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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1/2006. 13:49 KoreaTimes ()
여우난골에서 온 편지
내 나이 네 살 때였어.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잘라서 파셨어. 아마 검은 머리가 값이 더 나갔었나봐. 비녀 속에 숨어 있는 검은 머리를 찾아내서 무쇠 가위로 싹둑 잘랐어. 나하고 등잔불은 가물가물 졸고 있었지. 그래서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잘 안됐어. 장날,머리카락 사는 할아버지 저울에 할머니의 검은 머리가 얹어졌지. 다만 얼마의 돈을 받아 쥔 할머니는 잰 걸음으로 옷파는 노점으로 갔어. 내게 노란색 나일론 스웨터를 사입히시고 아무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셨지.(눈물을 꾹꾹 찍어내는) 남은 돈으로 동동 구르모도 사주셨어. 손등에 바르고 막 문지르면 닭똥 냄새가 나는--- (피시식 웃는)
어머님은 구르모 만들어 파셨어. 형이랑 나랑 학사금 못내서 집에 쫓겨왔지. 아버님은 일본으로 유학 가셨고---
어머,불쌍해라.
좋았어.공부 안하고 노니까.
철딱서니하군---.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아끌고 저수지로 갔어. 공부 안할 거면 같이 빠져 죽자고.
세상에,그 어린 애한테---.
이 좋은 세상 왜 죽자고 하나 그렇게 생각했지.
그때 벌써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걸 알았다고? 후후후---꼬마 철학자셨군.
선생님은 날 참 예뻐했어. 000선생님이셨는데(어머!놀라운 기억력), 학예회 때 여왕벌도 시켜주셨어.
남자가? 자기 여왕벌 분장했을 때 넘 귀여웠겠다.
(남편은 000선생님의 손길이 머리라도 쓰다듬는 듯 잠시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내가 아는 선배는 벌 때문에 결혼했어.(뭔 말인가 나를 보는)
연애도 못하고 오로지 공부만 하는 선배였어. 근데 어느날 연구원 중 한 여자가 벌에 쏘여 실신한 거야. 의협심 강한 선배가 그 여자를 업어서 병원에 데려다 주었지. 그리고 두 사람이 찌리릿 감전이 되어서 속도위반을 했어. 우리 과에서 대단한 사건이었어. 아기 돌날 옷 한벌 사들고 갔는데, 행복해 보이더라고.
식탁에 앉으면 우리는 행복했다. 밥이거나 빵이거나 아무거나 좋았다. 때론 차를 마시기도 하고, 술잔을 기울이기도 하며 아주 오랜 시간 추억의 오솔길을 걷는다. 내가 좋아하는 BROTHERS FOUR의 음악이 흐르고 창가에는 바이올렛이 보라색 분홍색 꽃을 피우는 봄날, 우리는 낯선 과거 속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도록 헤집고 다닌다. 흥부 볼의 밥풀떼기처럼 연체료가 구질구질 붙은 공과금 고지서, 개업식 초대장, 아이의 학교에서 온 도네이션 편지, 세무신고 자료 등이 우수수 쌓여 있는 식탁에서 그게 가능한 일이기나 한 것일까? 번잡하고 지루하고 하잘 것 없는 나날들은 일단 묻어두기로 하자.
대학 때 친했던 친구 ***집이 가평이었거든. 북한강에서 물고기 잡아서 매운탕 끓여먹고, 기타치고 노래부르고, 여학생 꼬셔오는 사람은 공짜 술 먹기 내기도 했지.
청춘 남녀들이 모여서 놀고 또 놀았지 밤이 새도록---.
정말 그때는 놀아도 놀아도 안지쳤었는데---.
강변 버드나무에 매어있던 그네, 놀다 지치면 한가롭게 그네를 타기도 했었다. 산은 푸르렀고 강물은 은빛 물고기처럼 반짝반짝 뒤척였다. 노를 저으며 물살을 가르며 노래를 부르던 남자. 나는 갑자기 긴장되고 설레고 어지럼증이 난다. 나는 간신히 말한다.
나는 노를 잘 젓는 남자가 좋아.
눈부시게 푸르른 날들, 철쭉처럼 붉은 슬픔의 시간들, 박하향처럼 싱그럽던 그 때 그리고 마이신처럼 쓰디 쓴 고통의 기다 긴 터널--- 우리는 끄집어내었다가 다시 묻어버리고 기억했다가 잊어버린다. 어린 시절 손톱을 깎아서 땅에 묻어두면 진주가 된다는 사촌 오빠의 말을 믿고 4남매는 손톱을 정성스레 땅에 묻었었다.
곱게곱게 묻어두었다가 끄집어내면 붉은 슬픔은 하얀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기도 하고, 쓰디 쓴 고통은 한 송이 장미로 피어나기도 한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4남매는 묻어두었던 손톱을 파보았다. 검은 흙 뿐이었다. 그런데 진주가 될 거라고 믿었던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래서 자꾸자꾸 묻는 거지.