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팬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제인 구달(Jane Goodall)박사가 지난 18일 웰링턴 동물원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17일, TV3의 앵커맨 Campbell이 그녀를 인터뷰 했다.
“50여년 간 침팬지를 연구했는데, 아직도 설레고 흥분되는 감정이 남아 있느냐?”
“야생 침팬지 관찰을 시작한지 18개월만에 어미 침팬지가 새끼를 데리고 내게 왔다. 아기 침팬지가 내 코에 손가락을 갖다 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TV 화면에서 사랑스러운 아기 침팬지가 길고 가는 손가락을 뻗어 제인 구달의 코를 만지는 순간 나는 '아' 탄성을 자아냈다. 오똑한 코가 아기 침팬지의 호기심을 자극했을까? 침팬지와 인간이 최초로 교감하는 순간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ET 손가락이 인간의 손가락과 조우하는 장면의 감동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제인 구달은 1934년 영국에서 출생, 1960년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으로 들어가서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그녀의 연구 방식은 사육하고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관찰하는 것이었다. 긴 나뭇가지나 식물의 줄기를 개미굴에 넣어 거기에 붙어 나오는 개미를 맛있게 즐기는, '필요에 따라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침팬지'의 유명한 모습도 제인 구달의 업적이다. 50여년 간 침팬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얻어낸 것은 기쁨, 슬픔, 지적 능력, 합리적 사고, 문제 해결 능력, 육체적 심리적 고통은 '인간만의 유일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 그녀는 동물이 잘 살 수 있는 자연 환경이 곧 인간도 행복하게 만든다고 강조하며, 1991년부터 환경, 생명 사랑 운동 Roots&Shoots 캠페인을 병행하고 있다. 인간의 '선한 영혼'이 '뿌리'를 단단히 내리면 튼실한 '새싹'이 올라와 어떤 역경도 무너뜨릴 수 있다, 선한 영혼이 실천하고 노력한다면 악마성으로 파괴된 지구를 생명 가득한 공간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
침팬지의 어머니였던 그녀가 우리들의 영혼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며 전 세계인의 어머니로, 평화와 사랑의 메신저로 다가오는 이유는 다름 아닌 '희망'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서전 '희망의 이유(Reason for Hope)'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사악하고 탐욕스럽고 잔인하고 오만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숭고한 정신이 있다. 게다가 지적 능력도 뛰어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의지,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있다.”
뉴질랜드 총선을 코앞에 앞둔 시점에서 나는 제인 구달의 메시지를 곱씹어 본다. 2% 대의 창피한 투표율을 만회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세 해 보겠다고 한인사회는 분주하다. 호주의 전례에서도 드러났듯이 아시안들이 캐스팅보트(casting vote)로서의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눈치 챈 정당 관계자들도 한인사회에 눈맞춤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모처럼의 관심이 황송스럽기 그지없다. 머리에 기계충, 얼굴엔 버짐이 쓸고, 콧물이 질질 흐르는 고아원 아이들이 크리스마스 때 잠깐 누려보는 호사스러운 분위기라고나 할까. 그러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일에 익숙치 못한 이들에게 사랑이 찾아올 때 얼마나 무모해지는지, 나아가 교만해지기까지 한다. 현재 3선의 헬렌 클락이 이끌고 있는 정부가 매너리즘에 빠져 있고 이민 문호도 닫아 걸고, 범죄율도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다고 해서 비관적인가? 하지만 지지율에서 선두를 앞서가고 있는 국민당의 존키가 그 모든 것을 뒤엎고 유토피아를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는 좀 성급하다. 3년마다 여당은 야당이 될 수 있고, 야당은 여당이 될 수 있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의 마음을 족집게 무당처럼 집어내는 정치인들의 권모술수도 경계해야 한다. 13일에는 헬렌 클락이 오타고 대학에서 부모 수입에 대한 증빙 자료 없이 18세 이상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겠다고 해서 박수 갈채를 받았다. 국민당(National Party)도 세금 감면 혜택을 내세우고 있다. 선거를 일 년에 한 번씩 했으면 좋겠다. 더도 덜도 말고 '선거철'만 같으면 살맛 나겠다. 가만 있어도 찾아와서 사람 대접 국민 대접 해주고 세금도 팍팍 깎아 주고 수당도 두둑하게 준다니--- (선거철에 사람들은 바보가 되는 듯 하다. 그 돈이 다 어디서 나올까?) 그러나 제인 구달의 말처럼 '삶이란 돈 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다. 그녀의 말처럼 나는 그것을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거시적인 희망!
“현명한 옛 선조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미래 세대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를 먼저 생각했지요. 현대인들은 우리 눈 앞의 이익만을 생각합니다.”
나비의 날갯짓이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내듯, 한 사람 한 사람의 '희망'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기표소에 가면서 그 때서야 누굴 찍을까 고민하는 일은 그만두자. 지금부터 '선한 영혼'의 눈으로 '희망'을 찾아내 소중히 도장 찍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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