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개
3,078
16/04/2009. 09:58 코리아포스트 (122.♡.147.230)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예상대로 뉴질랜드 이민 문호가 다시 열릴 것이라고 한다. 별 뾰족한 수가 없지 않은가.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실업률은 증가하고, 기댈 곳이라고는 돈 싸 짊어지고 들어오는 이민자들 밖에 없으니, 어쩜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사실, 법안으로 봐서는 이민 문호는 여태까지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심정적으론 빈틈 하나 없이 닫힌 문이었다. 열려 있지만 닫혀 있는 이상한 문 앞에서 아시안(비영어권)들은 '열려라 콩, 열려라 보리, 열려라 옥수수'를 외쳐 댔다(신밧드의 '열려라 참깨' 주문이 유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봤다).
3월 16일, 조나단 콜만 이민성 장관이 이민 문호를 좀 더 개방할 것이라고 발표하기 전부터 교민 사회는 성급히 샴페인 병을 흔들어 댔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도 모르지 않는가. 투자 사업 이민은 완화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자국민의 일자리 보호 차원에서 기술 이민과 워크 비자 등은 제한 될 것으로 짐작될 뿐.
지난 해 말, 뉴 플리머스 소재 'MCK Metals Pacific' 에서는 현지인 직원 28명을 해고했다. 그러나 워크 비자 소유자 9명은 특수 기술직으로 (aluminum welding and polishing)계속 일하게 되었다. 해고 당한 이들은 항의했고 조나단 콜만 이민성 장관은 진상 조사에 나섰다. 지난 2일자 NZ Herald 기사에서는 'MCK에서 6명의 워크 비자 노동자들이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로 보도 되었다. 현지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워크 비자의 직업군을 줄여 버린 것이다.
투자, 사업 이민법을 완화시켜 천문학적인 돈이 뉴질랜드에 흘러 들어오면 경기가 '반짝' 살아날지 모른다. 그러나 감기에 잘 걸리는 아이에게 진통 해열제는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체질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1999년 시작되었던 뉴질랜드 장기사업비자(이하 장사비자)가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 어느 정도 돈이 들어오고 경기가 살아나자 2002년 11월 하루 아침에 장사비자의 자격을 강화시켰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실로 여러 문제점을 내세웠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장사비자를 받고 아이들 학교 교육만 공짜로 시키고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다고 해도 법이라는 것이 입법 예고도 하고 발효, 시행되는 절차가 필요한데 자고나니 법이 바뀌었다.
그날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했다. 구법에 맞춰 서류를 준비한 이들은 신법에 맞춰 서류를 다시 해야 했고, IELTS 5.0도 통과해야 했다. 한 국가의 법 운용이 이렇게 제멋대로일 수 있는지, 이민자들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이 칼자루 쥔 자신들의 손에 있다는 자만(自慢)은 유치했다. 그 당시 일이 꼬인 나의 지인들은 적어도 수년 간 고생을 했고, 많은 이들이 뉴질랜드를 떠나기도 했다. 뉴질랜드 정부는 진정 몰랐을까? 알면서도 덤태기를 새내기 이민자들에게 모두 덮어 씌웠던 것일까? 장사비자를 받고 수 개월간 비즈니스를 알아보고 다녔던 이들의 항변을 들어보기라도 했는지?
"장사 좀 된다하는 데는 월세가 7,8천 불인데, 김밥 몇 개 팔아야 세를 낼 수 있을까, 계산해보니---(머리만 절래절래)"
첫째, 상권이 너무 한정되어 있고, 사업 환경이 나쁘다. 비싼 권리금, 비싼 렌트비를 피해 변두리로 가자니 파리 날릴 것 뻔하고---. 장사비자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올 때 천정부지의 권리금을 주고 사업체를 인수했던 이들 중에는 수년 후 쪽박차고 월세를 못내 주인이 셔터를 내려 버리고, 심지어 야반도주하는 사례도 생겼다. 만약 장사비자를 받은 이들이 모두 사업체를 인수하거나 창업하려 했다면 그야말로 더욱 치열한 약육강식, 아귀다툼이 됐을 것이다. 지방 이주자들에게 특혜를 준다는 이민법이 잠깐 논의되기도 했으나 유야무야 되어 버리고 위성 도시나 지방 상권이 활성화되지 못한 상태에서 정부의 해법은 무엇이었나?
둘째, 법이 인간을 위해 존재 하는 것이지, 인간이 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법이든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활용 내지는 응용(악용 아님)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뉴질랜드 정부가 틈새를 예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순전히 자신들의 실책이다.
지금까지 뉴질랜드는 '제로 섬 게임(zero sum game)'에 올인 해 왔다. 이민자들이 들고 들어오는 돈은 누군가에게는 이익으로 돌아갔지만, 그 이익 만큼 손해를 본 이들이 양산되었다. 결국 시장에 유통되는 총 재화(財貨)는 ZERO가 되어 버린 것. 자본이 확대 재생산되고 실물 경제가 살아나 너와 내가 모두 잘 살려면 윈-윈(win-win)전략을 기본 모럴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경제 논리의 기본 중 기본 아니던가. 뉴질랜드 정부나 기득권 세력이 새내기 이민자들의 돈만 탐내면서 더티 게임을 한다면 그 돈은 절대로 우리 삶의 풍요로움에 기여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 하는 게임은 전혀 행복하지가 않다.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