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비치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Danielle Park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김수동
최성길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누드 비치

0 개 6,847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우리 동네 과일 가게에서, 적당히 잘 익은 키위를 고르느라 손으로 살짝 키위를 잡았다 놓았다 하던 무심한 순간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검은 천으로 온 몸을 감싸고 눈만 빼꼼히 내놓은 쾌걸 조로, 아니 저승사자 복장의 여인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그녀는 검은 바람처럼 휙휙 공간을 가르며 가게 안 이곳저곳에 출몰했다. 나는 발 없는 유령 같은 그녀의 동선이 그저 신기해서 넋 놓고 바라보았다.

뉴질랜드에서 무슬림 전통 복장을 입은 여인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쇼킹해서 한동안 그 모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도르'나 '히잡'이 스카프처럼 둘러쓰는 정도의 가리개라면 '부르카'는 얼굴마저 장막 속에 가둬 버린다. 눈 부분은 망사천으로. 염을 해 놓은 것처럼 온몸을 천으로 두르고 다니는 모습은 답답함과 불편함을 넘어선다. 그녀들은 자유와 인권이 억압된 검은 감옥을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몸에 둘러치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렇게 속박된 그녀들이 어떻게 머나 먼 이국땅 뉴질랜드까지 왔을까, 의문이었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복장을 천형처럼 입고 다니는 이들이 뉴질랜더라면, 틈만 나면 옷을 벗어 던지는 누드족 또한 뉴질랜더다.

나는 순전히 길을 잘못 들어 누드족과 만났다. 오클랜드 미션 베이 윗쪽 바윗가에서 심심풀이로 아들과 낚시를 하는데 젊은 두 남녀가 바로 지척에서 '남녀 상열지사'로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포르노그라피가 되기 전에 자리를 떠야할 것 같아 황급히 짐을 챙겨 다른 해변을 찾아 들어간 것이 그만 레이디스 마일 비치였다. 비치를 걸어 올라가는 동안 누드족들과 맞닥뜨릴까봐 지레 겁을 먹어서 나는 얼어 있었다. 그래서 돈 떨어진 것이 없나, 그런 폼으로 땅만 보고 걷는데, 내 뺨에 강한 텔레파시가 꽂히는 것이었다.

“날 좀 봐주세요, 제발! Oh Baby!”

물리칠 수 없는 염력이었다. 내 머리는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모래밭 덤불가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았다. 누드였다! 한 쪽 다리를 세우고 한쪽 다리는 털썩 모래밭에 내려놓은 자세였다. 그 남자는 자랑스럽게 거시기를 내보이며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고 있었다.

‘에그머니나!’

나는 진땀을 흘리며,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밭을 도망치 듯 빠져 나왔다. 옷 벗은 남자의 아쉬운 눈빛이 옷 입은 여자를 한동안 따라왔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석양 무렵이었고 옷 벗은 남자는 기우는 해처럼 늙어 가고 있는 초로의 남자였다. 외로운 남자, 고독한 해변이었다. 누드비치는, 싱싱하게 빛나는 나신(裸身)들이 작렬하는 태양 아래 마음껏 생명의 찬란함, 자연과 하나됨을 즐기는 축복의 장이 아니었던가. 나의 선입견은 사정없이 깨져 버렸다. 그 날 이후, 나의 누드 비치는, 석양의 누런 빛가루가 안개처럼 조금씩 내려 쌓이는 오래된 사진 같은 모습이었다.

퇴색해가는 사진처럼 누드비치는 점점 지구촌의 지도에서 사라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의 산오노프레 누드 비치는 9월 1일부터 수영복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어길 경우 벌금을 물어야 하고, 누드족들은 당국에 항의하고 있다. 스위스 레망 호숫가의 누드 비치도 경찰이 순찰을 돌면서까지 누드를 금지시키고 있다.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에 위치한 우제돔 비치는 독일의 누드족들과 폴란드의 반 누드족들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유명하다. 반 누드족들은 누드 비치에서 성추행이나 성범죄, 은밀한 섹스, 외설 행위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호주의 스완본 누드 비치 안내문은 아예 ‘변태 사절!’이란다.

‘The area is well policed and perverts are not welcome.’

누드비치의 본질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삶의 열망이다. 분쟁을 일으키고 경찰의 제재와 관리를 받아야 하는 누드비치는 또 다른 양상으로 인간을 속박시키는 역겨운 모양새다. 차라리 수영복, 비치가운 입고 자유롭게 바다를 만끽하는 것이 낫겠다.

세계 최고 길이, 장장 45km의 누드비치가 뉴질랜드에 생긴다고 한다. 웰링턴 북쪽의 Kapiti Coast가 바로 그 곳. 시속 45km로 자동차를 몰고 간다면, 한 시간 동안 달려야 하는 거리를 모두 누드족에게 내준단다. 누드족이 그렇게 많다는 것인가, 응큼한 관광객들을 불러 모아 돈을 벌겠다는 것인가. 무엇을 위한 누드이고, 자유인가.

11월 8일, 뉴질랜드 총선을 앞두고 있다. 뉴질랜드가 벗어 던져야 할 것은 옷이 아니다. 부르카족과 누드족처럼 사회의 이질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화합하고 상호 보완해서 상생의 정치를 펼칠 것인가. 그러기 위해선 무엇을 벗어 던져야 할까, 고민해야 할 때다.

ⓒ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http://www.koreatimes.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

댓글 2 | 조회 3,078 | 2009.04.16
예상대로 뉴질랜드 이민 문호가 다시 열릴 것이라고 한다. 별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실업률은 증가하고, 기댈 곳이라고는 돈 싸 짊어지고 들… 더보기

도대체 누가?

댓글 0 | 조회 2,852 | 2009.03.24
그리스의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여자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외롭게 지내던 중, 대리석으로 자신의 여인을 조각한다. 그는 그 조각상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 더보기

시간이 없다!

댓글 0 | 조회 2,497 | 2009.03.10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자신이 꾸었던 꿈을 소재로 '꿈(こんな 夢を 見た)'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8편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진 '꿈'은 저마다 인상… 더보기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울고 지내고저

댓글 1 | 조회 2,673 | 2009.02.25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밤에 나는 깨닫는다. 나는 참 바보구나, 그리고 참 나쁜 사람이구나!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많은 사람들 가슴에 … 더보기

Runner's High

댓글 1 | 조회 2,621 | 2009.02.10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겨울날에는 먹을 것이 귀하기 마련이다. 과일도 야채도 해산물도---. 그래서 동물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잔뜩 먹고 새로운 먹거리가 돋아나는 … 더보기

女幸 프로젝트

댓글 0 | 조회 2,688 | 2009.01.28
세상 참 많이 좋아졌구나! 한국에 와 있는 두어 달 동안 나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편리함, 섬세한, 친절함이 사회 구석구석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었… 더보기

끽다거 그리고 점다래

댓글 0 | 조회 2,803 | 2009.01.13
내가 지리산 자락 화개(花開)에 머무른 것은 잘한 일이었다. 화개 버스 정류소에 가면 구례, 하동, 부산, 남해, 서울 가는 버스들이 시간 맞춰 들어온다. 나는 … 더보기

산골짜기 불빛

댓글 0 | 조회 2,476 | 2008.12.23
나는 지리산 골짜기로 토꼈습니다. 비속어를 사용해 죄송하지만 가끔은 비속어 한 마디에 내 영혼이 카페인이라도 들이킨 듯 반짝 빛납니다. 내 방 앞을 흐르는 강물은… 더보기

길 위에서 만나다

댓글 0 | 조회 2,432 | 2008.12.10
잘 살고 있어? 헤어진 옛 애인이 전화를 걸어와 괜스레 안부를 물으면 여자는 '그저 그래' 라고 대답하는 샹송이 있다. 슬픔이 촉촉히 베어 있는 음성으로 노래와 … 더보기

측은지심이 으뜸

댓글 0 | 조회 2,499 | 2008.11.25
나의 친정 엄마는 '불쌍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교통 사고로 아들을 앞세워 보낸 외삼촌도 불쌍해 죽겠고, 천식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데 개미새끼 한 마… 더보기

그 여자의 식탁

댓글 2 | 조회 2,906 | 2008.11.11
여행의 백미는 그 지역의 별미 음식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행의 추억이 혀에 남아 있다가 주체할 수 없는 감흥으로 가끔 되살아 난다. 북경 천안문 광장 앞… 더보기

희망의 이유

댓글 0 | 조회 2,816 | 2008.10.30
침팬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제인 구달(Jane Goodall)박사가 지난 18일 웰링턴 동물원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17일, TV3의 앵커맨 Campbe… 더보기

현재 누드 비치

댓글 0 | 조회 6,848 | 2008.10.15
우리 동네 과일 가게에서, 적당히 잘 익은 키위를 고르느라 손으로 살짝 키위를 잡았다 놓았다 하던 무심한 순간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랐다. … 더보기

WETA를 아십니까?

댓글 0 | 조회 3,090 | 2008.09.23
만약, 만약에 말이다. 60억이 넘는 지구인이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고 가정해 보자. 지구가 떠돌이 행성과 박치기를 해 한 순간에 공중분해 되거나, 지진이… 더보기

어깨 힘 좀 빼시죠 ? - 베이징 올림픽 유감

댓글 0 | 조회 2,761 | 2008.09.10
베이징 올림픽 기간 내내 행복하셨는지? 자유, 평등, 선의의 경쟁이 만들어 내는 명승부와 진기록, 숨겨진 이야기들에 박수 치며 감동하고 눈물 흘렸는지? 나는 불편… 더보기

얼어죽을 놈의 낭만!? - 2. 소라, 동백, 고구마

댓글 0 | 조회 3,872 | 2008.08.27
가스 히터가 피식피식 푸헬헬 소리를 내다가 꺼져 버렸다. 하필 억수로 비가 쏟아지고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밤이었다.가난한 잡가(작가 아님)는 손, 발, 코가 시려… 더보기

얼어죽을 놈의 낭만!? - 1. 겨울비

댓글 0 | 조회 2,986 | 2008.08.13
하늘에 해가 있기나 한 것인가. 이번 겨울은 참으로 수상하다. 비가 두어 달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내린다. 주택가 곳곳이 침수되어 대피 소동을 벌이고 폭풍우에 쓰… 더보기

[385] 제로 톨레랑스(Zero Tolerance) - Ⅱ

댓글 0 | 조회 2,324 | 2008.07.22
어떤 여자가 먹을 것을 훔치다가 걸렸다. 경찰이 여자 차의 트렁크를 열었다. 바나나, 빵, 야채 등이 박스 가득 담겨 있었다. 돈으로 따지면 3, 40불어치나 될… 더보기

[384] 제로 톨레랑스(Zero Tolerance) - Ⅰ

댓글 0 | 조회 2,820 | 2008.07.08
범죄란 '사회의 질병'이다. 질병은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만약, 어쩔 수 없이 병이 발생했다면 주저없이 완치시키고, 아예 질병이 얼씬 못하도록 체질과 환경을 … 더보기

[383]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Ⅳ)

댓글 1 | 조회 2,364 | 2008.06.23
2년 전, 오클랜드 사이먼 스트리트의 한 건물에 큰 입간판이 걸렸다. 벌거벗은 여자가 무릎과 팔을 이용 네 다리로 서 있고 유방에는 유착기가 부착되어 있었다. 여… 더보기

[382]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Ⅲ)

댓글 0 | 조회 2,436 | 2008.06.10
세계 제3차 대전은 식량 전쟁이다. 대한민국은 그 전쟁 중에 이미 핵폭탄을 두어 방 맞았다. 미국산 쇠고기로 한방 맞고, 5월 1일, 미국산 유전자 변형(GM)옥… 더보기

[381]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Ⅱ)

댓글 0 | 조회 2,705 | 2008.05.27
미식 축구 선수였던O.J.Simson은 94년, 전처와 그녀의 동거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지문, 혈흔, DNA, 발자국, 모발 등 CSI 수사의 모… 더보기

[380] 행복한 밥상을 위한 투쟁 (Ⅰ)

댓글 1 | 조회 2,227 | 2008.05.13
내 아들의 유아 시절, 입이 짧아 2Kg 정도 체중 미달이었다. 나는 아들과 무던히도 머리싸움을 했다. 사과, 귤 주스를 만들어 우유병에 넣고 빨게 하다가 슬쩍 … 더보기

[379] 샴 트윈(Siamese Twin)의 비극

댓글 0 | 조회 2,616 | 2008.04.22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한 20년쯤이나 되었을까, 나는 신문을 읽다가 쇠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충격에 빠졌다. 1811년, 당시 태국의 이름은 '샴(sia… 더보기

[378] 타마릴로가 익는 계절

댓글 0 | 조회 2,892 | 2008.08.13
수년 전 집을 사기 위해 발품을 팔고 다닐 때였다. Open home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어느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당 한쪽에 붉은 열매를 조랑조랑 매달고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