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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온 주말이다.
내 일상과 다르게 사는 아이들을 오늘 하루 친구가 돼달라고 하려면 머리를 잘 써야만 한다. 커다랗게 울리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더디게만 느껴졌다. 늦잠으로 꿈속을 헤매고 있을 그들을 적당한 시간에 깨우기가 쉽지 않았다. 좀 더 자야하는데 깨웠다고 투덜대는건 애교로 봐주면 그만이다. 다른 선약이라도 있으면 또 어쩔수 없지만 그도저도 아닌일에 아이들을 뺏길까봐 틈새를 가늠하는 것이다.
할머니랑 밥먹자고 하는 말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그 날은 땡잡은 기분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도 가슴 시리게 살아가는 노년살이.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며 노는 것도 좋지만 손주들 만나 노는 때가 더더욱 행복하다.
어린애가 아닌 손자들이 할머니와 놀아주는 일은 거의가 없는 요즘 세상이다. 우리 애들도 그 사실을 모를리 없다. 그럼에도 거절하는 일없이 시간을 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우리들 조,손(祖孫)의 만남은 정말로 눈물?겹다. 덩치 큰 청년이 내 품으로 뛰어들어 안기며 미팅은 시작된다. 여동생을 제끼고 언제나 오빠가 먼저 그러는걸 보면 처음 본 손자여서 첫 정이 그에게 더 깊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아직도 옛날인줄 착각속에서 산다. 밥을 덜어 손자의 밥그릇 위에 얹어준다. 조금이라도 더 먹이려는 할미의 마음은 옛이나 지금이나 다를바가 없는 알량한 선심이다ㅎㅎ. 뜻을 아는 그들은 아무 내색도 하지않으니 다행스럽고 고맙다. 오빠가 할머니 만날때 최고로 밥을 많이 먹는 날이라고 손녀가 쫑알댄다. 무릎에 앉히고 밥 떠먹이던 일 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어른이 되었는지 감격과 감동을 동시에 느낀다.
내 기분을 너무도 잘 알아 맞춰주는 그들이다.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아가는 것도 내게 기꺼이 맡긴다. 몸은 비록 늙었지만 마음은 젊은이와 다를바없는 노인의 치기를 애교인양 잘 따라준다.
사실 분위기 어쩌구 하면서 찾아가는 커피집이 전부 제 엄마인 딸과 마주했던 곳이다. 그들은 내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자리에 앉자마자 핸드폰을 꺼내드는 손녀. 멀리있는 제 엄마를 불러내 영상통화를 하는 것이 의식처럼 되어있다. 하얀머리 주름진 얼굴을 손녀와 바짝 붙이고 영상속 여인과 낄낄거리며 수다를 떤다. 아이는 엄마에게, 나는 딸에게 . . . . 아침 스트레칭을 하다가 민낯으로 들켜버린 딸의 모습을 보며 울컥 무언가가 목구멍을 치밀었다. 내 눈에 확뜨인 딸자식의 목주름에 연민이 느껴졌다.
그도 이미 육십대, 적지않은 나이다. 늦었음에도 새로운 공부를 시작해 도전의 길을 택한 여인. 현세에 맞서 의미있는 삶을 찾아서 먼 길을 떠났다.
주부라는 일탈에서 벗어나 자기만을 위한 인생 후반을 살아보겠다는 당찬 의지였기에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이르다고 했던가. 내가 뒤늦게 원하던 일을 찾아서 여기까지 달려왔듯이 그에게도 격려와 응원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의 성취감과 쾌감을 이미 경험으로 느끼고 사는 이 엄마처럼 그도 그렇게 살아갈 것을 확신한다. 그가 날개를 달고 훌쩍 떠난 빈 자리가 내겐 허허로움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렇더라도 답답했던 가슴에 한가닥 시원한 바람이 일렁인다. 그의 불투명한 노후를 같이 고민했던 불안에서 해방 되었기 때문이다.
이만큼 살아보니 인생은 전반도 중요하지만 후반의 마무리야말로 일생의 모든 것. 진정한 흔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주름에 슬퍼지는 나이. 딸애의 도전에 화이팅을 보낸다.
마시기보다 폴폴 풍기는 향기에 먼저 취하게 되는 커피. 테이블 앞에 그들과 마주하면 끊임없는 내 수다가 이어진다. 그 누구보다 편하고 좋아서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오는 말들. 저들과 같은 레벨에서 그들 세대의 이야기도 들어주며 이해하니 허튼 수다만이 아니다. 각기 다른 세대가 오늘이란 동시대를 같이하면서 청년의 고민과 비전은 무엇인지?. 노인은 또 어찌 살아야 하는지 ?. . . 4차원의 비전으로 가고있는 그들 미래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인생이 얼만큼 젊어지고 있다는 착각도 하게된다. 순간이지만 그 충격이 너무 좋다.
자신들의 위치에서 어긋남없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 할머니와 손자의 삶은 지극히 평범하지만 평화롭다. 그렇기에 조.손을 떠나서 세대의 벽을 허물고 진정한 교감의 친구가 될수 있는 것이다.
격변의 어려운 시대를 겪어온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그들. 세상의 선배로서 전달할 메시지가 말 속에 숨어있다는 걸 그들은 잘 안다. 조용히 귀담아 들어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 . . 손녀는 눈을 반짝이며 응수도 곧잘 해 준다. 진솔한 그 모습에 신이나서 이야기 하다보면 갑자기 주책이었나? 민망할 때가 없지도 않다.
외로움 타는 노인의 밀린 입담이라고 참아주는 30대, 이젠 철이 다 들어 나보다도 더 어른같은 그들이다. 할머니의 건강관리 라고 마냥 너그러워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텐데 어쨌든 고맙다.
할머니 우리는 착한 애들이 맞죠? 그렇게 짓궂은 말로 재롱을 부리며 내 팔에 매달리는 손녀는 서른살의 아가씨가 아니다. 열살 미만의 어린소녀 바로 그 모습으로 귀엽기만 하다. 돌아다보면 장대처럼 든든한 청년이 나의 보호막이 되어 지켜주고 있는 손자.
카페에서 나오자마자 핫도그 사먹으러 가자고 아이처럼 보채는 할머니의 청도 군말없이 들어준다. 그 근처가 챈서리 란걸 알고 식당에서 밥숟갈 놓고 나오면서부터 읊어댔었다. 다른 때와 다른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표정도 재미있다.
추억만들기를 해야한다고 장난끼로 웃다가 문득 내가 나이 먹어가는 티를 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도 알아차렸을까? 눈치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집엔 언제나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우리 교민분이 하는 가계이니 줄을 선 가지각색 인종들이 그리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내 혈육이라도 되는 양 주인을 만나 등이라도 두드려주고 싶었다.
어른 셋이 벤치에 주저앉아 따끈하고 맛있는 핫도그를 먹으며 시시덕거렸다. 엄마 무릎에 앉아 있던 눈 큰 외국 아이가 우리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고있다.
나는 그 애들에게 특별히 무엇을 해 준 것도 없는 시시한 할머니다. 생일날 친구들 만나 멋지게 쓰라고 몇푼씩 쥐어준 것 말고는 제법한 선물하나 사 준적도 없다. 어릴때 한국 다녀오며 예쁜 옷가지들 사다 입힌 일 말고는 따로 그들을 위해 쓴 돈이 없는 것 같다. 성년이 되면서 부모 손 안 벌리고 지금껏 독립해서 잘 살아가는 애들이다.
처음 이민 왔을때 그들은 어린이였다. 조상의 뿌리가 있는 한국 조국을 잊지말라는 말을 귀가 아프도록 들려 주었었다.
그들의 새 보금자리를 보러 왔을때 아이 방 벽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떠나올 때 아이 가방에 말없이 찔러넣어준 바로 그 태극기였다. 비행기로 열한시간을 날아와 처음 대하는 태극기를 보면서 울컥했던 그 날의 감동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제 엄마는 한국의 정서를 알리려고 전원일기 같은 드라마를 틀어놓고 아이들을 보게 하고 있었다.
손자가 열일곱살 때였다. 고국을 배워오라고 청소년 국토종단 걷기행사에 참가하게 했다. 부모가 결정한터였지만 군말없이 따르고 실천했다.
제주도로부터 서울까지 2주간을 발이 부르트며 걷고 걸어서 해냈다. 힘이들어 고생은 했지만 보고 배운것도 많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조국의 땅을 밟고 누비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때 느꼈던 생각과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궁금하다. 다음에는 꼭 물어봐야지.
세 살에 떠나온 손녀도 열 세살때 일년간 고국 유학을 했다. 그들은 거침없는 한국통 들이었다. 남매가 인사동이 어떻고 하면서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이 여기 아이들이 아닌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한다. 아마 내가 바라는게 그런거 였을꺼다.
한가득 선물보따리를 싸 안고 오는 것 처럼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기쁨으로 가득하다.
낯선 고양이가 현관문 앞에 앉았다가 기겁을 해서 도망을 친다. 때를 맞추듯 마당에 장미꽃 한송이가 툭 떨어진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 . .
*** 교민 여러분들 한 해가 다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변함없이 사랑으로 보살펴주신 덕분에 이 해도 무사히 넘기고 있습니다. 내년 새 해에도 아낌없는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기쁜 성탄 맞으시길 바라면서 모든분들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