하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선배의 글이었습니다.
"가시고 보니 어디 나 뿐인가. 어리석은 중생은 이제야 깨닫고 심히 부끄러워 하고 있네. 종교를 떠나, 그 분의 맑고 청아한 마음이 담긴 글은 우리 모두의 심신을 닦아 주는, 깊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 그리고 그 물소리였네."
선배는 물질의 영달을 버리고, 환경과 살아 있는 생명을 아끼시며 진정한 자유인으로 사셨던 스님을 닮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다비식 날, 법정 스님은 붉은 가사 한 장 달랑 덮고 참나무 위에 누웠습니다. 유언대로 영결식도 없고 관도 없었지요. 아무리 유언이라지만 저렇게 보내 드려도 되는가, 마음이 편칠 않았지요. 장작에 불이 지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요? 나는 '착하게 살아야지' 참회했지요.
모순과 갈등, 증오와 살육이 판치는 세상에서 그래도 아침마다 해가 떠오르는 것은 인간의 선의지가 있어서라고 합니다. 스님은 그래서 참회를 합니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엿치기를 하면서 엿을 빼돌린 일입니다. 엿 장사가 팔도 하나 없고 말도 못하는 불구였던지라 스님의 자책감은 뼛속 깊이 맺혀 있다가 마지막 길까지 따라옵니다.
책꽂이에 법정 스님 책 세 권이 꽂혀 있네요. '버리고 떠나기, 텅빈 충만, 산에는 꽃피네' 입니다. 92년 4월 서울 법련사 법회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화전민이 살았던 오두막으로 갑니다.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수도생활에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전기도 전화도 없는 태고적 그 곳에서 스님은 '버리고 떠나기'를 썼습니다.
‘---시냇물 소리와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어둠이 내리자 영롱한 별들이 쏟아질 듯 빛을 발했고 소쩍새와 머슴새가 번갈아 가면서 밤새 울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때, 할 수 있다면 이런 오두막에서 이다음 생으로 옮아가고 싶다. 사람이 많이 꼬이는 절간에서는 마음놓고 눈을 감을 수도 없다. 죽은 후의 치다꺼리는 또 얼마나 번거롭고 폐스러운가. 나는 이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두메산골의 오두막에서, 이 다음 생에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앞뒤가 훤칠하게 트인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원을 세웠다.’
스님은 부엌 벽에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소하게'라고 낙서를 해 놓았습니다. '복잡한 것을 다 소화하고 난 다음의 어떤 궁극적인 경지', 그림으로 치면 수묵화의 경지라고 했습니다.그 먹은 한 가지 빛이 아니라 모든 빛이 다 갖춰져 있는 침묵의 세계, 텅 빈 충만의 경지를 말씀하십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며,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하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은 사바세계라고 하는데, 사바는 산스크리트어로 '참는'이라지요. 참을 수 없이 힘든 일이 생길 때 스님의 글을 읽곤 했지요. 서울 친정에도 '무소유' 등 스님의 책이 있을 텐데, 두고 온 책들이 자식처럼 그립곤 합니다.
20대 중반 스님이 출가할 때 가장 끊기 어려웠던 별리의 아픔도 애지중지하던 책들이었다고 합니다. 스님은 자신의 책읽기와 글쓰기를 못마땅해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괴테는 그의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텔레스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의 나무는 푸르다.>'
하지만 우리는 스님의 글이 죽어 있는 회색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의 삶이 욕되고 천박하지 않고, 맑고 향기롭고 행복으로 충만해지고, 삼라만상과 잘 지내도록 어리석은 중생들에게 쉽게 설파한 내용이지요.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활자들입니다.
스님! 육신을 훨훨 벗어 던지고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같은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지요. 하루에도 여러 번 의자를 돌려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 말입니다. 혹, 어느 별로 가셨을까요? 번잡한 것 싫어하시는 거 알지만 우리도 곧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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