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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010. 17:47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우연히 들른 것인지 영역을 넓히려 온 것인지, 어느날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왔다. 진한 갈색의 야성적인 무늬가 매력적인 ‘삵’처럼 생긴 녀석이었다. 첨 보는 녀석이군.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쌈질을 하거나, 발정 나서 울어대다가 책임지지 못할 새끼를 낳거나, 생선을 훔쳐가거나 하는 건달 놈팽이 중 하나겠지. 그런 놈들은 나와 무심히 마주치면 호들갑떨며 줄행랑치기 일쑤였다. 내가 무슨 해코지라도 한 것처럼.
‘삵’은 달랐다. 현관 문을 열고 나가면 어디선가 나타나 ‘야옹’ 인사를 했다. 심지어 현관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우리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한 달음에 달려와 또 ‘야옹’ 반긴다. 발에 착착 감기면서 쫓아다녀서 걸음을 내딛다가 넘어지기도 했고, ‘삵’의 발이 밟혀 ‘야옹!’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텃밭에서 치커리를 뜯고 있으면 무릎에 비벼대고, 마당 수도가에서 치커리를 씻고 있으면 또 와서 물이 졸졸 흘러가는 모양을 고개를 박고 들여다본다. 온 몸이 갈색인데 발과 발목만 흰색이다. 네 발을 모으고 옹송거리고 있는 ‘삵’의 발에는 흰 버선이 신겨져 있고, 내 입가에는 빙그레 웃음이 돈다.
‘삵’은 먹을 것을 주면 먹지 않았다. 나는 굳게 믿었다. ‘삵’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좋아서 그러는 것이라고. 그렇게 두어 달이 흘렀다.
어느 날, ‘삵’이 안 보이면 궁금했다. 이제 안 오는 건가? 호둥그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삵’이 삼삼하게 밟혔다. ‘야옹’ 박자를 넣으며 앞 다리와 뒤 다리를 쭉 뻗는 스트레칭, 발라당 누워 좌우로 뒹굴던 애교도 그리웠다. 줄타기하던 왕의 남자처럼 데크 위 난간에서 묘기를 부리다가 사뿐히 내려앉던 모습은 어디서 찾을까. ‘삵’이 한 이틀 안 나타나자 나는 갑자기 쓸쓸해졌다. 아침마다 창 아래 와서 ‘야옹’ 아들을 깨우던 자명종 ‘삵’은 어디에? ‘삵’의 방, 덤불 아래를 들여다 보면 텅 비어있다. 작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표범처럼 폼 잡던 ‘삵’의 자태는 온데간데 없다. 우리를 만나기 위해 긴 길을 달려오던 녀석의 숨찬 발걸음도 그리웠다.
그렇게 그리움이 짙어질 무렵 ‘삵’은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러면 우리는 너무나 반가웠다. 나는 버선발을 꼭 쥐고 악수를 했고 아들은 얼굴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어느날 ‘삵’은 선물을 가져왔다. 아들은 ‘좋아하는 이에게 선물’ 하려는 것이라 했다. 엄지 손가락만한 쥐였다. 그렇게 작은 생쥐를 어떻게 잡았을까 ‘삵’은 참 재주도 좋지, 신통방통했다. 모름지기 선물이란 ‘낭만’이라는 포장지로 멋을 내야 한다고 믿었던 내 생각이 바뀌었다. 생쥐 선물은 전혀 낭만적이지는 않았지만, 삶의 더러운 욕망은 덜어내고 순수한 빛을 더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사랑에는 고난이 따르는 법. 남편의 질투가 시작되었다. 자기보다 ‘삵’을 더 예뻐한다나 어쩐다나. 고의적인 것은 아닐 것이라고 믿지만---, 비극은 시작되었다.
‘삵’은 생쥐 선물을 꽤 오랫동안 앞 마당에 두었다. 남편이 차고에서 차를 꺼내 나가다가 그만---. 차 바퀴에 깔려 ‘삵’의 선물은 포가 되었다. 말 그대로 ‘쥐포’가 된 것이다. 생쥐는 마당에 데칼코마니되었다. 머리, 몸통, 꼬리까지 섬세하게. ‘삵’의 선물은 우리 집 마당에 한동안 작품으로 남아 있었다.
그 후로도 또 한 번 ‘삵’은 생쥐 선물을 가져왔다. 우리는 곧 그 집을 떠나야 할 상황이었고, ‘삵’의 선물은 이별 선물이 되었다. 아들은 새 주인에게 ‘삵’을 잘 대해주라고 부탁할 것이라고 했다. 어떡하지? 우리 고양이도 아닌 데 서로 깊게 길들여져서..
새 주인이 마지막 인스펙션을 하러 오기로 한 날, ‘삵’은 그날도 우리 집에 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내 새 오너가 등장했다. 갑자기 ‘삵’이 그들을 너무 반가워했다. 온 집안을 졸졸 쫓아 다녔다. 발걸음이 저리 신날 수가 있는가. 내 사랑이 다른 이에게 문드러질 정도로 비벼대는 꼴을 눈 앞에서 봐야 하다니---. 우리는 헌신짝처럼 내팽개쳐졌다. ‘삵’은 갔다. 나는 아직 ‘삵’을 보낼 수 없었지만.
이사하는 날,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내 가슴에도 보슬비가 질척거리고 있었다.
“고양이 아이큐가 얼마쯤 되지? 냄새는 잘 맡나?”
아들에게 물었다. 길 하나 건너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으니 ‘삵’이 혹 냄새를 맡고 찾아오지나 않을까, 그럼 다 용서해야지.
이사 다음 날, 짐을 푸느라 수선을 피우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거실 창 밖으로 ‘삵’의 모습이 보였다.
“삵이다!”
문간방에 있던 아들이 얼른 뛰쳐나가서 잠깐 보았는데, 녀석은 금세 사라졌다. 그 뒤로 아직까지 녀석은 오지 않았다.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일까, 새 주인에게 듬뿍 사랑을 받으며 너무 행복해서 우리를 까맣게 잊은 것일까.
나는 요즘 ‘흠칫’ 거린다. 바람결에 얼핏 갈색이 보이면, 하얀 버선발이 보이는가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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