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6] 비상 배낭 꾸리기

연재칼럼 지난칼럼
오소영
정동희
한일수
김준
오클랜드 문학회
박명윤
수선재
천미란
박기태
성태용
명사칼럼
수필기행
조기조
김성국
채수연
템플스테이
이주연
Richard Matson
Danielle Park
EduExperts
김도형
Timothy Cho
강승민
김수동
최성길
멜리사 리
Jessica Phuang
휴람
독자기고

[366] 비상 배낭 꾸리기

0 개 2,719 KoreaTimes
  몇달 전, 우체통에서 'Household Emergency Checklist'라는 제목의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상 용품을 준비해 놓으라는 것이었다. 설마,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늘은 푸르고 초목은 우거지고 바다는 잔잔한데---. 방심은 금물! 아름답고 '친절한 금자씨'같은 자연은 그러나 지금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 땅 속, 바다 속, 하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결코 간과할 수 없을 만큼 수상하다.

  한국은 봄 가을이 몇날 되지 않는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있다. 봄에는 황사에 시달리고, 여름엔 너무너무 더워 사람들은 지쳐 버린다. 중국은 국토의 4분의 1이 사막화되어가고 있다. 그 사막이 점점 동쪽으로 번지고 있어 대책이 세워지지 않으면 한반도가 모래더미에 파묻힐지도 모른다고.

  뉴질랜드도 이상 기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봄이 되어 꽃들이 피어나던 지난 달 24일, 직경 20mm나 되는 우박이 오클랜드를 비롯 몇 곳에 쏟아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갑자기 돌풍과 비바람이 몰아쳐 내 집은 우지끈우지끈 소리를 낸다. 나는 전기가 나가지 않을까, 지붕이 날아가지 않을까, 홍수가 나지 않을까, 염려 속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또 9월25일, 북섬의 루아페후 화산이 폭발해 스키장과 등산로가 폐쇄되었다.

  과거에는 전쟁, 내란 등으로 비상사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는 자연 재해로 인한 비상사태가 대부분이다.

  지난 8월에는 세계인이 아끼는 문화유산의 보고인 그리스에 산불이 발생, 국토의 절반이 불바다가 되었다. 170곳 이상에서 맹렬히 불길이 번져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작년 6월에도 인도네시아에서 지진이 발생, 이재민이 20만 명이나 되어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사실은 사람보다 먼저 동물들, 식물들이 비상사태에 직면했다.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익사하는 모습을 TV에서 보았다(때문에 북극곰은 개체수가 확 줄어 들었다고 한다). 간신히 팔로 끌어안을 만큼 자그마한 빙하에 몸을 의지하고 망망대해에 떠 있는 북극곰, 마치 튜브를 끌어안고 바다에 내던져진 아이처럼 가여워 보였는데, 그 생명줄인 튜브가 녹았다. 지구온난화로 2050년에는 지구 생물의 20-30%가 멸종한다고.

  뉴질랜드에서 전쟁이 벌어질 일은 희박하다고 생각되지만, 화산 지역이고 섬 나라이기 때문에 지진과 이상 기후 측면에서는 안심할 수 없다. 결국 나는 비상 배낭을 꾸리긴 꾸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몇 달 째 생각만 하고 있다. 나의 고민은 비상시 달랑 들고나갈 자그마한 가방에 무엇을 집어 넣느냐는 것이다. 나라마다, 또는 어떤 성질의 비상 사태인가에 따라 챙겨야 할 물건이 다르다. 한국의 '국가 비상 기획 위원회'---식량과 취사도구, 침구 및 의류, 라디오, 소독약 붕대, 화생방전에 대비해서 방독면 수건 마스크 비닐옷 해독제 등. 뉴욕시 재난 관리국---방수 용기에 담은 중요서류 사본, 자동차 열쇠 및 집 열쇠, 각종 카드, 생수와 잘 부패되지 않는 식품, 손전등과 라디오 핸드폰 배터리, 구급상자, 신발과 비옷, 가족과 어떻게 연락하고 만날 것인가에 대한 정보,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 육아용품, 노인 장애우 가족의 특별용품 등. 호주는 지난 9월 APEC(아태경제 협력체)을 앞두고 기상이변 대비 Let's Get Ready Sydney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우선 비상시 안전 지구로 대피하고 중요한 품목은 평상시 '비상서랍'에 넣어 둘 것을 당부했다. 손전등, 전화카드, 라디오, 해열진통제, 응급용품, 화장지, 개인연락망, 소액 현금 등. 고양이는 면으로 된 베개 커버에 넣어 갈 수 있다고 자상하게 안내하고 있다.

  남편에게 비상시 챙겨 가고 싶은 물건을 물었다. "술!" 얼마 전 막내 영은이가 서울에서 사 온 비싼 양주를 어찌 버리고 가겠냐는 것이다.

  아들에게 물었다. "노트북!" 19인치 화면에 끝내 주는 성능, 현장음처럼 생생한 오디오까지 갖춘 그놈을 어찌 버리고 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맞는 얘기였다. 나는 화장품과 글 쓸 모티브를 메모해 놓은 노트, 따뜻한 담요를 가져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추위를 유난히 타는 내가 옥돌매트나 온돌 판넬을 못 가지고 가는 것이 못 내 아쉬웠다. 내가 아는 언니는 신발과 액세서리를, 또 다른 지인은 아끼는 옷을 챙겨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저런 것들을 다 챙긴다고 생각하니 그게 무슨 비상 배낭인가, 이삿짐을 싸고 있는 거 아닌가! 남편은 또 생각 난 듯이 말했다. "라면, 휴대용 가스렌지, 김치---, 참, 라면 끓일 물도 있어야지." 앓느니 죽지, 비상용품 챙기는 거야, 소풍 가는 거야?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내 집안을 휘 둘러보니 뭐 이리 살림살이가 많은지---그것들에 나는 매일매일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그 질긴 욕망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지 않는 한, 비상 배낭은 꾸릴 수 없을 듯 했다. 나는 비상 '배낭 꾸리기'라는 명제를 '비상 배낭 덜어 내기'로 바꾸었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그 버린 것에 미련조차 깨끗이 사라지는 날, 그 때 나는 한결 홀가분해지고 기쁜 마음으로 비상 배낭을 꾸리리라.

[372] 꽃들에게 물어 봐

댓글 0 | 조회 2,280 | 2008.01.15
요즘 나는 어쩔 줄 모르겠다. 사방에서 나를 향해 프로포즈를 하는 바람에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는 말이다. 내 집 정원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고흐의 팔레트'다. … 더보기

[371] 우연(偶然)의 선물

댓글 0 | 조회 2,329 | 2007.12.20
12월이 되면 나는 두렵습니다. 엊그제 1월이 시작됐는데 벌써 12월이라니---. 나는 어린 시절 심부름을 가다가 돈을 잃어버려 망연자실 할 때처럼 당황스럽습니다… 더보기

[370] 영혼의 지팡이(Ⅱ)-Secret Sunshine을 보다

댓글 0 | 조회 2,178 | 2007.12.11
며칠 전 도마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나는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둘둘 감았다. 다정한 이들은 내 손가락을 보고 틀림없이 위로의 말을 건넨다. “어머! 다치셨… 더보기

[369] 영혼의 지팡이(Ⅰ)-마두금 연주를 듣다

댓글 0 | 조회 2,583 | 2007.11.27
거짓말처럼, 어미 낙타의 눈에서는 닭똥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아기 낙타를 품에 들이고 젖을 물렸다. 며칠 전, 어미 낙타는 새끼를 낳았었다. 오랜 시… 더보기

[368] 하버브리지

댓글 0 | 조회 2,440 | 2007.11.12
오클랜드 하버브리지의 안전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2006 베카 엔지니어링의 보고서는 클립온(바깥 상하행 2개 차선)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Transit … 더보기

[367] 천국의 가장자리

댓글 0 | 조회 2,111 | 2007.10.24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혹은 살고 싶은 나라는? 이런 질문에 뉴질랜드는 단연 수위를 차지한다. 나도 '지상 최후의 낙원'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혹했었다.… 더보기

현재 [366] 비상 배낭 꾸리기

댓글 0 | 조회 2,720 | 2007.10.09
몇달 전, 우체통에서 'Household Emergency Checklist'라는 제목의 종이쪽지를 발견했다.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상 용품을 준비해 놓으라는 것이… 더보기

[365] 봄날은 간다

댓글 1 | 조회 2,136 | 2007.09.25
욕심이 과하셨어요. 봄이 온다고 뭔들 달라지나요? 왜 설레이죠? 풍선처럼 빵빵하게 차 오르는 가슴에서 바람일랑 모두 빼내세요. 당신의 심장을 쭈그려 트리세요. 봄… 더보기

[364] 작은 연못

댓글 0 | 조회 2,144 | 2007.09.11
'깊은 산 오솔길 옆'으로 시작되는 양희은의 '작은 연못'. 이 노래처럼 슬프고 절망적인 가사를 나는 알지 못한다. 운동권에서 많이 불렀지만 작사,작곡가인 김민기… 더보기

[363] 아! 버나드 쇼

댓글 0 | 조회 2,454 | 2007.08.28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아일랜드 태생의 작가인 죠지 버나드 쇼를 꼭 한 번 만나는 일이다. 깡마른 몸에 희고 긴 수염, 지팡이가 트래이드 마크인 쇼. 형형한 … 더보기

[362] 강 건너 백만장자

댓글 1 | 조회 2,179 | 2007.08.14
한국에서 부동산으로 재벌이 된 사람의 경험담 중에 '청개구리 전략'이 있다. 정책과 반대로 하니까 어느덧 부호의 길에 올랐다는 것이다. '엇박자 노래가 더 흥겹다… 더보기

[361] Art Of Korea를 꿈꾸며

댓글 1 | 조회 2,120 | 2007.07.23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삼성이 지난 3일 아오테아 컨벤션 센터에서 쇼케이스 행사를 가졌다. 이 날 슬로건은 장인(匠人) 정신을 강조한 'Art of Sam Sung… 더보기

[360] Pumpkin Time

댓글 1 | 조회 2,078 | 2007.07.09
내집 게라지에는 가을에 사놓은 호박이 여러 덩이 있다. 생쥐 일가족은 호박을 갉작갉작 파먹으면서 행복하게 지낸다. 집 주변에서는 고양이들이 짝을 찾느라 앙칼진 소… 더보기

[359] 언 발에 오줌 누기

댓글 1 | 조회 2,597 | 2007.06.25
중국에서 온 이웃집 새댁이 햇살이 내리 쬐는 벽에 몸을 기대고 하염없이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웃으며 햇살이 따뜻하다고 말했다. 사연인즉 전기요금… 더보기

[358] 키위새의 운명(運命)

댓글 1 | 조회 3,093 | 2007.06.12
키위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제1회 You Tube Video Awards 에서 ‘가장 귀여운 영상’으로 뽑혔다. 키위새 한 마리가 날기 위해 천신만… 더보기

[357] 모든 이별의 법칙

댓글 1 | 조회 2,214 | 2007.05.23
Y가 그 녀석을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었다. 녀석을 처음 봤을 때 Y는 마음이 여간 설레지 않았다. 순백의 윤기 자르르 흐르는 피부하며 아담한 몸집이 너무 맘… 더보기

[356] 뜨겁게 포옹하라!

댓글 1 | 조회 2,355 | 2007.05.08
뉴질랜드에서 나의 행복은 두 단어로 시작되었다. "Hello!”혹은 “Hi!”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식빵을 사기 위해 총총 걸어가고 있을 때,… 더보기

[355] 해는 지고,해는 뜨고

댓글 1 | 조회 2,322 | 2007.04.24
〈DIASPORA를 위하여〉 가끔은 우리가 땅 위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떠돌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어서 빨리 오라고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급히 서… 더보기

[354] 나무 감옥에 갇히다

댓글 1 | 조회 2,297 | 2007.04.11
내가 사는 동네는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다. 아름들이 나무들이 동네 입구부터 즐비하고,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문패처럼 세워져 있다. 한 걸음 더 들어가면 … 더보기

[353] 낭만벼룩

댓글 1 | 조회 2,343 | 2007.03.27
스무살 때, 나는 영문학도를 소개받은 적이 있었다. 그가 첫 대면한 자리에서 불쑥 때밀이(일명 이태리)타올을 내밀었다. “영국 시인 존던의 시 중에 ‘벼룩’이라는… 더보기

[352] 달(月)에 부치는 노래

댓글 1 | 조회 2,375 | 2007.03.12
바닷가에서 음력 대보름을 맞았다. 3월 첫째 주말 밤이었다. 남편은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고 나는 제일 높은 바위 꼭대기에 앉아 달 구경을 하였다. 휘영청 큰 달이… 더보기

[351] 너나 잡수세요!

댓글 1 | 조회 2,671 | 2007.02.26
돼지 리오와 소 무피우스가 주연으로 나오는 만화 영화를 보았다. 영화 매트릭스(MATRIX)를 패러디한 미트릭스(MEATRIX)가 바로 그것. 무피우스는 리오에게… 더보기

[350] 내 친구들은 어디에?

댓글 1 | 조회 2,333 | 2007.02.13
바지를 걷어올리고 강물을 따라 걸어간 적이 있다. 강 바닥의 까칠한 모래가발바닥을 할퀴고,모난 돌은 송곳처럼 뒤꿈치를 쪼아댔다. 가끔은 깨진 유리 조각이 피부를 … 더보기

[349] 향기(香氣)를 찾아서 - 기억(Ⅱ)

댓글 1 | 조회 2,406 | 2007.01.30
"내가 수면제를 먹고, 땅 속에 들어가 누우면 그 위에 흙을 덮어 주시겠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의 ‘체리 향기'(1997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는… 더보기

[348] 향기(香氣)를 찾아서 - 기억(Ⅰ)

댓글 1 | 조회 2,444 | 2007.01.15
향기는 언제나 내 주변에 가득하다. 바람 따라 허공의 이곳 저곳을 떠돌기도 하고 가라앉아 있기도 하다가 소용돌이 치다가 내 코 속으로 기어드는 것이다. 우연히,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