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개
3,090
23/09/2008. 17:38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218.♡.85.150)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만약, 만약에 말이다. 60억이 넘는 지구인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자. 지구가 떠돌이 행성과 박치기를 해 한 순간에 공중분해 되거나, 지진이나 쓰나미, 가뭄, 전염병,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간들이 야금야금 모두 죽어간다면---. 멸종되는 동안, 인간 종(種)은 얼마나 처참해질까. 살면서 보아왔던 온갖 끔찍한 상황의 열배, 백배? 아니다. 종(種)의 멸망은 상상조차 불허하는 참담함 그 자체다.
왜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분위기를 사뭇 불안하게 몰아가느냐고 질책하는 당신,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우리는 지구상에 사는 다른 생명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반성해야 할 시점이라는 점을 엄숙히 선언하고 싶었다. 오만한 인간들이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면서 씨를 말린 개체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그들은 인간처럼 아우성치지도 못하고 전 세계에 뉴스로 타전되지도 못하고 말없이 죽어갔다. 동물도 모성애, 부성애가 있다. 새끼를 잘 키우고도 싶었고, 새끼는 잘 자라 효도도 하고 또 새끼도 낳고---, 식물은 아름다운 꽃도 피우고 싶었을 것이다.
뉴질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키위새 뿐만 아니라, 섬 나라라는 특수성 때문에 독특한 생물의 전시장이었다. 인간들이 뉴질랜드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이들 생물들은 생존하기 위해 악착을 떨 필요도 없었고, 다른 생명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도 없었다. 생물들의 천국이었던 뉴질랜드를 지옥으로 만든 장본인은 바로 인간들이다. 물개, 바다사자 등을 남획해서 멸종 위기로 몰아갔고, Hector's Dolphin은 그물에 걸려서 익사해서 죽어갔다. 마오리들이 '지혜의 수호신'이라 부르는 작은 공룡 모양의 Tuatara도 인간이나 인간에 빌붙어 사는 쥐라든지 포섬 등이 유입되어 사지(死地)로 내몰렸다.
지난 9월 7일부터 14일은 뉴질랜드의 Conservation Week 였다.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들을 보호하고 개체수를 늘리는 일에 대한, 조용하지만 적극적인 캠페인 기간이었다. 나는 자연과 환경 보호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뉴질랜드 정부와 DOC(Department Of Conservation) 등 관계 기관의 적극적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의 노력으로 멸종 위기의 생물들이 하나, 둘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다니 살아 돌아온 지구촌 친구들을 얼싸안고 눈물이라도 흘려야 되지 않겠는가.
WETA! 멸종 위기에서 구해진 곤충이다. 물론 실물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Conservationweek.org.nz 에서 동영상을 보았다. 어린 시절, 친구처럼 놀았던 땅강아지 비슷했다. 혹은 귀뚜라미와도 닮았다. 무서워 하지도 않고 사람 손 위를 살살 기어 다니는 녀석의 친근함이 사랑스럽다. 까만 눈은 쥐눈이콩 같다. WETA는 고대시대의 곤충으로 수백만년 전이나 별로 변한 것이 없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내친 김에 구글에서 WETA를 더 찾아보았다. Tusked Weta는 코끼리 상아처럼 두 개의 긴 뿔이 아래턱에 솟아나 있다. 뭐 짝짓기 할 때 암놈을 차지하기 위해 휘두를 무기겠지만, 요모조모 살펴볼수록 신비하고 매력적인 모양새다. 왜 키위들이 웨타를 그리 사랑하는지 보면 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킹콩 등의 영화에서 특수 효과를 담당한 회사 이름은 '웨타 워크숍'이다. 엡섬 마누카우 로드에 있는 도서관은 지난 8월 개관 90주년 기념으로 큰 웨타 상을 벽면에 장식했다. 원래 이 도서관에는 1998년부터 웨타 상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2007년 1월 웨타를 너무도 사랑한(?) 누군가가 훔쳐 갔다. 새로운 웨타는 1.5미터 길이에 80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모습으로 청동으로 만들어졌다고.
뉴질랜드 자연 보호 정책은 설득력이 있고 과장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즐기도록 마련되어 있어 감동을 자아낸다. 송어가 살고 있는 강에서 가족들은 송어 낚시를 즐긴다. 만약 포퓰리즘 정책에 근거한 자연 보호 정책이라면 잡았다가 분명 다시 놔준다. 뉴질랜드에서는 송어를 잡은 후 손질하여 훈제통에 넣고 구워 먹는 것으로 소개된다. 무조건 방사하고 보호하라는 것은 먹이 사슬의 원리를 혼란시키고 또 다른 재앙을 낳을 터. 맛있게 구워진 송어를 먹으며 아이들은 즐기고 먹기 위한 '권리'에 앞서 잘 보호해야겠다는 '의무'를 느끼고 자원에 대한 중요성과 보호의 필요성을 피부로 체득한다.
오클랜드 동물원에 있는 NZCCM(NZ Centre for Conservation Medicine)의 시니어 수의사 Richard Jakob Hoff는 개구리 한 마리를 놓고 이보다 더 진지할 수 없다.
"보호종이 아니라도 우리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
이민자들은 자신들은 어차피 '외래종'이라고 뉴질랜드 '토종'에 대해 무관심하고 생소하게 느껴야만 할까? 나는 언젠가는 내 텃밭이나 정원에서 '웨타'를 발견하기를 떨리는 가슴으로 기대한다. 나는 예의 바르고 점잖게 웨타에게 목례를 하고 악수를 청할 것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http://www.koreatimes.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