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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2008. 17:28 뉴질랜드 코리아타임스 (124.♡.145.221)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나의 친정 엄마는 '불쌍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교통 사고로 아들을 앞세워 보낸 외삼촌도 불쌍해 죽겠고, 천식으로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데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옆집 할머니도 너무 불쌍하단다. 그 할머니 입맛 돌게 할만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이것저것 챙겨서 할머니 집에 드나든다.
어렸을 때, 동냥아치들이 동전푼이나 얻어 가려고 내 집에 오면 그들을 불러들여 마루에 앉혀 놓고 밥에 국에 반찬을 소반에 내와 배불리 먹였다. 나는 더러운 거지들이 먹던 밥 숟가락에 세균이 드글드글 할 것 같아서 웩 구토증이 일었다. 보따리 장사들이 물건을 팔러 오면 또 앉혀 놓고 밥을 먹였다. 고추장, 된장, 김치도 다 퍼 줬다. 심지어 해산 후에 먹이려고 할머니가 농사지은 햅쌀을 찧어 항아리에 숨겨 놨었는데 몽땅 퍼서 조카들 도시락 싸 주었단다. 할머니는 두고두고 속상해 하셨다.
어느 날, FOODTOWN 입구에서 기타를 치며 동냥하는 아저씨가 내가 좋아하는 BROTHERS FOUR의 곡을 연주하길래 반가운 마음에 모자 안에 2달러를 넣어 주었다. 그 다음에도 자주 그런 사람들을 만났는데, 나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아까워했다.
'지난 번에도 줬는데---'
10월 5일, 버락 오바마가 시카고 그랜드 파크에서 당선 수락 연설을 할 때 수십 만 군중들은 눈물을 흘렸다.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이들의 한풀이 눈물이었다. 전 세계인의 90% 이상이 오바마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가 희망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변화'될 수 있다는 '희망' !!! 오바마는 500억 달러를 투입, 불쌍한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살리는 일에 주력하겠단다.
취임 후 16개월 안에 이라크에서 철군할 것이라는 공약도 눈물나게 한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죽어 갔는데 부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쁜ㅈㅅ오바마가 '전쟁광' '세계의 깡패'라는, 실추된 미국의 명예를 되찾고 인류의 비전을 살려 낼 수 있을까? 부시 행정부의 사상 최대의 재정 적자 4550억 달러를 등에 지고 허리도 펴지 못한 채 문을 연 오바마 정부는 시작부터 회의적. 하지만 오바마의 측은지심은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되리라 의심치 않는다.
"진정한 미국의 정신은 부와 돈이 아니라 기회와 민주주의, 우리들의 땀"
기회의 평등과 형평성, 분열되지 않고 통합된 사회, 부의 분배를 통한 저소득층과 중산층 살리기를 선포한 당선 수락연설은 측은지심 정책의 꽃.
호주 케빈 러드 총리는 지난해 말 당선 된 이래 지지율이 70%선을 거의 유지하고 있어 '미스터 70%'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 그의 리더쉽과 지도력은 전 세계의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다. 그가 총리에 당선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에 대한 사과다. 호주 정부는 1900년부터 60년간 애보리진 자녀들을 부모로부터 분리시켰다. 현대식 교육과 예절을 가르친다는 명분하에 천륜을 잘라낸 백인들은 수만 명의 애보리진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애보리진의 Stolen Generation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 그가 인간으로서 못할 짓을 한 점에 대해 부끄러워하며 가슴 아파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12년 동안 장기 집권했던 존 하워드 총리가 기업들에 불리하다며 서명을 거부한 '교토 환경 의정서'에 케빈 러드는 주저없이 서명 해 버렸다. 이라크 파병 호주군 철수 결정, 기업 위주의 노사 관계법폐지, 중산층 서민 위주로 세제를 개편한 일도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정책. 10월에는 미국발 금융 위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소득 가구, 퇴직 연금 생활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104억 호주 달러를 풀면서 지지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11월 8일 선거에서 뉴질랜드 총리로 당선된 국민당의 존 키가 내세운 공약은 스케일과 깊이 면에서 아주 소박하다.소득세 감면, 광역 인터넷, 교통 등 기반 시설 확충, 폭력 전과자 가석방 폐지, 교육제도 개선, 보건 의료인력 부족 해결과 각종 보조금 수당 문제들을 거론하고 있다. 선거 전 헬렌 클락이 프라이머리 학생에게서 받았던 질문이 떠오른다.
"뉴질랜드는 언제 현대화가 되나요?"
'현대화'라는 단어를 그 학생이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생각해 보자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다는 답답함을 토로한 것 아닐까. 국민당이나 노동당의 공약이 뉴질랜드 내에서 맴맴 돌고 있다. 뉴질랜드는 그야말로 세계 정세와 아무 관련 없는 '섬'일 뿐인가? 물설고 낯선 이국만리 땅에 와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이민자들에 대한 '측은지심'은 조금도 없는가, 정책에 언급조차 없다.
공자는 인간이 가진 양심 중에 '측은지심'이 으뜸이라고 했다. 맹자는 '남에게 모질지 않게 정치 한다면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손 안에 작은 물건을 움직이는 것처럼 쉽다'고 했다.
만약, 측은지심이 손톱 만큼도 없고 위대한 지도력과 강한 통치력만 가진 이가 있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차라리 우리 엄마가 정치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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