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1일 발표된 ‘세계은행(IBRD)기업 환경 평가’에서 뉴질랜드가 3위(183개국 중)를 차지했다. 창업 소요기간, 인허가 관련 행정절차, 기업 등록 비용, 투자자 보호,세금 납부 등 10개 항목에 대한 평가 결과다. 2003년 제정된 이래 뉴질랜드는 04년과 06년에는 1위, 09년에는 2위, 지난해는 3위에 올라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한 셈.
하지만 교민들 사이에서는 ‘가만 있는 것이 돈 버는 것’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회자되어왔다. 사업할 돈 있으면 차라리 그 돈으로 먹고 살라는 것.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해서 ‘누구나’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 환경이 좋은 것과 개인의 비즈니스 성공과는 별개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백번 양보한다해도 의구심은 남는다. 뉴질랜드 드림을 안고 개선장군처럼 포부도 당당하게 입성했던 지인들이 패잔병처럼 떠나는 사례를 여럿 보았다. 돌아가는 그들의 뒤 모습이 안타깝고 서늘하게 느껴졌고 교민사회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과연 뉴질랜드 기업 환경이 좋은 것일까?
우선 평가 요소를 곰곰 들여다보았다. ‘소통’의 문제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았다. ‘기업 환경’과 ‘소비 환경’은 서로 소통해야 한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에 (편리하게 진화된) 한국식 아파트를 지어 분양했을 때, 사업하기 좋은 환경에 따라 일사천리로 아파트가 완공된다. 여기까지가 기업 환경이고, 다음 소비 환경으로 넘어가서 분양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몇몇 한국 기업가가 건축한 아파트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분양되거나 분양이 되지 않아 렌트로 돌리는 경우가 생겼고, 재투자가 어렵게 되었다.
‘기업가’에게 인허가를 빨리 해주고 세제 혜택도 짜지 않게 베풀고, 국가 차원에서 보호해준다는 여러 조건들은 어찌보면 벌을 유인해서 꽃가루받이나 하려는 식물의 음험함을 닮지 않았나? 더구나 ‘기업가’가 아니라, 구멍가게 수준의 소규모 ‘사업가’에게도 ‘사업하기 좋은 그 혜택’이 모두 돌아갈지도 의문이다. 중국의 글로벌 자본처럼 거대한 돈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 넙죽 절하며 친절한 기업 환경이 되지만, 소소한 구멍가게 사업가들에게까지 갸륵한 마음이 베풀어질지, 회의적이다. 일단 돈이 풀린 뒤에는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고 재화를 재창조해나가는지 무심하다.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세금 폭탄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어차피 삶의 주체는 ‘나’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기업 환경이나 소비 환경을 말하기 전에 자신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나는 치열한가, 똥폼 잡으면서 하루 아침에 떼돈 벌기를 바라는가? 내 사업이 레드 오션이 아닌 블루 오션인가? 소비자의 기호 파악은 철저한가? 사업 목적과 비전은 무엇인가? 내 사업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와 틈새는 무엇인가, 그에 따른 사업 전략은? 이익 창출과 경비 절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점은, 철저한 현지화와 영어 실력이라는 것.
자신에 대한 검증 이후엔 ‘소통’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 애정어린 눈으로 잘 들여다보면 소통의 물꼬가 트인다. 뉴질랜드 소비자들은 대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거나 가볍다. 1,2달러 숍으로 성공한 L씨의 박리다매 전략은 주효했다. 1,2달러숍에 가게 되면 싼맛에 몇가지 고르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결코 푼돈이 아닌 돈을 소비하게 된다. 수년 후, 자본금이 늘어나자 좋은 가게 자리를 사들이고 위탁 체인을 직영으로 돌렸다. 사업자들을 죽이는 고비용 임대료가 제로가 된 것. 수익과 비용 절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으니 사업은 승승장구.
음식 장사의 경우 일반 원칙은 ‘지나치게 많이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 한계효용의 법칙 안에서 조금 모자를 정도의 감질나는 양이 그 음식에 대한 미련을 남게 하고, 다시 찾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 그러나 이곳 소비자는 아직 배가 고프고,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 지인의 샌드위치 가게는 점심 시간에 20미터도 넘게 줄을 선다. 그의 수완은 빵 위에 원하는 고기 종류는 보통으로 얹고, 야채는 원하는 대로 무한정 올려준다. 양상추, 양파 등은 채로 썰게 되면 부피가 엄청 늘어서 생색내기 좋다고. 우리 동네 성업중인 중국 레스토랑도 밥은 테이블용 보온 밥통째로 내온다.
지난 달, 젊은 층의 몰표로 당선된 박원순 서울 시장의 최대 장점은 소통이다. 선거캠프에서는 SNS를 십분 활용했다. 따박따박 말 잘하는 상대 후보에 비해 어눌해보이는 면모조차 입보다 귀를 상석(上席)에 앉히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정치건 비지니스건 소통해야 성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