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주 사이에 뉴질랜드 교민사회가 사건과 사고로 술렁거렸다. 현지 교민사회 내 한 가정의 불화가 급기야 인명을 앗아가는 사태에 이르렀고 또 한편으로는 뉴질랜드를 찾은 동포 관광객들이 신체불구가 되는 끔찍한 사고가 곧 그 뒤를 이었다. 둘 다 끔찍하고 안타까운 사건, 사고 들이며 이 자리를 빌어 고인의 명복을 빌며 졸지에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분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불행을 잘 극복해 나아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최근의 이런 일련의 사태들 속에 왜 이렇게 우울한 자화상을 우리 뉴질랜드 교민들이 접해야 하는지 생각하면서 필자의 두서 없는 생각들을 적어본다.
<안 좋은 뉴스는 코리안? >
구체적인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아 필자의 과민반응일 수 있겠지만 기억으로는 한국교민이 관련된 사고, 사건이 났을 때 뉴질랜드의 언론은 가해자를 표현할 때 많은 경우 코리언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목격한다. 이번 관광차량 전복사고에서도 운전자를 코리언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이 필자 소견이다.
관광객들이야 일시 체류자이니까 당연히 출신국가를 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으나 운전자의 경우 이 곳 영주권을 받고 산다고 했을 때 코리언이 아니라 당연히 사는 지역, 가령 Auckland man으로 표현이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며 대부분의 경우 뉴질랜드 언론에서는 이렇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 대신 유독 운전자의 이민 오기 전 출신 국가명을 거론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England에서 이민 온 자가 위와 같은 사고를 냈다면 English driver라고 표현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반면 우리 한국인 이민자 혹은 1.5, 2세대가 대외적으로 뉴질랜드 국위를 선양할 만한 행위를 할 경우(가령 골프 우승) 이는 여지없이 오클랜드 사는 홍길동이라고 신문에 쓰지 Korean 홍길동이라고 타이틀을 뽑지는 않는 것 같다. 단순 도식화하자면 좋은 일을 한 사람은 뉴질랜더이고 좋지 않은 일을 한 사람은 코리안으로 분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이전에는 중국이민자들의 경우도 이처럼 Chinese로 표현했는데 요새는 Asian으로 뭉뚱그려 표현하는 것 같다. 아마 13억 인구의 중국시장과의 FTA 협상 때문에라도 이런 태도변화가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모국인 한국의 경우도 가격 측면에서는 중국에게 기술면에서는 일본에게 위협받는 샌드위치 형국을 맞이한 것 같아 착잡한데 비슷한 영향력 차이가 뉴질랜드 교민사회에서도 나타나는 것같아 씁쓰레하다.
<교민사회, 풀 뿌리 단체가 필요하다>
이런 일을 접하다 보면 우리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입장을 대변해 줄 단체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 미성년자에게 신분증 제시도 요구하지 않고 담배를 판 교민업소 및 주변 한인업체가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어 법규를 준수하지 않은 채 돈 벌기에 급급한 한국인처럼 비추어질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어쩔 수 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방송국에 항변을 할 명분이 마땅치 않기에 해당 업소를 대신해서 입장을 대변해 줄 존재를 찾지는 않겠지만 이를 쳐다보는 우리 교민들이 부끄럽게 생각한다면 역으로 이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 교민 자체 내에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반대의 경우도 선도집단의 부재로 인해 실천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우리의 모습이 현지 사회에 잘못 비추어지는 경우가 있다면 이의 시정을 위해 노력을 해 줄 단체가, 이와 반대로 현지 사회의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교민들이 있다면 이의 자정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 줄 단체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현재 교민단체에 속해있는 입장이지만 이는 반드시 지향해야 할 교민단체의 기능이라고 믿는다.
중국친구와 종종 중국교민사회와 한국교민사회에 대해 같이 의견을 나눌 기회를 가진다. 그 친구의 말로는 현재 중국 교민(중국, 대만, 홍콩 포함)들의 경우 교민 단체가 30개가 넘는다고 한다. 이런 숫자는 최근 중국이 비약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갑자기 늘어난 것이라고 하는데 그 배경에는 여기 사는 중국교민이 본토의 경제성장에 편승하여 본토에 들어가 비즈니스를 하려고 할 때 갖고 갈 명함이 필요해 급조한 단체가 가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이들 단체는 크건 작건 간에 각기 자기 역할 (그것이 친목이든 경제적 이익이든)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반면 한국교민의 경우 각 지역에 한인회라는 명칭으로는 하나씩 밖에 존재치 않아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통일 된 하나의 조직이 있는 것처럼 대외적으로 보이는 것은 좋으나 과연 내부적으로도 그런 실속이 있는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밑에서부터 자생적으로 생기는 단체들이 가능한 많이 생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그런 단체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나의 연합단체를 구성할 때 마치 무지개가 각각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지만 같이 있음으로 인해 하나의 아름다운 통일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이런 단체(연합)는 그 저변의 탄탄함으로 인해 힘을 갖춘 단체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필자의 생각이다.
<더 늦기 전에>
개인적으로 지인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우리 교민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문제는 고양이 목의 방울을 누가 달 것이냐라는 물음에서 더 진척을 못 시키는 경우인데 자녀를 이 곳에서 학교 보내는 부모님들은 잘 아실 것이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행사 중 상당수가 학부형들의 자원봉사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만히 보면 봉사도 습관이 것 같다. 필자도 바쁘다 바쁘다 하면서 아이들 학교 봉사를 거의 하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참여하다 보니 그리 바쁘지도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교민 사회에 이미 여러 단체가 존재하고 있다. 특히 종교단체의 경우 규모와 결속력 측면에서 상당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 비종교인인 필자의 시각에서는 교민 종교단체의 활동 중 대부분이 같은 신도집단 내에서 이루어지지 교민일반이라는 개념을 그 활동 안에 가지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화려한 잎을 피워내기 위해서는 습하고 어두운 땅속에서 물과 영양분을 위로 올려주는 뿌리의 힘든 역할을 더 늦기 전에 우리 교민사회가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행히 우리 뉴질랜드 교민사회는 다른 어느 나라 교민들보다 수준이 높은 교민들로 구성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교민역사가 일천하다는 것을 오히려 장점으로 삼아 풀뿌리 교민단체들이 많이 생기고 활성화되어 이런 풀뿌리 단체 총연합회가 뉴질랜드 언론사들에게 시정조치도 요구하고 교통부에 안전벨트 부착의 의무화도 건의하고 교민업소들의 자체적인 관련 법규 준수에 대한 환기 노력 등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