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과 Sushi
7 개
4,634
12/05/2009. 17:22
코리아포스트 (125.♡.244.199)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9년 전, 시내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 다운타운 쇼핑 센터는 나의 산책 코스였다. 쇼핑센터 일층 뒤쪽에는 스시 집이 있었는데, 그 앞을 지날 때면 항상 해물과 생선, 야채들의 풍미가 어우러진 시금털털한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십 수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잰 손놀림으로 만들어 내는 다양한 스시는 만들기 무섭게 팔려 나갔고, 때문에 그 집 스시는 밥알이 항상 촉촉했다.
그 스시집은 큰 쇼핑센터마다 어김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곳 하나 뒤처짐없이, 날개 돋친 듯 스시가 팔렸다. 이쯤되면 배가 살살 아프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넣고 비벼서 단무지와 시금치, 계란 등을 넣고 만든 고소한 한국식 김밥이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열등감에 삐뚤어져서 스시는 한 팩 사면서 간장은 두어개나 달래서 스시를 간장에 푹 담갔다 먹는 키위들을 비웃기도 한다.
“도대체 음식을 간장 맛으로 먹는 거야?”
그러던 내가 엊그저께 westfield shopping center에 갔다 가 어김없이 북적이는 그 스시집 앞에서 침을 꼴깍 삼켰다. 나는 많은 사람들 사이를 뚫고 간신히 스시 한 팩을 골랐다. 그리고 집에 와서 좋아라하며 스시팩을 열고 간장에 와사비를 듬뿍 풀어 스시를 푹 담갔다(ㅠㅠ). 아아, 부드러운 연어와 아보카도, 촉촉한 밥알이 살살 녹았다. 얇게 저민 생강을 살풋 베어물자 입안이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불황이 없는 스시집의 노하우는 무엇일까? 스시는 되는데 김밥은 왜 안되는가? 낫또는 건강식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청국장은 왜 인기가 없는가? 냄새 때문에? 냄새 없앤 청국장을 나는 청국장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음식의 맛은 모름지기 눈, 코, 입, 귀 등등에서 함께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냄새 조차도 한식의 풍미이며 우수함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세계는 지금 음식과의 전쟁을 한판 치르고 있다. 프랑스, 중국, 이탈리아를 위시해서 일본, 태국 등이 자국의 음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밥그릇 싸움이 치열한 것은 전 세계 식료품 시장 규모가 자동차 산업의 2.5배인 4조 4000억불이나 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해,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약 4천만 달러를 투자해서 2017년까지 한국 식당수를 전세계에 4만 개로 늘린다고 발표했다. 5월 4일에는 '한식 세계화 추진단'이 공식 출범하면서 한식 이미지 업그레이드, 요리 명장 양성 등의 구체적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한식당 수가 부족해서 세계인들이 한식을 즐기지 못하는가. 오클랜드만 해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150여 개가 넘는다(물론 일식, 중식, 퓨전 스타일 등 모두 포함해서지만). 사람들의 입맛은 간사하지만 우직하기도 해서 식당수나 요리사를 늘리는 단순한 노력은 별 의미가 없다. 스테이크를 즐겨 먹던 사람이 갑자기 비빔밥을 좋아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한국의 정신이 먼저 세계인의 눈과 귀와 혼을 사로잡아야 한다. 음식 전쟁은 치밀한 전략과 물밑 작업이 필요한 고도의 머리 싸움이다. 즉, 한국의 문화가 알려지고 이해되어야 비로소 한국 음식에 젓가락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21세기의 신조어로 컬처노믹스(culture+economics)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과거에는 노동과 생산을 통해 부가 창출되었지만, 21세기의 산업은 문화와 융합되지 않고서는 부를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가 한류 열풍을 만들어 내면서 그 드라마 속 음식이나 상품들에 대해 소비자들의 관심이 생기게 되고 그것은 구매와 연결이 된다는 것.그런데 뉴질랜드는 한류는 커녕 KOREA가 어디 붙어 있는 지 조차 모르는 무지함과 무관심 속에 있다. 모르는 데 어떻게 먹을 수 있겠는가? 뉴질랜드에서 한식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 문화에 무지한 분위기와 국가 이미지를 매번 똥칠하는 한국 정치의 책임이 크다. 머리 쥐어뜯고 몸싸움 하고 힘센 놈이 밀어붙이면 다 되는 집에서 맛있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놓았단다.
“와서 드셔 보세요.”
상냥한 웃음과 산해진미로 유혹해보지만, 뒤가 구리고 불합리가 범벅이 된 음식은 외면 당한다. 국가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는 정결한 문화가 없이는 21세기의 사업이 잘 될 리가 없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조셉 나이의 소프트 파워 이론은 음식 장사를 하는 데도 꼭 필요한 요소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문화, 국내외에서 보여 준 정치적 가치,적법하고 도덕적 권위를 지닌 외교 정책 등.>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브로드웨이의 난타 공연장에서 비빔밥이 함께 어우러질지도 모른다고 한다. 뉴질랜드 이민 1세대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모든 일에는 초석과 선구자적인 각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한국 음식을 먹이려는 일보다는 한국 문화의 베이스를 마련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뉴질랜드에서도 크고 작은 한인 행사가 많은데, 그때 한식 파티를 해야 한다. 행사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열어 한국 문화의 바탕 다지기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한국 문화에 흠뻑 매료된 이들에게 제대로 된 한식 요리를 대접하고 그들의 입소문으로 이 행사는 점차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게 되고---. 거기에 한식은 청결하다, 좋은 식재료를 사용한다, 메뉴가 표준화되어 있다, 결코 조악하지 않고 품격 있다, 한식당 운영자들은 양심과 질서에 위배되지 않는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고 있다,라는 인식이 더해진다면 자연히 한식이 당기게 되고, 한식=대박의 등식이 성립되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 본다.
ⓒ 뉴질랜드 코리아포스트(http://www.koreapost.co.nz),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