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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10. 17:26 NZ코리아포스트 (219.♡.23.25)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오클랜드의 지인이 내게 하소연했다. 그녀와 나는 1남 3녀 중 장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다르다면 그녀의 1남은 동생이고 나의 1남은 오빠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보면 그녀 집안 얘기가 곧 우리 집안 얘기다. 부모님의 남아 편들기는 팥쥐 엄마 수준이다. 우리 딸들은 그네들이 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이 아닐까. 그러나 세상은 바뀌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한국,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 연구소에서는 2008년 태어난 신생아 2078명의 부모들을 조사했다. 10명 중 4명 꼴로 딸을 원한다고. 아들을 고집한 아버지는 28.6%다. 남아선호사상이 여아선호사상으로 바뀔 날이 멀지 않았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없다.
지구상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분쟁들은 차별로부터 비롯된다. 인종차별, 성차별은 인류를 불행하게 만든 대표적인 사례. 요즘 새롭게 등장하는 신종(?) 차별은 ageism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노년의 이미지는 사회의 모든 부정적인 요소와 결합되었다. 인구 과밀, 실업, 세금 등이 모두 <자기들 몫의 회전이 끝났음에도 회전 목마를 떠나지 않고 있는 노인들> 탓이 되어 버렸다---”
‘황혼의 반란’을 읽다가 나는 주인공 할아버지 프레드와 할머니 뤼세트처럼 겁에 질린다. 내 나이 일흔이 된다면? 집 근처 요양소에서 간혹 보게 되는 노인들은 약해 보이고 외로워 보였다. 온갖 꽃이 만발하는 봄날에도 그네들은 가을철 낙엽처럼 쇠락해져 쓸쓸하고 춥고 혼자 뒹굴고 있는 듯 했다. 아,그렇게 버려진 기분으로 늙어가긴 싫다.
‘황혼의 반란’에서는 일흔이 되면 아유슈비츠로 끌려가는 유태인들처럼 CDPD(휴식, 평화, 안락 센터)로 가야만 한다. 프레드 할아버지 부부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숨어 있다가 CDPD의 버스를 훔쳐타고 산 속으로 숨는다. 프레드는 산 속에서 CDPD를 탈출한 노인들과 합류, 게릴라 (?)부대를 만든다. 22명의 대원이 전부인 조직의 이름은 ‘흰 여우들’. 슬로건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로 정한다. 프레드와 대원들은 반정부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숲 속에 퍼뜨려진 바이러스로 대원들이 죽어나간다. 결국 프레드도 체포되고 그는 안락사를 당한다.
프레드가 주사바늘을 꽂는 젊은이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너도 언젠가 늙은이가 될 게다.”
베르베르가 묘사한 ageism은 비극적이고 극단적인 상상력이 더해졌다. 꼭 그렇게 써야만 했을까? 작가는 우리에게 백신 주사를 확 찔렀다. 깜짝 놀라서 정신 차리라고. 정말로 늙기 전에 미리 조금 아파보고 면역을 키우고 대책을 마련하라는 경고인 듯싶다.
전 세계적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생산 인구는 줄어들고 노인들이 주류인 세상이 곧 다가온다. 우리는 무엇으로 의식주를 해결할까? 그 문제가 해결 안되면, 결국 젊은이들이 살아남기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줘야 한다는 것이다.
1983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 일흔이 되면 나라야마 꼭대기로 올라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고려장 얘기다. 69세된 할머니 ‘오린’은 너무 정정해서 걱정이다. 특히 이가 젊은이처럼 성성한 것이 창피하다. 궁리 끝에 ‘오린’은 돌절구에 앞 이를 부딪쳐 두 개 정도 뽑는다(오린 역의 여주인공 사카모토 스미코는 실제로 이를 뽑았다). 힘없고 나약해져서 죽을 때가 됐다고 기뻐하며 오린은 마을 사람들에게 뻥 뚫린 앞니를 자랑하고 다닌다.
그 해 가을은 유난히 흉작이 들고 오린은 남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하루라도 빨리 산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새벽 오린은 아들 다츠헤이의 등에 업혀 나라야마로 향한다. 그 산의 정상에서 생을 마감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전설을 믿고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위해 힘들게 산길을 오르는 다츠헤이. 정상에 다가가자 생매장당한 사람들의 유골이 끝없이 널려 있다. 까마귀 떼들은 그악스럽게 나라야마 정상을 맴돌며 울어대고 시체를 파먹고 있다. 눈이 내린다.
“엄마, 눈이 와요! 엄마는 정말 행운아예요. 눈이 오는 날 나라야마에 오면 천국에 간대요.”
조그만 오린 할머니가 유골밭에 옹송거리고 앉았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아들에게 어서 가라고 손짓하던 그녀. 아아, 그처럼 담담하고 용기 있고, 순응하고 배려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니---.
얼마 전 존키 총리는 연금 수령 나이를 67세로 높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앞으로 장담할 수 없다. 평균 수명은 90세를 향해 쏜살같이 치달아가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패턴을 버리지 못하고, 너무 이른 나이 때부터 노인 흉내를 내고 있다.
솔직히, ageism은 밖으로부터의 차별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선고가 아닐른지. ‘회전 목마를 멈춰!’ 누가 명령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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